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소식, 공연장의 이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공연홀은 6월 8일 공식적으로 메리언 앤더슨 홀(Marian Anderson Hall)이라는 이름을 갖는다.
오케스트라의 이사회 의장을 지낸 금융가 Richard Worley 와 그의 아내이자 인권 변호사 Leslie Miller가 약 340억 원(2,500만 달러)의 기부금을 내고 명명권을 받았고 이 부부는 흑인 성악가인 메리언 앤더슨 (Marian Anderson)의 이름으로 공연장을 명명하기로 하였다.
공연장은 명명권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기업에 명칭을 대여/양도한다. 국내의 경우, 우리은행은 예술의 전당 실내악 공연장에 45억원을 지원하여 IBK챔버홀이란 이름을 20년간 사용할 수 있었다. CJ 토월 극장도 CJ를 붙일 수 있게 하는데 150억 원을 지원했다.
링컨센터의 '애버리 피셔 홀(Avery Fisher Hall)은 레코드 회사 창업자이자 드림웍스 대표이며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 컬렉터이기도한 데이비드 게펜이 1,300억 원(1억 달러)을 기부한 후 영구 명명권을 갖게 되었고 이후 데이비드 게펜 홀로 불리고 있다.
장소가 불릴 때마다 브랜드의 인지도는 높아지고, 기업은 문화 서포터의 이미지를 쌓는다.
좌: Richard Worley & Leslie Miller ⓒ Lifestyles Magazine. 우: 메리언 앤더슨 홀 오프닝
이 부부의 명명권 헌정 소식은 그러한 이유로 특별하다. 이 둘의 터전인 필라델피아 사회와, 오랫동안 지원해 온 음악, 그 교집합에 속한 상징적 인물인 메리언 앤더슨에게 공연장의 이름을 헌정하는 모습은 울림이 있다. 시대를 아우르는 가치를(축적한 자산의 쓰임새를 결정할 정도로) 귀하게 여기는 리더의 모습을 본다.
한 인터뷰에서 Richard Worley 는 “사람들이 ‘메리언 앤더슨 홀에서 만나요.’라고 할 때마다 그녀의 용기, 음악적 업적이 회자할 것이다. 앤더슨은 일생동안 투지와 우아함으로 차별에 맞서 승리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좌: 링컨 기념관 공연, April 9, 1939 ⓒ Hulton Archive/Getty. 우: 메리언 앤더슨의 리사이틀을 듣기 위해 모인 75,000명의 청중 ⓒ FDR Presidential Library and Museum
전설적인 콘트랄토이자 인권운동가인 메리언 앤더슨(1897~1993)은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흑인 최초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섰다. 그녀는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당시의 미국을 떠나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 116회의 리사이틀 가졌다. 잘츠부르크의 연주회에서 마에스트로 토스카니니는 메리언의 음악을 듣고 ‘'100년에 한 번 있을 법한 목소리’라고 말한다.
미국으로 돌아온 메리언은 티켓 파워 3위에 오르는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대중의 색안경과 사회의 불평등은 변함이 없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최고급 호텔에서 머물렀을 때조차도 그녀는 다이닝룸의 입장을 제한받았다. 뉴저지주의 프린스턴에서 연주회를 할 때는 호텔의 숙박이 거부된 메리언에게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자신의 집에 방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둘은 평생의 우정을 쌓는다.
역사적인 사건은 1939년에 일어난다. 워싱턴 DC의 컨스티튜션 홀에서 계획했던 공연이 보수적인 여성단체의 보이콧으로 무산되었고 매체들은 이 사실을 크게 다룬다. 그 단체의 회원이었던 Eleanor Roosevelt 영부인은 공식적으로 단체를 탈퇴하면서 진정서를 제출한다.
“위대한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이콧한 단체의 입장에 반대한다. 이들은 계몽의(enlightened) 길로 모두를 안내할 기회가 있었지만 실패하였다." 영부인은 이 단체의 액션을 히틀러의 정치 행태에 비유하며 분노하였다. 그후 엘리노어는 워싱턴 기념탑 (Monument)이 직선으로 보이는 링컨기념관의 야외에서 그녀가 공연하도록 지원하였다. 이 음악회에서 앤더슨은 비애가 섞인 목소리로 "Nobody Knows the Trouble I've Seen" 과 "America"를 열창한다. 이곳에 75,000명이라는 인종을 아우르는 관중이 모였으며 역사적 군집으로 회자된다.
좌: 음악감독 유진 오먼디와 함께, 1938년 ⓒ Adrian Siegel Collection. 중앙: 대통령 집무실에서 존 F. 케네디와 함께, 1962년 ⓒ Philadelphia Orchestra Archives. 우: 유엔 인권 위원회, 1964 ⓒ Alamy
좌: 매리언 앤더슨 홀 헌정 기념 음악회, June 8, 2024 우: 이날 공연했던 성악가 오드라 맥도널드과 지휘자 야닉 네제 세갱 ⓒ Pete Checchia / The Philadelphia Orchestra
아이젠하워와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 등 여러 무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친 메리언은 유엔 인권위원회 대표단으로 한국전쟁 당시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은음을 내는 콘트랄토로 분류하지만, 소프라노의 고음과 바리톤의 낮은음까지 낼 수 있는 희소성이 있다. 여러 음반을 스트리밍으로 들었을 때, 흑인 영가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부르는 바흐의 아리아나 슈베르트의 가곡도 색다른 감동을 주었다. 오래된 녹음 상태 특유의 아날로그적 감성도 느낄 수 있다.
펜실베니아주는 2024년 6월 8일을 “메리언 앤더슨의 날”로 정하였고 공연장에서는 기념 콘서트가 개최되었다.
메리언 앤더슨이 간절히 원했던 포용적인 미래는 도래했을까. 이 헌정 소식으로 우리는 조금 더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메리언 앤더슨 홀, 명명권 헌정의 사례 © 2024
by Yoori Kim is licensed underCC BY-NC-ND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