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치영 Aug 14. 2024

나는 당신 걱정 당신은 내 걱정

군대를 갓 제대한 후 나는 지인의 소개로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첫 만남부터 편안하고 말이 잘 통했던 우리는 나의 적극적인 대시로 얼마 후 연인 사이가 되었다. 

 연애 초창기 둘만의 애정을 쌓고 서로를 알아가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고맙게도 그녀는 당시 병원에 입원해 계셨던 나의 어머니를 자주 찾아뵈어 주었다. 병원 침대에만 누워 계셔야 했던 어머니는 그런 그녀를 무척이나 예뻐하셨다. 

 어머니와 그녀, 그리고 내가 한 공간에 있는 그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안정감과 함께 운명적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그녀를 향한 사랑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렇게 그녀와 만난 지 1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내가 늘 걱정이셨지만 그녀가 내 곁에 있어 안심하셨다. 그러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그녀를 아껴주셨던 나의 아버지도 4년 후 어머니를 따라 하늘나라로 가셨다. 


 터울이 있는 막내로 태어난 나는 외동이나 다름없이 자랐기에 부모님을 모두 잃었다는 상실감과 허전함을 견디기 어려웠고 그즈음 고독과 외로움이 나를 감쌌다. 

 이런 내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상실한 나는 그녀에게 그동안 느껴온 사랑의 감정과는 또 다른 무언가 더 깊은 감정을 느꼈는데 그것은 나와 그녀를 더 이상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게 하는 무엇이었다. 

 7년의 연애 끝에 우리는 결혼을 하였다. 결혼 후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아이가 없다는 사실이 가끔은 아쉽기는 했지만 부부사이는 더욱 각별했다.

 서로의 직장에서 하루를 보내는 시간 외에는 항상 함께 했으며 그 시간이 내겐 너무나도 소중하고 행복했다.


 우리 부부에게는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해오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데 바로 단골 스튜디오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일이다. 그렇게 21년 동안 한해도 빠지지 않고 사진을 찍어왔다. 20주년에는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리마인드 웨딩사진을 찍기도 했다. 열정적인 사진작가님과 함께 매년 다른 포즈들을 연구하며 소품까지 직접 준비해 정성을 다해 찍은 사진들은 가끔은 사장님의 작품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사진관 앞에 걸려있기도 했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은 집안 곳곳 벽에 걸어두었는데 가끔씩 액자 속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기분이 묘해진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똘똘한 눈매로 애뙤 보이던 나는 어느새 희끗희끗 힌머리가 보이고 자연스럽게 웨이브 진 파마머리가 어울리는 중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눈가에는 주름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나와 달리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던 아내는 이제는 깔끔한 단발을 하고 여전히 고운 얼굴로 웃고 있다. 약간은 촌스러운 듯한 배경들마저도 정감 있게 느껴지는 우리 부부의 역사가 담긴 사진들은 세월이 지나며 점점 닮아가는 모습만큼이나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출퇴근이 불가능한, 무려 차로 4시간 가까이 걸리는 대구로 발령이 나게 되었고 우리는 말로만 듣던 주말 부부를 하게 되었다. 연애 기간까지 합해 만난 지 27년 만에 서로 떨어져 지내게 된 것이다.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이뤄낸 좋은 성과였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아내에게 놓칠 수 없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기에 차마 말릴 수도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러나 아내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만큼이나 긴 시간을 함께한 사람과 떨어져 지낸다는 것이 나에게는 어쩌면 부모님을 떠나보낸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나 보다. 

친구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놈이라느니 3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한 것이 주말부부라던데 무슨 복을 그렇게 타고났느냐며 부러워했고 자유의 몸이 된 것을 축하한다며 여기저기 술자리로 나를 불러댔다. 처음 한 달은 그렇게 친구들 손에 이끌려 다니며 취미생활도 하며 겉으로 보기에 재밌는 생활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활동들이 무의미하게 여겨졌고 곧이어 나는 아내가 없는 빈자리에 외로움을 느끼며 불면증에 시달렸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심지어 불면증이 심해져 감당할 수 없는 우울 증상이 오기 시작했다. 우울증은 참 무섭게도 나를 바꾸어 놓았다. 외로움을 좀 타긴 해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고 누구보다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점점 사람들 만나는 것도 귀찮아지고 외톨이가 되어갔다.


나에게 아내란 어떤 존재인가. 부모님을 잃은 후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던 사람이었다. 부모, 형제, 심지어 자식까지도, 모든 것을 대신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와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큰 공허함을 가져다주었다. 집안 곳곳에 있는 결혼기념일 사진들을 보면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져만 갔다.       

 ‘이렇게 살려고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살았나?’

 ‘나는 돈 버는 기계인가?’

 ‘왜 사는 걸까?’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게 맞나?’

 하는 암울한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다못해 베란다에서 보이는 수많은 아파트의 불빛마저도 나를 외롭게 했다. 불빛 속 다른 가정은 다 즐겁게 보이는데 나는 왜 이렇게 외로울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파트 아래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증상은 점점 심해져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없이는 지낼 수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고 결국 나는 2개월간 병가를 내고 직장을 쉬게 되었다.       

아내는 2년 가까이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나를 묵묵히 바라봐 주었다. 그리고 함께 이겨내자고 위로도 해 주고 수시로 전화를 걸어 내가 외롭지 않게 도와주었다.

그러나 아내가 걱정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무기력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나를 힘들게 했다. 내가 힘들어할까 싶어 불평도 타박도 하지 않고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차라리 남자가 돼가지고 그런 것도 못 이겨내느냐며 핀잔이라도 주면 덜 미안했을 텐데 그러지 않는 아내에게 죄책감마저 들었다.     


다행히 직장을 쉬는 2개월 동안 나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나고 이곳저곳 평소에 갈 수 없었던 곳으로 여행을 다니며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편안해진 마음은 나만 바라보며 함께 해주는 아내를 더 이상 힘들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하였고 그렇게 나는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기 위한 연습을 시작했다.      

 먼저 직장에서 부서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생각보다 새로운 환경은 나에게 잘 맞았고 나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몸은 힘들지만 일이 해결되어 가는 과정들에 성취감을 느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우울증과 불면증이 많이 좋아져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약 먹는 양도 많이 줄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기고 이제는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내 마음을 더욱 편안하게 해 주었다.     


오래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느꼈던 외로움을 나는 아내와 함께하면서 이겨냈다. 그러나 이번에 겪은 우울감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겨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내의 한결같은 사랑과 믿음,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쉬는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다시 뒤돌아 볼 수 있었고 그 시절 나를 있게 한 여러 사람들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었다. 또 여행을 통해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들도 내려놓았다.

그렇게 나는 조금 더 성장했다. 아내를 의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겠다는 다짐 속에 우울증을 극복해내고 있으며 아내를 안심시켜 주었다.      

우리의 주말부부 생활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기에 아내의 빈자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우리는 쉼과 여행을 통해 주말을 더 꽉 채우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변하지 않는 믿음으로 이겨나갈 것이라 믿기에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돌아오는 가을, 22주년 결혼기념일에는 어떤 포즈를 할지 고민이다. 슈퍼맨처럼 아내를 들어 올려 보면 어떨까. 아니면 아이언맨 옷을 빌려 입고 아내를 지켜주는 영웅의 모습도 좋겠다. 나는 아내의 버팀목이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