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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버지 Aug 26. 2024

종합상사, 미생과 정말 같을까요?

4편, 욕설과 하극상 사이

2편에서 잠시 다루었던 것처럼, 종합상사의 영업직은 회사의 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꽃을 잘 자라게 하고 향기를 가득 피우게 하기 위해선 지원부서의 역할도 중요하다. 영업과 지원부서가 조화롭게 융화되어 필수 절차를 지키고 상호 간에 존중으로 형성된 관계라면, 정상적으로 매출을 발생시킬 것이고 중간에 담당자가 변경되어도 거래는 계속 잘 진행될 것이다.


직장생활을 16년 동안 하면서 나만의 철칙 하나가 있다.
회사 후배나 동료에게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임의로 반말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물론 나에게 업무를 배워야 하는 부사수 또는 밀접하게 나와 업무를 해야 하는 타 부서의 동료들이 시간이 지나 서로 편하게 지내기로 한 뒤에는 그간 너무나도 불편했다는 후기(?)를 들려주곤 했지만 지금도 이 철칙은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형, 동생, 누나, 친구로 생성되는 사회적 관계는 회사 업무에 있어 지켜야 할 기준을 적용하기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 그리고 나이나 직급을 기준으로 초면에 상대방에게 반말을 하는 행위는 내가 겪어온 그간의 사회적 예의에 있어서 용납이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종합상사에 재직하던 당시 나는 30대 초반이었다.

신입 공채로 입사 후, 열심히 회사에 적응하며 다른 팀의 동료들과도 업무적으로 긴장감 있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새로운 신입사원들이 입사하면 사수로서의 역할도 하면서 회사에 대한 로열티는 더욱 깊어져만 갔다. 시간이 흘러 사원 4년 차가 되었고, 미미 했겠지만 나의 발언이나 의견이 미치는 영향력도 조금은 생기던 시기여서 나름대로 직장생활에 대한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나는 다른 팀 사람과 업무를 진행하던 중 심각한 욕설을 듣게 되는 일을 겪게 된다.


미생의 한 장면: 의견 충돌이 욕설과 폭언을 정당화할 순 없다.

 

나는 그 당시 철강팀 영업부서의 거래(계약, 소송, 분쟁 등)를 담당하고 있었다. 법무팀은 일정 기간에 한 번씩 담당 영업 부서를 변경하는 로테이션을 운영함으로써, 각 팀원들이 회사 전반의 거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철강팀을 담당하기 직전까지 나는 화학팀 영업부서를 담당했는데 그 당시 내가 다니던 종합상사의 화학 거래는 주로 트레이딩이 많던 시기라 거래 자체가 굉장히 복잡하고, 리스크 요소들이 많았기 때문에 매번 꼼꼼하게 계약서를 검토해야 했고 영업팀 담당자들과도 수시로 미팅을 잡아 주요 사항들을 확인해야만 했다. 


또한, 거래금액의 볼륨은 생각보다 매우 큰데 회사가 얻는 중간 마진의 영업이익은 작은 형태였다. 회사가 팔았던 제품을 다시 중간 거래처들을 몇 번 거치고 다시 회사가 동일한 제품을 재구매해서 다시 또 반복해서 판매하는 등 가격의 변동성이 큰 아이템들로 중간 마진을 최대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거래 사고가 발생할 경우 거래금액이 컸기 때문에 회사가 부담하는 리스크는 매우 높았다.


이런 습관들이 철강팀 거래를 담당할 때도 자연스럽게 배어 나왔다. 그 와중에 철강팀에는 해외 법인장을 하다가 다시 본사로 귀임한 혈기왕성한 팀장님이 있었다. 또한, 나 역시 곧 1년 후에는 대리 진급도 예정되어 있었고 서서히 머리가 굵어지는 시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결국 서로의 특성이나 업무적 습관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업무 파트너로 대면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고 서로에게 쌓였던 스트레스가 폭발하였다.


어느 금요일 오전, 내 자리의 전화기 벨이 울렸다.

