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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과 OpenAI, 그리고 경제학

우리의 HRD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데이터분석가입니다.


최근 인공지능(AI) 분야를 선도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미래 인재 개발의 방향을 암시하는 프로그램들을 잇달아 발표했습니다. 여러 면에서 놀랍지만 특히 HRD(인적자원개발) 분야에선 놀라움의 정도가 더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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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자료를 학습자의 수준에 맞춰서 재구성해주는 구글


며칠 전에 구글은 생성형 AI를 통해 PDF 문서를 학습자의 관심사나 이해 수준에 맞춰 교육 내용을 재구성해주는 'Learn Your Way'을 공개했습니다. 예를 들면 뉴턴의 제3법칙을 농구에 관심이 많은 학습자에게는 '농구공을 드리블할 때 바닥이 공을 밀어내는 힘'으로, 미술에 관심이 많은 학습자에게는 '캔버스에 붓을 누를 때 캔버스가 붓을 밀어내는 힘'으로 재구성해서 알려주는 식이죠. 그것만 주면 그려려니 하겠는데 슬라이드, 오디오 강의, 마인드맵까지 제공해 줍니다. 허허 무서운 놈들..


OpenAI는 'OpenAI Academy'를 통해 AI 활용 능력 인증 제도(AI Certification Program)를 도입하고, 'OpenAI Jobs Platform'이라는 채용 플랫폼을 통해 2030년까지 미국인 천만 명에게 자격증을 발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AI 활용 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표준화된 자격으로 인증함으로써, AI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역량의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얘기죠. 자체 AI를 가진 자의 자신감 같은데 아마 곧 한국에도 나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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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판 토익으로 다 해먹겠다는 OpenAI


학습 과정의 초개인화와 결과의 표준화로 요약되는 이들의 움직임을 보면 걱정이 됩니다. 생각이 많아진달까요.



이 두 프로그램은 HRD에 어떤 의미를 가지나

구글과 OpenAI가 제시한 두 프로그램은 단순히 새로운 교육 도구의 등장을 넘어, HRD의 근본적인 역할과 기능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이는 기업 교육의 기획, 실행, 평가, 그리고 채용에 이르는 HR 전반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가장 주목할만한 부분은 모든 학습자에게 동일한 모듈을 제공하는 기존 이러닝에 비해 확장 가능하고 더 효과적인 대안의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구글에서 밝힌 자료에서 'Learn Your Way'을 활용한 학습자는 일반 디지털 교재 사용자보다 학업 성취도와 지식 유지율 모두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은 성과를 보였거든요. 학습자 개개인이 자신의 필요와 속도에 맞춰 학습 경로를 스스로 설정하고 탐색할 수 있도록 유연한 플랫폼과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기술로 구현한 케이스인데, 이는 학습자가 자신의 학습 과정을 통제할 때 학습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자기 조절 학습이론의 대원칙과도 얼추 맞아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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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성취도와 유지율 모두 높게 나왔다


이런 대안은 '학습'과 '업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어떤 형태의 자료든 학습 모듈로 변환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되거든요. 일을 하다가 특정 부분에서 막히면, 관련 규정이나 사례를 'Learn Your Way' 같은 플랫폼에 넣고 나의 수준에 맞는 콘텐츠로 받으면 됩니다. 기업교육 역시 별도의 시간을 만들어 받는 형태가 아니라, 워크플로우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성과 지원 활동으로 그 성격이 달라지게 됩니다.


'역량'과 '평가'도 재정의됩니다. OpenAI는 'AI 활용 능력'이라는 새로운 역량을 노동 시장의 핵심 구성요소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런 시도가 시장에 먹힌다면(먹히리라 보지만) 특정 직무 자격이나 근속 년수와 같은 전통적인 역량 지표 대신 기존의 직무 기술을 AI를 활용해 얼마나 증강시킬 수 있는지가 중요해집니다. 직무 기술서나 역량 모델부터 평가에 이르기까지 'AI 활용 능력' 중심으로 재설계될 수밖에 없겠죠.


채용의 룰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OpenAI가 월마트, BCG 같은 글로벌 브랜드와 협력하여 인증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있다는 점은 이 자격제도가 시장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질 것임을 시사합니다. 'OpenAI 아카데미에서 학습하고(Learn) → OpenAI로부터 인증받고(Certify) → OpenAI 플랫폼을 통해 취업하는(Get Hired)' 하나의 파이프 라인이 생기는 거죠. 거대 AI회사가 설계, 관리하는 인재 파이프라인을 통한 채용이 당장의 대세가 되진 않겠지만 기업 입장에선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지인 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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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인력 전환 교육 사례들을 분석해서 설계한 OpenAI


이 두 프로그램은 기술을 기반으로 개인화된 학습 생태계를 설계하고, 새로운 AI 역량 모델을 정의하고 평가해서, 인재의 가치를 극대화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래 HRD의 역할에 대한 질문과 답을 동시에 던지는 셈이죠.


경제학에서도 눈여겨보기 시작한 변화

이러한 변화는 지식 경제 구조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지난 8일, 토론토 대학의 경제학자 Ajay Agrawal 등이 발표한 논문 "Genius on Demand: The Value of Transformative Artificial Intelligence"에선 AI가 지식 노동 시장을 어떻게 양극화시키고, 그 결과 조직 및 보상 시스템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업의 인재 전략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제공하는 연구라 생각합니다.


