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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잊기로 해요

그냥 걸어요

by 나탈리


생각해 보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 박동수는 빠르게 올라가고

마치 혈관이 터져 버릴 듯

모든 몸의 세포들이 다 함께

떼창을 하는 듯한 숨 막히는

마음의 유치장에 갇힌 순간들





때로는 기쁨으로

때로는 노함으로

때로는 서글픔으로

또 때로는 무기력함으로

그때 우린 정말

수많은 감정의 파도들로

삶은 요동치고 있었다





숨도 못 쉴듯한 압박감

귓가에서 24시간 북소리 치는

심장소리는 다른 소리에

묻힐 때에만 침묵을 지키고

자고 있는데도 왜 생각이

소리들이 다 느껴질까

곧 또 하나의 하루는 밝아오고

6시면 울리는 자명종

또다시 힘겨운 육신을 일으켜서

돌아가는 거대한 사회의

톱니바퀴의 작은 부품,

오늘도 그 역할을

숙명처럼 해 나간다





무의미한 견제와

무한한 경쟁 속의 이방인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람, 관계 그리고 인종 갈등 속에서

자존감을 자만감으로 오해받는

소수 민족일지라도

소비되는 에너지를 다 끌어모아

하루를 밝히는

생활력 전투력 다 갖춘

중년의 한국 아줌마



집 근처 바닷가





찬란했던 퀸카 시절의 기억도

애틋했던 풋사랑의 아픔도

힘겹게 쌓아 올렸던

빼앗긴 나의 모래성들도

억울함에 가슴 움켜쥐고

잠 못 이루었던 수많은 밤들도

그리움에 사무침의 수십 년 끝에

메말라 버린 감정과 애증들도




세찬 폭우 끝에 보이는 맑은 하늘

오래된 마음의 병상에서 일어나서

본 구름 한 점 없는 이국땅의 푸른 하늘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

억울함이 풀어지는 순간의 따스한 햇빛

깔끔한 공기 드디어 쉬어지는 호흡

그 사이 찰랑 단발 소녀의 머리는

하얀 눈이 내린 대지 같은 흰머리 사이로

불어오는 상쾌한 봄날의 바람





너무도 많은 기억들과

과거의 상처들에

곪은 상처가 아문 후에도

남은 흉터 같은 우리의 아픈 기억들

시간이 가면 흐릿해지는

자국처럼, 마음의 흉터도

조금씩 조금씩 아물어 가는 동안




우린 다 잊기로 해요

뒤 돌아보지 않기로 해요

못 들은 척 그저 앞으로 계속 걸어 나가요

조금 더 걸어가면

수평선이 보이는

아름답고 푸르른 바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 그냥 다 잊기로 해요

계속 앞으로 나아가요


집 근처 산책로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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