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추 다섯 근을 샀다. 통이 굵은 게 도톰하고 길쭉했다. 하나씩 가려 들고 꼭지를 땄다. 작고 노란 씨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매운 기운이 스멀스멀 주변으로 흩어졌다. 꼭지를 떼어내고 몸통을 닦았다. 행주에 씻긴 고추 살갗이 반들반들 윤이 났다.
옥상 바닥에 고추를 널었다. 햇살이 두루 닿을 수 있도록 넓게 펴서 말렸다. 점심 무렵, 아내와 함께 방앗간을 찾았다. 팔십이 넘은 노인네 부부가 기계를 돌렸다. 굵은 고추가 기계 속에서 조곤조곤 부서졌다. 고추는 기계 속을 대여섯 차례나 들락였다. 플라스틱 함지박에 쌓인 가루가 저녁해처럼 동그랬다. 노인네가 막대기로 기계 테두리를 툭툭 쳤다.
“고추 좋네.”
노인네 마른 입술 사이로 금니가 반짝였다.
여름 내내 쏟아진 햇살이 빨간 가루가 되어 자루 안에 담겼다. 나는 햇살 가루를 받아들었다. 고추 자루를 손에 들고 옛날 노인네처럼 걸었다. 음력 칠월 열사흗날 대낮, 이마에 떨어지는 햇살이 오히려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