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번째 자만, 운
의사가 되겠다며 하루에 3시간씩 자며 공부하던 그 시절의 나는 어느새 힘든 일상에서 벗어날 도피처를 찾아가고 있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했고 J-POP을 좋아했다. 일본인 친구들이 많아서 기본적인 일본어도 할 줄 알았다. 독학으로 일본어를 마스터한 내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이걸 핑계로 꼬박 한 달을 부모님을 졸라 허락을 받아냈다. 이게 내 첫 번째 자만이었다.
이제 와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자면, 한국 대학을 졸업하고 일하는 내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일본 사회에 대한 어떤 분석도, 공부도 하지 않은 주제에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서 사원증을 걸고 일하는 상상을 하고는 했다. 본격적으로 일본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한 고등학교 3학년. 나는 학교생활을 성실히 할 수 없었다. 학원에 가야 했기에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1교시가 끝나기 무섭게 학교를 나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다른 학생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그들보다도 게으르고 노력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내가 특별한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내 일본 대학 입시는 정말 천운이 따랐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결코 좋다고도 할 수 없는 입시 시험 성적에 1년을 공부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620점이라는 토익 점수까지. 그런데도 나는 소논문과 면접을 거쳐 일본에서 명문대라고 불리는 사립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아마 이때부터 나는 내 운을 내 실력과 동일시했던 것 같다.
대학교 입학을 앞둔 2020년 2월. 생각지도 못 한 역병이 세상을 완전히 망가트렸다. 하늘길이 막히고 대학들은 모두 온라인 수업을 강행했다. 대학생이 되었음에도 한국에 머물러야 한다는 불안감은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고, 나는 하늘길이 완전히 막히기 3일 전에 한국을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된다. 해외 생활이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 오만한 착각이었다. 온라인 수업의 연속과 외출 자제령의 환상적인 콤보로 2020년 3월부터 9월까지의 6개월은 내 인생에서 손꼽히는 힘들었던 시기로 남게 되었다. 6개월 동안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현실을 보지 않고 이상만을 좇던 사람의 어떻게 보면 당연한 최후였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대학교 2학년을 맞이했다. 봄 학기에 조심스레 학교에서 대면 수업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더운 일본 날씨에 마스크를 쓰고 학교에 다녀야 했지만 그럼에도 처음에는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에 겨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른 유학생 친구들과 일본인 친구들을 만나며 나는 다시 한번 무너졌다. 특별하다고 믿었던 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일본인 친구들을 만들기란 너무 어려웠고, 유학생 친구들과 어울리자니 그들의 씀씀이에 맞출 수가 없었다. 그들의 씀씀이에 맞추기 위해 알바를 시작하니 왜 그렇게 알바를 열심히 하냐는 친구들의 악의 없는 물음이 나를 찔렀다. 그렇게 점점 우울감이 나를 잠식시킬 그때, 가을 학기를 온라인과 오프라인 병행으로 실시하겠다는 대학 방침이 내려왔다. 나는 고민할 틈도 없이 다시 짐을 싸 한국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도망치기 위해 선택했던 해외 생활이었건만, 결국 나는 다시 해외에서 도망쳐 한국으로 돌아가기 급급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에 힘든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나는 나를 스스로 구원할 수 있었다.
나를 구원해준 건, 글이었다.
참 행복했고 얻은 게 많은 일본 생활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힘들었던 아직 현재진행형인 내 첫 해외생활 이야기.
그리고 그 우울감 속에서 어떻게 내가 웹소설 작가로 데뷔하게 됐는지, 해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웹소설 작가로 일하고있는 지금의 내 삶은 과연 행복할지.
앞으로는 그런 이야기들을 풀어보려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