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창문과 저녁의 창문 밤의 창문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이 휴대폰의 일어나라는 잔소리보다 일찍 거슬린다. 조금만 더 자고 싶어 계속 뒤척이지만 이미 잠에서 깼다. 눈을 떠서 제일 먼저 하는 일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어본다. 오늘의 날씨는 어떤지, 오늘의 나는 어떤지. 무엇을 해야 할지 혼자 되뇌고 결심한다. 오늘은 꼭 열심히 살아야지. 대충 씻고 아무 옷이나 주워 입고 학교로 나선다.
가끔 아무것도 다를 게 없는 날인데 기분이 좋은 날이 있다. 바로 오늘이다. 오늘의 나는 어디선가 왜인지 모를 자신감이 막 솟구쳐 올라온다. 오늘따라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창문은 많은 생각이 들게끔 한다. ‘세상 사람들은 다 바쁘게 사는구나, 이제 곧 사회로 나가려면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구나’ 이런 생각들에 잠겨 1시간이 그냥 지나갔다.
“김희현” 내 이름이다. 아주 큰 목소리로 대답한다. “네” 수업이 시작하고 나는 열심히 들었다. 그러다가 단 10분 만에 친구가 보낸 재밌는 동영상을 봤다. ‘아 이제 진짜 열심히 듣자 수업 얼마 안 남았어’ 이윽고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이럴 수가 나는 처음 출석 체크를 하고 대답만 크게 한 뒤 동영상을 보다가 끝이 났다. 허무하지만 아직 수업은 더 남았고 이제 휴대폰을 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뭐 했는지, 오늘은 무엇을 할 건지에 대해서 얘기하다 보니 또 다음 수업 시간이다. 이번엔 열심히 잘 들었다. 그리고 들어선 안 되는 마음이 피어오른다. ‘수업 하나 열심히 들었으니 다음 시간은 조금 편하게 들어야지’ 글렀다. 나는 수업이 시작하고 늦은 점심을 배부르게 먹은 탓인지 바로 잠과 싸우다 져버렸다. 허무하게 바라본 창문은 노을을 그리는 중이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는 지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시시한 생각에 빠진다. ‘나도 지쳐 보이려나, 아니지 나는 졸다가 왔으니 조금 개운해 보이려나’ 그리고 바라본 버스 창문 밖은 오늘 하루를 수고했다고 하는 듯 매우 붉게 그리고 미세하게 어두워지고 있다. ‘나는 오늘 무얼 했을까. 나는 오늘 열심히 살았나?, 열심히 사는 것의 기준은 뭐지’ 와 같은 생각들이 나의 사고를 어둡게 한다. 나는 늘 순간순간 나 자신과 약속을 한다. 그런데 그 순간의 약속들이 너무 가벼운 것일까. 아니면 나라는 사람의 의지가 약한 것일까. 회피하기 위한 약속인가. 순간의 실수를 속죄하기 위한 약속인가. 다짐하고 다짐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만 같다. 나는 언제까지 이런 인간이어야 할까. 다음 주는 좀 다르게 살아보자. 늘 기분이 좋던 안 좋던 하루의 다짐을 하고 나와의 약속을 정하지만, 하루의 끝이 다가오는 시점에는 나에 대한 비판과 혐오로 가득하다.
그렇게 많은 생각에 잠겨 나에게 수많은 회초리를 때린 뒤, 집 밑에 도착했다. 창문으로 밝은 빛이 나오고 있다. 방금 전까지 기분이 안 좋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나는 즐겁게 방에 들어왔다. 침대에 몸을 던져본다. 아침보다 더 가벼운 거 같다. 생각의 짐을 덜어서? 아니면 그냥 하루를 어찌어찌 보냈다는 해방감에? 모르겠다. 저녁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부터 세 끼는 반드시 챙겨 먹으라던 엄마의 잔소리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내 귀에 들린다. 아까 하던 고민들은 어디로 갔는지 세 가족이 모여 서로 하루의 일과를 공유하고 웃고 떠들고 밤이 깊어진다. 하루 종일 열려있던 내 방 창문을 닫으며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밤에는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유독 잘 보인다. 뭐가 그렇게 뿌듯하고 기분이 좋은지, 오늘 하루 중에 가장 밝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의 끈을 놓으려 커튼을 치고, 누워본다. ‘아 또 하루가 끝났네. 나는 앞으로 뭘 할까. 하루를 열심히 살고 내가 해야 할 것들을 차근차근 조급하게 하지 말자’. 계속 반복되는 생각에 지쳐 잠이 들었다.
