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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뚱냥이 3시간전

뚱냥똥냥7 -어쩌다 열일곱 마리나 키우게 되었나요

보담이, 상처가 많은 어미 고양이

뚱냥똥냥 시리즈는 저희 집에 있는 고양이들의 입양 및 출생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습니다



EP7. 보담이,

상처가 많은 어미 고양이,

너의 남은 나날이 보다 나은 삶으로 가득하길




보담이는 해랑이를 키우시던 분이 보내주신 아이다. 



벵갈 캐터리를 접은 후 아이들을 하나 둘 입양 보내고 본인은 노령묘 두엇만 키울 심산이라며, 해랑이를 받으러 간 자리에 고양이를 좋아하고, 끝까지 잘 책임질 수 있는 믿을 만한 사람이 있겠느냐 물어본 바 있었다. 여섯 살짜리 암컷 벵갈이라고. 



해랑이를 데려온 시점에 올린 글은 아니지만, 동일 사람으로 검색했을 때 빅로젯 무늬의 암컷 벵갈 분양글이 몇 년 날짜로 올라와 있었던 게 떠올랐다. 나는 그래서 그 물음에 아는 체를 했다. 나도 브라운 벵갈 분양글을 본 적이 있다고. 입양이 되었던 게 아니냐고 반문했더니, 적응을 못해서 다시 데려왔다고 했다. 당시에는 라온이를 데려오기 전이라 만약 해랑이가 잘 적응한다면, 가족들이 괜찮다고 할지 내가 한 번 물어봐 보겠다고, 유보적인 대답을 한 바 있었다. 



펫샵이나 경매장 고양이만큼 최악은 아닐지라도, 가정 분양이나 캐터리는 그 주체가 되는 사람의 마인드에 따라 고양이의 상태가 천차만별이 되는 걸 많이 보아온 터였다. 분양되었다가 파양 된 아이를 도로 데려올 만큼 책임감이 있고, 캣터리를 접은 마당에 보유 고양이에게 좋은 가족을 찾아주려고 애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분이라는 건 맞았다. 



하지만 해랑이는 애석하게도 데려올 당시 털이 푸석거리고, 먼지와 비듬이 많았고, 검은 털이라는 걸 백번 감안해도 벵갈 특유의 광택도 전혀 없이 말라 있었다. 7kg대의 거대묘라는 소개와 달리 훌쩍 큰 키에 빼빼 마른 느낌이었다. 나에게는 7kg대의 거대한 장남 달땡이가 있었기에 한층 더 비교가 되었다. 솔직히 조금 과장을 삼아 달땡이가 림프종 투병을 하며 몸무게의 절반 가까이 날아가고 5kg 대로 쭉 빠졌을 때와 신체적으로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의 비만은 여러 가지 병의 원인이 되기에, 고양이의 건강을 생각하여 아이들의 체중을 조절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나는 음식과 놀이는 고양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양대 산맥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일단 잘 먹는 아이들은 때깔부터 곱다, 그건 어디서 어떤 경로로 데려오든 변하지 않는 절대 불변의 진리였다. 



캐터리에서 교배묘로 지내는 게 어떤 건지, 난 한 번도 발정기로 고통받는 고양이와 임신과 출산, 육아로 힘겨워하는 아이들은 본 적이 없어서, 섣불리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흔히 많은 수의사들이 말하듯 임신과 출산이 단순한 호르몬의 영향이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말에 백 퍼센트 공감하지는 않는다. 



내 그 생각의 확신을 준 아이가 보담이다. 모든 고양이가 제각각이듯, 고양이의 모성애도 저마다 다르겠지만, 보담이는 그중에서도 아주 모성애가 큰 아이였다. 여섯 살이라는 나이가, 사실이라고 해도 고양이는 한 살이면 충분히 임신과 출산이 가능할 만큼 빠르게 성장한다. 일 년에 발정기를 두 번만 겪는다고 쳐도 5년이면 열 번 가까이 출산을 반복했다는 소리 아닌가. 그리고 그중에서 단 한 마리도 한창 예쁠 2-3개월 차에 뺏겨서 끝까지 키우지 못한 보담이는, 무척이나 예민하고 공격적인 고양이였지만, 믿을 수 없는 아기냥이 덕후였다. 보담이 입양 후, 내게는 가온이와 새론이라는 3-4개월 차 아기냥이 생겼고, 그 두 아이를 끼고 키워낸 게 다름 아닌 보담이었다. 특히 여아인 새론이에 대한 보담의 집착과 사랑은 새론이가 임신한 뒤로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배 앓아 낳은 아이가 아니어도, 중성화가 끝난 이후에도, 보담이는 여전히 새론이를 제 새끼처럼 끼고 지내려 했다. 단순히 임신과 출산, 교배를 통한 종족 본능과 같은 생물학적인 이유가 전부라면 보담이의 그 모성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비단 아기냥이가 아니라고 해도, 저보다 작고 귀여운 아이들에게, 보담이는 매우 너그럽고, 우리 집에 와서 원치 않게 형제묘가 된 아이들이 옷장이나 서랍 같이 어딘가에 뜻하지 않게 갇히거나 했을 때 제일 먼저 구하러 오거나, 가장 먼저 알리러 오는 것도 보담이다. 누군가 아파서 병원이라도 가서 입원이라도 하면 그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안절부절못하고 집안을 돌아다닌다. 마치 그 아이를 찾는 것처럼. 나이는 중간 나이대지만, 보담이는 우리 집 아이들의 어미묘 같다. 장녀 아닌 장녀 같은 역할이랄까. 아프거나 갇힌 아이가 보담이와 사이가 좋건 나쁘건 그건 보담이의 행동에 변화 요인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초특급 예민보스에 사납기 이를 데 없으면서, 그럴 때 보면 꼭 욕쟁이 할머니 같다. 겉으로는 불퉁맞으면서도, 속정이 아주 깊은. 



