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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성희 Dec 02. 2024

무뚝뚝한 그녀

 

회사에서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가을 연수를 떠났다  

금요일부터 주말을 끼고 간 곳은 

서울 근교의 연수원이었다.

멀리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꽤 괜찮아 보이는 외관이었다.  


평소 부서별로 지내지만 오며 가며 알음알음 안면을 튼 직원도 있었고 입사동기들을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긴장도 풀리기 시작했다.

몇몇이 한 방을 쓰며 하루를  보내고 마음을 풀어헤치며 말이 트이니 제법 가까워지게 되었다.


금요일 오후부터 시작된 일정표를 보고

행사 진행 팀에게 부탁해서  발표순서를 앞당겨 달라고 부탁했다.

일요일에 조문 갈 일이 생겨서다.


축하할 일보다 어찌 보면 조문은

상대에게 꼭 필요한 인사이자,

위로이며 평소에 서로의 관계가 어땠는지 가늠자가 될만치 중요하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일을 겪는 이를 

챙김은 삶의  모든 것에서

앞서야  이라 여겼다.


일요일 오전 일정을 마치고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옆부서 동료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평소에 말없음표 무뚝뚝이 직원이라 가볍게 목례만 하고 나란히 앉아 가게 되었다.

오는 동안 흔히 여직원들은 일면식이 있든 없든 인사치레라도 말을 건네는데 역시 들은 대로 과묵(?)한 그녀였다. 어색함을 견디기엔  고요한 버스 안이었다. 서울로 향하는 공허하고 긴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의미 없는 창밖의 경치 이야기부터 말문을 텄다. 좋아하는 드라마나  요새 보았던 영화이야기가 이어졌던 거 같다.


Y는 친척 결혼식에 간다 했다. 우리는 종착지가 같았다. 우연처럼 같은 곳에서 내렸다.

갑자기 내게 시간 되면 깨끗히 단장을 하고 갔으면 좋겠다며  멀리 보이는 목욕탕을 손으로 가리켰다. 물론 세면도구는 있었으나 의외의 제안에 살짝 당황이 되었다.


같은 여자이기에 꺼릴 것은 없으나 대중목욕탕에 같이 갈 정도의 친밀도가 아니었기에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직원 연수도 직장 일의 연장이라 잠자리가 떠서인지 밤새 잠도 설 치고 피로도  꾸덕꾸덕 쌓여 있었다. 따끈한 물에 몸이라도 담그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는 어색하게 목욕탕 안에 들어가 서로 끝과 끝에 자리 잡고 각자 씻는 일에만 집중하며 길을 나섰다.

함께 목욕한 일이 계기가 되어서일까?

몇 겹의 시간이 우리에게 접착제가 된 듯 거짓말처럼 가까워졌다.

어쩌면  자매 같은 사이가 될 거라는 예시였던 건 아닐까!


결혼 5년 차 미시즈

우리는 가끔 시간을 맞춰 영화를 보았다. 

취미가 같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시간 날 때마다 영화 보기를 즐기던  영화덕후였다.

별 약속이 없던 어느 토요일 재래시장이라는 곳에도 갔다. 각자의 남편들을 위해 수삼을  사러 가기로 약속했. 수삼은 핑계 같았다.

시장표 길거리 간식도 먹으며 거리 구경을 하며 자매처럼 어울렸다.

주말에 아무 용건도 없이 얼굴만 보고 싶어 만나기도 했다. 만나면  친정 식구처럼 편했다.

파전에 막걸리도 마시고 어느 드라마에서 멋지게 나왔던 팔달문이 내려다 보이는 돌계단도 올라가 보았다.

눈이 오면 눈 쌓인 광교 저수지도 걸으며 숨어있는 작은 한방 찻집에서 늦도록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차도 마셨다. 항상 나는 무언가 이야기하는 쪽이라면 Y는 항상 들어주는 죽이 잘 맞는 관계였다.

광교산 등산Y덕분에 가보게 되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직장 동료가 오래 알게 된 절친보다 더 절친이 되어갔다


Y는 아기를 원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한약도 먹고 병원을 다녀도 진전이 없었다. 원인이 여자 쪽이란 말을 듣고 Y의 남편은 돈이 많이 들 거란 의사의 말에 단박에 자신에 형편이 그렇지 못하니 포기하겠다고 거침없이 말했단다.

어쩌면 본인에게는 당연할 수 있겠지만 세상에 당연하고 맞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해볼만큼 해볼 수도 있을 텐데.

Y의 눈가에 물기가 어린다.


그 후 나는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고 몇 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남편과 이혼을 했단다.

다툰 후 집을 나 간지 2년이 넘어서 실종신고를 하니 그 후 자동 이혼이 되었다 했다.

어찌 보면 잘된 일인 거 같이 느껴졌지만 조심스러워 차마 말하지 못했다.

Y의 마침표에 왈가왈부할 사람은

당사자밖에 없지 않은가!


Y는 지인을 따라 거주지를 부산으로 옮겼다. 몸이 멀어지니 소식이 오고 가던 게 줄어들었다. 몇 해가 지났다.

어느 날 부산으로 놀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잊힐만하면 연락이 오고

잊고 있다가 불현듯 생각이 나서

연락을 하는 게 지금의 우리였는데 반가웠다.

2박 3일로 연차를 내고 떠났다.

아담한 고시원으로 안내했다.

알고 보니 재혼을 해서 달라진 생활을 보여주려 했던 거였다. 고시원에서 2년을 살다가 고시원 사장이 Y에게 같이 살자고 먼저 청혼을 했다.

사람들과 별말도 없고 묵묵히 회사만 다니는 독신녀를 이혼 후 돌싱남이 2년동안 유심히 살펴 보고 조신한 아내감으로 점찍은 거였다.


가족끼리 간소하게 중국식당에서 재혼식을 올렸단다.

카톡 프사가 분홍 한복을 입고 분꽃처럼 웃는 Y의 사진이 그날의 사진이었던 거다.

졸지에 그토록 원하던 자녀를 둘이나 얻게 되고 엄마라 불리게 된 Y.

만나면 늘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던 한결같고 말없는 Y.

잘 들어주었던 Y의 침묵에

나의 소란스러웠던  푸념은 

날개가 되어 먼지처럼 흩어질 수 있었다.


잘 살길 바래. 엄마가 되는 게 꿈이었던

꿈을 안게 된 분홍빛 그녀의 미소가 영원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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