내가 일어나서 창문을 보는 건 누군가를 닮았다. 바로 아버지다. 나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우리 아버지는 잠시 멍하게 있다가. 거실에 있는 창문을 또 멍하게 쳐다본다. 그리고선 무슨 결심이라도 한 사람처럼 온갖 집안일을 다 하고, 주말에도 뭐가 그리 바쁜지 집에 붙어있질 않는다. 내가 물어봤다. “아버지는 왜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고, 사람들 만나고 그래요?”. 아버지는 대답했다. “나는 긴장을 풀면 몸이 안 좋아져서 언제나 정해진 생활을 해야 해”. 놀랐다. 내가 아는 한 아버지의 저런 생활은 약 30년 가까이 이어졌다. 주말에 늦잠을 잔 적도 없고, 하루도 자기 일을 미루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다른 점은 몰라도 아버지의 그런 점을 닮고 싶다. 누가 그렇게 살아라고 해도 못 살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신의 가정을 위해 하고 잠깐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나는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하고 열심히 살 수 있을까. 주말이라고 방금 세탁기에서 나온 빨래처럼 늘어져 있는 내 모습과는 너무 반대다. 내가 바라보는 창문과 아버지가 바라보는 창문이 다르듯이 우린 창문이라는 같은 것을 바라봐도 하는 생각이 다르겠지.
나의 축 처진 몸을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말려본다. 오늘은 조금 흐려서 그런가, 아니면 주말이라서 그런지 잘 안 말려진다. 웃기다. 환경 탓만 하며 살아온 내가 너무 보잘것없는 사람 같다. 인생의 끝을 바라보는 사람도 열심히 사는데, 아직 출발선에도 서지 않은 내가 이렇게 나태해서 될 것인가. 나와 하는 약속들은 매번 바뀌고, 잘 지켜지지도 않는다. 나와의 약속도 잘 못 지키는 내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아직은 미완성된 나지만 더 발전을 시키려면 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으로 바꿔야 한다. 이렇게 또 생각만 하는 건가.
돌이켜보면 옛날부터 나는 나와의 약속을 사소한 것도 못 지켜왔던 것 같다. 어찌 보면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하다. 피곤하고, 귀찮고, 모른다는 이유로 많이 경험하고 성장할 기회를 나 스스로 버렸다. 방 안에 갇힌 사람처럼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창문 밖을 일부러 바라보는 날이 있었다. 뭔가 묘했다. 매일 반복되는 아침, 저녁, 밤 모든 날마다 똑같은 창문이었을지언정 똑같은 생각과 결심을 하지는 않았다. 하루에 2,3번 바라보는 창문은 나 자신에게 주는 숙제를 받는 곳이자 하루의 숙제를 성실히 했는지 확인하는 곳이다.
내가 일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 창문인 이유는 아침에 보는 창문은 내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 처음엔 그저 거울을 보면 내 모습이 너무 적나라해서 창문을 보았다. 희미한 내 실루엣을 보며 나 자신을 한심하게 느끼지 않고 싶었다. 저녁엔 밖이 어두우니 내 모습이 잘 보인다. 그렇게 내 모습을 보며 칭찬도 하고, 반성도 한다. 혹여 창문으로 보는 내 주변에 어두운 하늘만 가득하다고 해서 창문을 보는 일을 빼먹지 않도록 할 것이다. 거울은 내 겉모습을 보는 곳이지만, 창문은 내면을 평가하고 확인하는 곳이니까 앞으로도 매일 숙제를 받아서 제출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