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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그냥 구독료 지원을 해주시죠

AI로 고민하는 이 땅의 모든 경영진께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데이터 분석가입니다. 요즘 AI를 빼놓고는 대화가 되질 않습니다. 뉴스, 유튜브, 주식 등 어딜가나 AI가 대화의 중심에 있습니다. 실무에서도 예외는 아니죠. 아주 뜨끈뜨근합니다.


이런 뜨끈함은 데이터로도 확인됩니다. McKinsey의 2024년 AI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5%가 현재 생성형 AI를 사용 중이며, 이는 2023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입니다. 기업의 78%가 생성형 AI 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렸으며, 75%는 도입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하죠. Microsoft는 2025년을 AI를 중심으로 비즈니스 전략과 핵심을 재편하는 '개척자 기업(Frontier Firm)'이 탄생하는 원년으로 선포하기까지 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도입하겠다는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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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는 기술


뜨끈함 이면엔 '글쎄?' 하는 냉소도 있습니다. 가치 창출이 되겠느냐 하는 반응이죠. McKinsey는 2024-2025년 'State of AI' 보고서에서 생성형 AI를 사용 중인 조직의 80% 이상이 기업 전체 수준의 영업이익에서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영향을 목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Gartner는 한 술 더 떠서 2025년까지 생성형 AI 프로젝트의 30%가 개념 증명(POC) 단계를 통과하는 즉시, 혹은 그 직후에 '포기'될 것이라고 예측했죠. 가진 데이터의 질이 떨어지고 만들어 낼 비즈니스 가치가 불명확하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이런 뜨끈함과 냉소는 우리에게 '가파른 AI 도입'과 '빈약한 가치 창출'사이에 발생하는 간극을 보여줍니다. 경영진이 AI를 구매하는 하향식 결정과, 구매한 AI로 실제 가치를 만들어내는 상향식 과정은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보고서들은 AI가 비용 절감 측면(예: 공급망 및 재고 관리 61%)에서는 일부 성과를 보이고 있으나, 매출 증대와 같은 고급 추론 영역(예: 전략 및 기업 재무 35%)에서는 유의미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씁쓸하지만 당장 사무실만 둘러봐도 맞는 얘기죠. 손이 많이 가는 수작업은 사람이 하고 정작 신시장 개척 아이디어 같은 고오급 추론 작업을 AI에게 물어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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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의지, 보이지 않는 성과

우리 회사에서 쓰라고 도입한 AI는 왜 영업이익에 기여하지 못할까요. 이유를 하나씩 들여다보죠.



심리적 장벽 : 사용 자체를 망설이게 된다

첫 번째 장애물은 기술이 아닌, 사용하는 사람의 '불신'과 '두려움'입니다. 이건 그냥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자신의 AI 사용 기록이 회사의 서버에 저장되고, 분석되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성과 평가에 반영될 것을 좋아하는 직원은 없으니까요. IBM이 발표한 '2025년 AI 도입 5대 장애물' 연구에서도 응답자의 40%가 '데이터 프라이버시 및 기밀성 우려'를 핵심 장애물로 꼽았습니다. 내 모든 기록을 누군가 본다고 생각하면, 사용 자체가 망설여지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 됩니다


특히 '체면'과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문화에서는 부담을 넘어 부끄러움으로 간주되기까지 합니다.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는 실험적 질문이나 나의 무지를 드러내는 질문이 어딘가에 남는다면, 직간접적으로 나의 수준이 드러나버릴지도 모르니까요. AI 활용을 독려하면서 동시에 그 활용 내역이 모니터링되는 시스템은, 사용자의 심리적 저항을 극대화하여 사용 자체를 꺼리게 만드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사실 직원들은 AI를 놓을 수 없습니다. 맛을 봤거든요. 회사의 감시와 통제를 피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Microsoft의 2024-2025년 Work Trend Index에서는 이런 현상을 '자신의 AI를 직장에 가져오고 있다'(BYOAI, Bring Your Own AI)라고 표현하더군요. 회사가 제공하는 답답하고 통제된 AI 대신, 개인 비용으로 구독한 외부 AI 서비스를 활용한다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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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한다는 거 자체가 부담스럽다


이러한 'BYOAI' 현상은 보안의 관점에서 적지않은 위협으로 작용합니다. 최신 보안 리포트에 따르면, 보안 침해 사고의 무려 20%가 '직원들이 직장에 가져온 AI(Shadow AI)'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통제할수록 더 큰 구멍이 생기는 통제의 역설이 생기는거죠.

경영진은 '보안'을 이유로 어설픈 사내 AI를 구축하거나 외부 AI 서비스 접속을 차단합니다.

직원들은 이 통제(40%의 프라이버시 우려)를 피하기 위해, 개인 AI를 사용합니다(BYOAI).

관리·감독이 불가능한 이 'Shadow AI'로 기업 데이터가 유출됩니다(실제 보안사고의 20%).