아무튼 남편과 둘 뿐인 데다 출산 계획도 전혀 없는 나였기에, 해랑이를 데려오고 서너 달이 지나서, 일전에 말했던 6살짜리 암컷 벵갈 아이를 혹시 입양해 줄 생각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남편은 공간 문제도 있으니 내가 안 보는 책 500권을 버리는 조건으로 흔쾌히 허락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보담이를 데리러 다시 부산으로 갔다. 


 


이름을 뭘로 지을까 아이를 만나러 가기 전까지 한참 의논했다. 여러 가지 후보군의 이름 중에서 캐터리의 교배묘로 힘겨운 삶을 살아온 아이가 우리 집에서는 편한 여생을 보내라고, 보다 나은 삶을 살라는 뜻의 보담이로 결정을 지었다. 이번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사진으로만 아는 아이가 많이 궁금했다. 



일전에 해랑이를 데려온 약속 장소에서 아이를 받았다. 아이가 여름을 지내며 입맛이 전혀 없어서 살이 많이 내렸다고 했다. 그리고 목덜미 근처의 털 빠진 위치를 짚으며 이건 예전에 상처가 나은 뒤에 털이 자라지 않은 거지 딱히 아픈 데는 없다고 했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장사나 뭘 할 것도 아닌데 털이 조금 없는 게 뭐가 문제일까 싶었지만, 일단 알았다고 했다. 해랑이만 보다가 와서 그러나 보담이가 유독 작아 보여서 이 아이는 많이 작네요,라고 운을 떼자, 분양자분은 깜짝 놀라며 부정했다. 보담이 정도면 굉장히 커다란 암컷이라고. 해랑이가 벵갈 중에선 말도 안 되게 큰 거고, 보담이도 덩치가 작은 수컷만큼 크다고. 집에 데려와 아름이나 라온이랑 비교해 보자 확실히 덩치 차가 나긴 했다. 아직도 집에 있는 많은 개체 중에는 덩치가 작은 아이보다 커다란 아이가 많고, 보담이가 얼굴이 말도 안 되게 작아서, 더 작아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보담이는 겁이 많아서 높은 곳에 뛰어올라 내려오지 않거나 숨어 지냈던 해랑이와 다르게 사흘쯤 지나자 스스로 방에서 걸어 나왔지만, 사납고 예민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터치는 당연히 불가능했고, 사냥감을 가지고 놀아주려 해도, 툭하면 손을 내밀어 할퀴거나 장난감 막대를 무던히 내팽개치곤 했다. 그래도 입맛이 없어 좀처럼 밥을 먹지 않는다는 말과 달리 내가 특별히 신경 써서 뷔페식으로 차려준 특식은 설거지한 것처럼 싹싹 비우곤 했다. 얼마나 맛없는 사료만 주었길래 이 잘 먹는 아이가 안 먹는다고 그랬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 달쯤 지나니 브라운 톤의 보담이는 털결 위에 금가루를 뿌린 것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어찌나 잘 먹고 포실포실하게 살이 쪘는지, 똥배를 임신한 건가 착각해서 초음파를 두 번이나 찍어봤을 정도로. 혹시 중성화 수술을 시켰는데 임신 중이었다는 소리가 들을까 봐 데려오자마자 중성화를 해버린 해랑이와 달리 보담이는 한참이나 있다가 중성화를 하고 말았다.



보담이는 방광염이 심해져서 입원과 통원치료를 반복하며, 마음을 조금씩 열어서 이제는 꽤나 귀여운 츤데레 고양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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