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 발현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게, 남편은 매우 비판적인 시각에서 설득을 시작했다. 나름 논리가 있고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나도 아니었기에, 우리의 논쟁은 길게 이어졌다. 그러다 그가 뜻밖의 말을 했다. “나 성모님 좋아해.” 마음속 진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에게 성모님은 어떤 존재이며 의미일까. 오랫동안 나는 자애로운 어머니, 불안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지켜주시는 성모님을 좋아했다. 예전에 만성적인 치아와 잇몸 문제로 괴로운 치과치료를 받아야 할 때 성모님께 기도드렸고, 지금도 운전대를 잡을 때면 성모님께 기도한다.
어느 날, 성모님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신앙서적을 읽다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하는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말에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을 남김없이 버린 상태였기에, 당신 존재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득할 수 있었으리라. 습관처럼 암송하던 성모송이 나에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수태고지에 몹시 당황하고 두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응답한다. 하느님을 오롯이 받아 안을 수 있었던 젊은 처녀 마리아. 요즘 표현으로 리즈시절이었을 당신이 하느님을 품었다. 믿음으로, 알 수 없는 삶에 열려있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바란다. 그리고 가끔은 성모님의 존재적 삶과 천사의 인사말을 마음속에 잘 간직하는 모습을 묵상한다. 자칫 떠들썩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성모님의 발현 이야기와 사뭇 대조를 이룬다. 나는 여전히 성모님 발현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동시에 남편이 보았을 성모님에 대해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