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꾸준히 해야 하는 운동처럼 도전하고 있다는 작가님. 힘든 30대 를 책과 함께 이겨냈었고 나이 들면서 노안과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독서에서 에너지를 찾고 매일 일정한 시간 작은 미션처럼 자신만의 독서를 수행하는 방법을 공유해볼 수 있었다.]
나 또한 20대에 법정스님과 유안진 작가님의 에세이를 시작으로 책에서 삶의 고독을 즐기며 위로가 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우울한 기분이 들면 가끔 버스 종점 여행이라는 목적을 같고 짧은 일탈도 해봤었다. 그중에 자주 나를 끌어
당기던 곳은 예전 고터(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 꽃시장을 둘러 보는일 이다. 예쁜 꽃들을 마음껏 보고 나면 마음이 설레고 기분 전환이 된다. 그리고 지하상가 서점 판매대에 놓인 책들을 읽다가 가끔 마음에 드는 1000원짜리 책 몇 권을 들고 오는 날이면 허전한 마음이 채워지듯 정말 좋았다.
남편도 책 읽는 걸 좋아한다. 30대 후반 금연을 하면서 더 많은 책을 읽는다. 책을 수집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이 점점 쌓여갈 때 나는 책 읽는 것을 잊어버렸다.
책으로 위안을 받았던 일들보다 더 힘든 일이 생기고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번아웃이 왔다.
서로가 원하는 책 분야가 다르니 남편이 고른 철학적 책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가족을 챙기지 않고 자신의 독서 에만 빠져있는 모습을 보며 어느 날은 책장의 책을 모두 불 지르고 싶은 심정까지 들었다. ‘그만큼 책을 읽었으면 사람이 바뀔 만도 한데...’
가족 간의 대화도 없고 어린아이들도 챙기지 않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인 거 같아 속상했다.
“여보 나의 미래의 모습은 햇살 가득한 창가에 우리가 노인이 되어 함께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상상을 하면
기분이 좋아. 그런데... 지금은 당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남편은 이러한 나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부재에서 자라온 어린 시절 어른이 되어 성장할 때까지 엄마와 누나들의 보살핌만 받고 자란 남편은 이제야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첫째도 책을 좋아한다. 태어날 때부터 항상 책을 읽어주면 집중도 잘하고 재미있어했다. 처음 읽어준
책은 <경찰차 삐요삐요>에 대한 동화책인데 스무 번 넘게 읽어주어도 재밌어하는 아이를 보며 나의 구연동화의 실력도 늘어났다. 나중에 구연동화 할머니가 되는 상상도 해봤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스스로 속독을 터득하고 많은 지식을 쌓아가는 아이를 보며 어린 시절 독서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아빠와 함께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화등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면 논쟁이 되는 순간 나는 나의 지식의 한계가 들통나지 않도록 슬그머니 빠져야 한다. 아직도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나지만 신문물도 따라가야 하고 변화된 현실에 뒤처지지 않도록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이제는 자식들에게 배우는 중이다.
우리 둘째는 책 읽는 걸 싫어한다. 자식들도 키워보면 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우리 애들의 성향은 극과 극이다. 어렸을 때 책을 읽어 줄 때도 첫 줄만 읽고나도 “됐어요! 됐어요. 내가 읽을게요~엄마!” 그러면서 동화책을 뺏어간다. 한글도 모르는데 천재인가??? 하옇튼 어찌나 고집이 센지 본인이 다 할 수 있다고는 하는데 읽을 줄은 모르고 결국에는 책을 멀리 하게 됐다.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둘째는 어렸을 때 동화 작가가 꿈이었다. 가끔 지역 문인협회에서 진행하는 대회에서 상을 받아 오는 걸 보면 희한하다.
시나 글의 내용을 보면 이해 못 하는 세계가 느껴지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글은 내가 쓰고자 하는 방향과 읽는 사람의 방향은 언제든 틀릴 수 있고 정답은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