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학교 #교직 #퇴직 #평생직업 #철밥통
네가 선생님 될 줄 알았다니까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헤엄쳐 오기에
"번쩍, 들어 올렸더니 그 뒤로 피라미들이 쪼르르~ 따라오는 거야."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 태몽이란다.
“꿈이 딱, 선생 될 꿈이지. 고, 피라미들은 네가 가르치는 학생들 아니겠냐?” 그렇게 태어날 때부터 선생으로 점지되었으니 교직이 천직은 천직인 셈이다.
86년도 국립대학교 사범대학 졸업하면서 자동으로 교사가 되었다. 요즘엔 국가고시에 해당하는 임용고시를 치러야 한다. 3수째 임용 준비를 위해 피 말리듯 공부하는 기간제 선생님도 있다.
'그 어렵다는 관문을 뚫고 진입할 수 있었을까?' 난 그저 시대 잘 만난 덕분이다. 그래서 더 교사가 된 것을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교직에 들어선 지 39년이 지났다. 그동안 강산만 4번 바뀌었을 것이다. 교직이 인생 전부가 된 것이다.
에이, 그냥 다 때려치울까?
“왜 선생님이 되었어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이 참, 궁색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선생밖에 할 게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대상이 선생님밖에 없었다. 그리고 교직으로 발을 들여놨으니 쭈욱~ 그렇게 살아온 셈이다. ‘때려치울까?’ 생각해 본 적도 있지만 전업 주부로 살림만 하겠단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우리 집 식구들은 ‘각자도생’이다. 나도 내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 물론 가난하게 자란 탓도 있겠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어야지.
학교를 벗어나고야 교직을 떠나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잠시 학교를 벗어나 교육연수원에서 부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연구사들이 맡은 연수를 척척 추진하니 내가 할 일은 딱히 없다. 더 잘하려고 일부러 일을 만들지 않는다면 주어진 업무는 여유로웠다. 남들은 “편해서 좋겠다.” “시간이 많을 테니 책도 읽겠는걸" 부러워한다. 그런데 도통 재미가 없다. 흥이 나지 않는다.
다시 교장으로 학교로 돌아오니 생기가 돌고 신난다. 학교의 하루하루는 ‘두더기잡기 게임’ 같다. 예측불허인 사건, 사고의 연속이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스릴 넘치고, 드라마틱하다. ‘교실 붕괴다, 학교 폭력이다. 학부모 민원이다.’ 절레절레 고개 흔들만하지만 그래도 그 힘든 녀석들에게 받는 에너지가 분명히 있다. 힘들어 축, 쳐져서 시들했다가도 푸룻푸룻 다시 살아난다. 어처구니가 없어 “허-참!” 웃음 지으며 “그래 가자. 또 해보자.” 기운 차리게 된다.
교사에겐 ‘자기 결정권’이 있다.
교직 또한 공무원이니 교육정책과 지향점을 따를 수밖에 없다. 공무원 집단을 '철밥통'이라고도 한다. 웬만해선 안 잘린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만큼 견고한 규율도 있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 운운하는 고지식하고 빡빡한 집단이다. 그래도 내가 본 바로는 상식과 옳고 그름이 통하는 조직이다. 교직원 협의회 자리에서는 각자 의견을 제안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을 존중받는다. 나 또한 N분의 1 지분만 주어진다. “뭔 말이 많아. 하라면 하는 거지.” 이런 세상이 아니다. 교장이라도 의견을 관철시키려면 그만큼 설득하는데 공을 들여야 한다. 39년 교직생활이 구속 같았지만 직장에 얽매여 끌려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언제든 마음 떠나면 떠나리라
“학교를 그만두어야겠어요.”
여선생 한 분이 교장실로 찾아왔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했더니 딱히 이유는 없단다. “그냥 입 떼기가 싫어요.” 말한다. “네?” 반문하자 예전에는 아이들이 수학 공식이나 풀이 방법을 물어오면 “이 녀석아. 또, 까먹었어? 자, 잘 들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다시 알려줬단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선생님! 어떻게 해요?” 질문하면 그냥 학생 얼굴을 빤히 쳐다본단다.
