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탑 / 허진년
먼발치에서만 눈에 들어오는 아버지 그림자를 만나는 것 같다 올려다보면 우뚝 솟은 조형물 하나인 철탑은 삶을 지탱하려 평생을 용만 쓰는 아버지 표상이다 속내 휑하니 보이는 빈 몸 흔들리지 않게 버티는 견고한 다리통은 빗금으로 새긴 삶의 증표이고 불안정 상승기류가 사정없이 볼기짝 올려붙여도 울음 삼키며 하늘로 높이만 늘인다 키다리 바보인가 키다리 멍청인가 캄캄한 밤의 무서움 이겨내는 인내심은 저항도 아니고 오만은 더욱 아니다 골짜기를 뚫고 휘몰아가는 회오리가 텅 빈 가랑이 속을 헤쳐 내려설 때마다 몸서리치면서도 전선가닥 당겨 잡으며 중심 잃지 않고 자기영역 잡아내느라 속울음으로 고함을 친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경계심에 세상 하나씩 짊어지고 어둠 밝히는 등대로 서서 한 방향만 꿋꿋하게 지향하는 나침반인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