"계약서 몇 조의 문구를 좀 이렇게 저렇게 바꿔야겠습니다." 

팀장님이 요청한 사항은 너무 지엽적인 부분이었다. 그전에도 나는 이미 이런 지엽적인 부분에 대한 잦은 변경 요청으로 지친 상태였고, "팀장님, 그런 일부 문구 부분은 팀장님이 직접 수정하셔도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순간 언짢은 말들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나는 그런 부분은 직접 하셔도 된다고 주장했다.


"$%^&****#$!%^!!! 당장 이 새끼 튀어와!"

거친 육두문자가 섞인 욕설과 함께 그 팀장님은 나 더러 자신의 자리로 튀어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계속 전화기로 심한 욕을 해댔다. 이미 내가 화를 제어할 수 있는 최고 임계치까지 접어들었으나, 끝까지 선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다. 참으려 했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욕하지 마시고, 있음 직접 오던가." 하고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잠시 뒤, 그 팀장님이 법무팀으로 직접 계약서 몇 장을 들고 찾아왔다. 그분은 전화기로 얼굴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10분 동안 나에게 쌍욕을 퍼부었기에 자신의 화가 수그러든 모양인지, 갑자기 존댓말을 하며 회의를 하자고 했으나 여전히 강압적으로 명령을 하며 나에게 회의 책상에 앉으라고 반말로 다시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이미 임계치를 초과한 상태였기에 마우스를 집어던지고 그의 코 앞에 가서 얼굴을 들이밀고 말했다. "욕할 몰라서 하는 아니니까 지금부터 당신, 나한테 함부로 욕하지 마."

그는 다시 욕설을 내뱉었고, 나는 욕 한 마디 한 마디에 대들면서 "입으로만 나불대지 말고 싸울 거면 계급장 떼고 밖에 나가자."라고 응수했다. 회사 사람들은 모두 몰려와 싸움을 말렸고 그 와중에 메신저로 싸움을 중계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니 이미 소문은 크게 날 대로 나버렸다. 


결과적으로 그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꾸중을 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한 임원분은 내 자리로 오더니 잘했다고 격려를 해주시기도 했고, 평소에 그 팀장님 때문에 업무적으로 굉장히 힘들어했던 철강 영업 쪽 사람들이 먼저 연락을 해서 밥을 사주는 사람도 있었다.


약 10년도 더 넘는 지금 이 일을 돌이켜 보면, 한편으로는 어린 패기에 제대로 미쳤었구나 하며 끔찍한 일화로 기억되기도 하면서도 욕설을 들은 상황에서 내가 그걸 받아들여야 할 이유도 없었으므로 잘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욕설과 하극상 사이.

이 글을 읽고 계신 분께서, 만약 저와 유사한 경험을 회사에서 겪게 되신다면 어떤 선택을 하실 건지 궁금하다. 사람과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반복되는 인연에 따라, 놀이도 아닌 업무를 하다 보면 의견 충돌과 다툼은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종합상사 같은 다이내믹한 회사 거래 구조상 충돌과 다툼의 이슈들은 다양하기도 할 것이고 빈도수도 잦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러한 의견 충돌의 상황에서도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해결점을 찾아서 결국 회사의 이익을 최대화하고 리스크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원론적이지만 정답이다.


화가 나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리기 때문에, 내 이익이 우선해야 하기 때문에 욕설이나 폭언으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사람의 모습에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는 합리화(?)가 과연 옳은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최소한의 업무 에티켓을 지켜가며 일해도 충분히 우리는 모든 것들을 해결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팀장이나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욕설로 팀원이나 동료에게 윽박지르는 것이 리더십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런 사람은 언젠가 분명 나와 같은 사람에게 직원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할 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같은 직장인이고 모두가 돈을 벌러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일 뿐, 나는 대단한 사람이고 너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므로 막 대해도 된다는 착각은 영원히 버려야 한다.


욕설을 들으면서까지 회사를 다녀야 의무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직업선택의 자유라는 기본권만 존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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