“제가 학생들에게 마음이 떠난 거죠?”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겠단다. 담담히 말하는 선생님을 붙잡을 수 없었다.
어찌 보면 그 선생님이 ‘진정 학생을 위하는 사람이구나’ 싶다. 그리고 그때 생각했다. 교사가 학교를 떠나는 시점은 정년퇴직이 아니다. 더 이상 입 떼고 싶지 않을 때다. 아이들에게 마음이 떠났을 때다. ‘나도 언제든 마음 떠나면 떠나리라.’ 아직도 학교를 떠나지 않는다는 건 마음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 말고는 세상 돌아가는 것도 잘 모른다.
선생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교사로 일하면서 그 돈으로 두 아이 공부시켰고, 이만큼 살아왔지 않은가? 이만하면 되었지. 60살이 넘는 나를 써줄 데도 없을뿐더러 식당 설거지를 하자고 해도 손목이 아프다고 3일도 못 버틸 것이다. 한의원 침 맞으러 다닐 게 뻔하다. 또한 지금 봉급의 절반도 어림없지.
길게 살아야 하는 시대다.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 아쉬운 소리 안 하고,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죽기 전까지 연금이 나온다니 퇴직한 이후에 먹고살 걱정 안 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그 한 가지만 생각해도 교직을 선택하기를 잘한 거지.
‘노영임! 잘 살고 있는 거야’ 명분을 만들어 준다.
명분을 중요시하는 내게 돈만 벌기 위해 평생 허덕였다면 ‘나는 뭔가?’ 우울하지 않았을까? 가난한 성장 시기에 나를 만난 아이는 ‘나만 가난한 게 아니네’ 위로를 받고, 나처럼 비빌 언덕 하나 없는 촌놈은 '개천 용출이'를 꿈꾸지 않았을까? 자기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못 내던 의기소침한 아이는 “나도 악! 소리 한번 질러 봐?” 용기 내지 않았을까? 또 누군가는 문학소녀를 꿈꾸고, 또 누군가는 선생님을 꿈꾸며 언젠가 지금 나처럼 “라때는 말이야….” 이야기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꿈꾸게 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어깨 으쓱한…. 그래서 내 교직생활이 고맙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을 사랑했습니다.
졸업식 학교장 인사말이 쉽게 써지지 않는다.
전교생과 학부모에게 하는 인사로 내용이야 뻔한 것이고, 해마다 반복되는 행사니 예전 것을 좀 수정하면 된다. 그래도 영 내키지 않는다. 졸업식 하루 앞두고 A4용지 한 장으로 간단하게 작성했다.
“모든 선생님을 대신해서 졸업생 여러분에게 꼭 이 한마디 전하고 싶습니다.” 내 말에 내가 울컥한다. 다음 말을 잇기가 쉽지 않다. 겨우 입을 열어 “우리는 여러분 한 명, 한 명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교직 생활에 대한 진심인지 모른다.
“교직 생활을 더 연장하고 싶나요?”
누군가 묻는다면 “노! 노!”라고 대답하겠다. 한 마디로 나와 교직은 ‘애증 관계’다. 충분히 할 만큼 했다. 이만하면 족하다. 평생 해 온 일이니 그만큼 애착을 갖는다. 하지만 지긋지긋한 것도 사실이다. 넌덜머리가 난다. 용기가 없어 명예퇴직을 신청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정년퇴직이라는 강제 종료됨을 “이젠 더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잖아” 핑계 댈 수 있어 좋다.
내가 불릴 호칭은 내가 정한다.
그동안 선생님! 교감선생님! 장학사님! 연수부장님! 교장선생님! 자리에 따라, 직책에 따라 불리는 호칭이 달랐다.
퇴직한 날부터 “영임 씨!”라고 불러달라 해야지. 적어도 ‘교장선생님’으로 불리는 것보다 얼마나 생기발랄한가? 한참 젊은이들에게도 “영임 씨!” 로 불리는…. 생각만 해도 기분 째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