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는 이런 날 이런 고민들을 합니다.
다들 그런 날이 있지 않나요? 매일을 혼자 읊조리는 글만 쓰던 사람도 정체 모를 불특정 다수에게 말을 걸듯 글을 쓰고 싶은 날. 사실은 매일 꾸준히 살아내고 있는 안정된 일상이 꽤나 외롭고 허전해서, 이 나날들이 끝없이 연속될 것을 알기에 조금은 답답해서, 들어주는 이 하나 없음에도, 누가 들어준다 해도 차마 쑥스러워 말하지 못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건네듯, 내뱉어 나가듯 그렇게 글을 써 내려가고픈 날.
다들 웃는 모습으로 서로를 대해도 각자의 오늘은 그런 거잖아요. 조금 막막하고, 또 조금은 숨 막히고, 때론 머리가 무겁고, 당장의 내일도 모르면서 먼 미래가 걱정되고, 어제와 또 그 어제의 지나간 내가 저질러 둔 잘못들에 발목 잡히고, 나의 정리되지 못한 미련이 참 멋없고, 이 모든 게 점철된 정체 모를 괴로움에 물 먹은 솜처럼 마음이 버겁기도 하고, 다들 그런 거잖아요. 이게 뭐, 특별한 어려움인 게 아니잖아요. 이런 하루하루가 모여 삶이 되는 거잖아요.
활짝 웃고 기쁨에 들떠 어쩔 줄 몰라하는 순간들보다 바로 이런, 정적인 순간을 "잘" 받아들이는 게 "잘" 살아내는 것임을 최근에야 배웠어요. 참 어리석죠. 조금 늦은 깨달음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알게 됨에 감사하며 이 무거운 가슴을 풀어 나가 보려 해요. 축 쳐진 나를 어떻게든 끌어올려 보겠다 애쓰는 이 순간들이 바로 오늘, 지금 내게 주어진 감사한 하루임을 상기하면서 말이에요.
오늘 내게 주어진 책임의 발걸음이 조금 무거울 때 우습게도 네가 떠올랐어요. 하기 싫어하면서도 늘 성실하게 해내던 그 뒷모습이, 가기 싫어도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기에 시계추처럼 향하던 너의 발걸음이, 맞는 일이라면 아파하면서도 행하던 네 정돈된 목소리가, 오늘 나의 발걸음도 바른 곳으로 향하게 만들어 주었어요. 참 고마운 사람이면서도, 고작 네 자취를 따라서야 옳게 살아가겠다 겨우내 애쓰는 내가 참 작아지는 날이네요. 각자의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참 멋진 것 같아요. 매일의 당연한 책임이란 게,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고, 세월이란 걸 배우며 살아가다 보니 참, 전혀 당연한 게 아니더라고요.
잠 못 이룰 정도로 내 마음을 요동치게 하던 10대의 어느 날, 그 불안들이 20대가 되어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오히려 꽤나 반짝이던 날들을 이뤄 주는 작은 요소였던 것처럼, 지금 오늘의 이 하루가 30대의 나에게도 그렇지 않을까요? 사실은 시간이 지나면 다 나아지고, 무뎌지고 둥글어지는 것들이었고, 아니, 조금은 뾰족했어도 괜찮은 것들이었고, 실상은 작은 주제에 커다랗게 다가오는 이 고뇌들이 있었기에 내 20대가 영글어질 수 있었던 것으로. 그렇게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매일 널 그리워하는 내가 너무 바보 같다 여겨질 때쯤,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이렇게나 문득문득 그리워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났던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매일을 치를 떨며 지나간 이를 원망하는 나날들도 있을 텐데, 그렇지 않다는 거잖아요. 지나간 기억들이 참 따뜻했어서, 이렇게 그리워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리움을 만들고 떠나 준 이에 대한 감사를 배웠어요.
삶이 어떤 건진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사실은 이 작고 보잘것없는 내가 감히 삶의 정의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오만인 것 아닐까요? 삶의 정체를 알고 싶어 하는 것 자체가 신에 대한 오만방자한 도전은 아닐까요? 나보다 더한 인내의 세월을 살아낸 이들을 기만하는 게 아닐까요? 내가 뭐라고, 주어진 이 하루를 알차고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조차도 때론 버거워하는 내가 감히, 이 방대하고 장황한 삶을 논하다니, 정체를 몰라 답답함을 느끼다가도 그런 내가 조금은 웃기지 뭐예요.
오늘의 내가 조금 초라하다면, 초라하기 때문에 반짝이는 걸로 할래요. 어떻게 매일이, 매 순간이 반짝이겠어요? 아니, 어떻게 반짝임만이 가치 있고 귀한 것이겠어요? 사람은 초라하기에 귀한 것으로 할래요. 초라할 줄 알아야 그 속에서 많은 걸 깨닫고, 많은 걸 깨닫기에 한 번씩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는 걸로 할래요. 사람이 어떻게 항상 외롭지 않을 수 있겠어요. 오늘이 참 쓸쓸하고 외롭기에 함께하는 나날들이 더 값지고 행복한 것으로 할래요. 그렇기에 조금은 쓸쓸한 오늘도 꽤 다정한 날인 걸로 할래요.
초라하지만 다정한 이 작은 삶의 조각들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른이 되었답시고 꽤나 다양한 자유를 가지고 싶어 하지만, 사실 아직 서투른 게 많고 무서운 것도 많은 내가, 그런 사람으로 매일을 살아가길 바래요. 무겁지만 가볍게, 가볍지만 진중하게, 진중하지만 얽매이진 않게, 도리와 선을 지키되 그로부터 자유롭게, 자유롭지만 책임을 질 줄 아는 두 어깨로, 그렇게 살아갈 줄을 배우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