여기에선 지식 노동자를 기존 지식을 적용하는 '일상적(Routine)' 노동자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천재(Genius)' 노동자로 구분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일상적'이라는 개념이 '낮은 숙련도'가 아닌 '기존 지식과의 거리'로 정의된다는 점입니다. 변호사나 의사 같은 고도의 전문직이라 할지라도 정해진 절차와 판례를 따른다면 '일상적' 노동자로 구분할 수 있다고 썼거든요. 흥미로운 지점인데 AI는 바로 이 '일상적' 지식 노동 영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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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중간 계층이 사라질거라 말하고 있다


연구에선 그렇게 얘기합니다. AI가 도입되는 단기 국면에서는 천재 노동자들이 AI보다 비교 우위가 있는 영역, 즉 기존 지식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창의적이고 새로운 과제에 집중하도록 재배치됩니다. 지식 창출 비용 구조의 특성상,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갈수록 인간의 창의성이 가지는 상대적 가치가 AI보다 커지거든요. 반면, 장기적으로 AI의 효율성이 천재 노동자에 근접하게 되면서, AI는 광범위한 '일상적 과제는 물론 천재 노동자가 이전에 수행하던 중간 난이도의 '천재형' 과제까지 대체하게 됩니다. 중간이 사라지면서 천재 노동자와 일상적 노동자의 간극이 발생합니다.


그렇게 발생한 노동 시장의 간극은 조직 구조와 보상 시스템의 재설계를 동반합니다. 소수의 '천재 노동자' 그룹은 조직의 혁신과 전략을 주도하며 그에 상응하는 높은 보상이 주어집니다. 이들에 대한 성과 평가는 단기적인 효율성보다 장기적인 가치 창출과 혁신 기여도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반면, 다수의 일상 노동자들은 AI 시스템과 협업하며 업무를 수행하게 되므로, 이들의 가치는 'AI 활용 능력'과 '인간에 대한 상호작용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가 됩니다. 전통적인 연공서열 기반의 보상 시스템이 아닌, 노동자의 '기술(Skill)'과 시장 가치에 근거한 차별적인 보상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자연스레 이뤄집니다. 노동 시장의 틀이 바뀌는 거죠.


앞서 언급했던 기술적 변화와 지식 경제의 변화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그 지점에서 HRD는 할 일이 많습니다. '지금 조직에서 어떻게 '천재 노동자'를 식별하고, 육성하며, 유지할 것인가', '일상적 노동자들에게 어떤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고 훈련시킬 것인가', '새로운 천재 노동자의 가능성은 없는가'같은 새로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HRD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글로벌 AI기업들이 인재 개발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경제학이 노동 시장의 구조적 재편을 경고하는 동안, 우리의 HRD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최근 국내에서 개최되는 HRD 관련 학술대회나 포럼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런 흐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대부분의 학술대회나 포럼에서 빠지지 않는 타이틀은 'AI'입니다. 세션들 역시 'AI와 경력개발', 'AI와 조직문화', 'AI와 리더십' 등 AI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연 AI 시대의 본질적인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응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글로벌 트렌드가 학습의 '초개인화', 역량의 '재정의', 노동의 '양극화'와 같은 시스템 자체의 근본적인 재편을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라는 전통적 HRD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든요. AI를 활용한 성공 사례라고 소개되는 것들조차 단순 반복 업무 자동화나 채용 과정의 일부 효율화 등 제한적인 활용에 국한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유의미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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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통계로도 뒷받침됩니다. 올해 초에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HR 담당자의 61.5%는 업무에 AI를 활용하고 있지 않다 답했고, AI 활용에 대한 지식과 자신감 등이 부족해 AI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2%였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 AI 전문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 없다'라고 답한 비율은 무려 70%에 달했습니다. 충격적이죠. 이는 AI 기술이나 인프라 부족의 문제라기보다는, 변화를 주저하는 보수적인 조직 문화와 HR 담당자들의 인식 부족이 더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산업 전반에 AI가 던지는 파급력에 비하면 우리의 HRD는 준비가 부족합니다. 부족을 넘어 '이래도 되나' 하는 걱정마저 안겨줍니다. 인재의 질적 열세, 다가올 노동 시장의 구조적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슬픈 현실입니다.


재편의 시대,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AI가 주도하는 인재 개발 패러다임의 변화, 노동 시장의 구조적 변동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학습 과정은 개인에게 완전히 맞춰지고, 역량의 기준은 AI와의 협업 능력으로 재편되며, 지식 노동 시장은 '천재'와 '일상'으로 갈라지는 흐름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정말 눈앞에 닥친 현실이죠.


우린 AI를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면서도 그 논의는 여전히 전통적인 HR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실제 도입 수준은 매우 더딥니다.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조직 내에서 구성원들을 다독여 변화를 이끌어내고, AI의 원활한 협업을 통한 유의미한 성장, 기업 가치까지 이끌어내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는 진짜 전문가가 나서줘야 할 시점입니다.


바로 여러분처럼 말이죠.

그럼 다음 회차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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