이 문제는 'Shadow AI'를 '위협'으로 보느냐, 아니면 '자발적 학습의 증거'로 보느냐에 따라 해법이 달라집니다. 하나 분명한 것은, 통제는 이미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술적 장벽 : 먹일만한 데이터가 없어요

두 번째 이유는 쓸만한 데이터의 부재 입니다. AI는 데이터를 먹고 살지만 먹일 만한 데이터가 없거든요.


내심 다행인 건 이 부분이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앞서 언급한 IBM의 '2025년 AI 도입 5대 장애물' 연구에서 '모델 맞춤화를 위한 데이터의 부족'은 42%의 응답률로 2위를 차지했습니다. Gartner 역시 AI 프로젝트 포기의 핵심 원인으로 '낮은 데이터 품질'을 지적했으니까요. 이런 건 트렌드에 충실하군요.


AI의 진짜 가치는 조직 고유의 비정형 데이터를 분석, 정교한 추론과 도메인에 특화된 통찰력으로 조직의 핵심 업무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부의 데이터가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다면, AI에게 내부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교한 업무 지원(예시 : '지난 3년간 A 고객사 자료 모두 분석해서 다음주에 있을 관련 산업군과의 미팅 이슈를 도출해줘')을 요청할 수 없습니다. 급한대로 일반 지식만을 활용한 범용 AI에게 '신규 마케팅 캠페인 아이디어 10개만 줘'와 같이 막연하고 투박한 질문만 던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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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부터 확보하는 게 먼저다


쓸만한 데이터가 없다보니 업무 분배도 기이해집니다. 앞서 언급했던 손이 많이 가는 수작업엔 사람이 투입되고 정작 아이디어 도출 같은 추론 작업을 AI에게 물어보는 그림이 대표적이죠. 이익 창출을 위한 핵심 도구로 활용되기 보단 던지는 질문에 어쩌다 그럴듯한 답변이 걸리면 좋은거고 아니면 '이것 밖에 안 되네' 하고 창을 닫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AI로 기업의 영업이익에 영향을 미치려면, 경쟁사를 뛰어넘을 독점적 가치를 AI로 창출해야 합니다. 제아무리 우수한 AI를 갖다놔도 쓸만한 데이터가 대량으로 준비되어야 가치 창출의 가능성이 생기죠. 준비되지 않았다면 그 가능성은 0에 수렴하며, 영업이익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그에 비례합니다.


아니다. 정정할게요. 그냥 0입니다. 가능성 0.



시간적 장벽 : '시행착오' 할 시간이 없다

마지막 장벽은 시행착오의 절대 부족입니다. 너무 당연해서 잊고 지나가실진 모르겠으나 AI는 지식이 아니라 '기술'입니다. 악기를 배우거나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술은 실패의 누적을 통해서만 체득됩니다.


교육학이나 기술 습득에 관한 다수의 연구에서 '새로운 디지털 양식을 통한 학습 과정은 시행착오의 원칙에 크게 의존한다'라는 게 정설입니다. AI도 예외는 아니죠. 어떤 프롬프트가 더 나은 결과를 내는지, 어떤 작업에 AI가 유용하고 비용 대비 어떤 AI가 합리적인지를 판단하는 AI 리터러시는, 오직 직접 부딪혀보고 실패하며 수정해가는 물리적 시간을 통해서만 길러집니다. 특강 듣고 영상 몇 번 본다고 해서 획득되는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그런 물리적 시간은 사치에 가깝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C레벨 회의에서 AI가 '비즈니스 필수 요소'라고 선언되고 계정이 내려옵니다. AI 전환(AX)은 직원의 AI 리터러시를 요구하지만, 이 리터러시는 시행착오를 통한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프롬프트 사용법 등을 단기간에 교육받지만 한계가 있고, 지급된 AI는 기능은 둘째치고 사용 자체가 부담스럽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회사는 '보안'을 이유로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유일한 경로(외부 AI 접속)마저 차단해버립니다. 말 그대로 모순의 정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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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시간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수다


AI 도입을 서두르던 대부분의 기업들은 AI를 구매하는 순간 AI를 '기술'이 아닌 '자산'으로 인식해버립니다.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 직원들이 실패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직원들 입장에선 그냥 하던 일에 AI가 더해졌을 뿐인데 위에선 생산성이 오를 것이라 기대하죠. 오타니가 사용하는 글러브와 배트를 대량으로 사서 뿌린 다음에, 직원들에게 '내일부턴 160km를 던지고 타석에선 홈런을 쳐봐'하는 감독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리터러시와 전문성 부족은 피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


자체 AI를 구축하든 팀 계정을 사서 안기든 결과는 마찬가지 입니다. AI 도입계획에 '시행착오'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들은 포함되지 않았으니까요. 시행착오를 허락하지 않는 모순적 환경에서 조직의 AI 역량은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 땅의 AI로 고민하는 모든 경영진께

여기에서 우린 Shadow AI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직원들의 자발적 AI 도입이 통제하거나 처벌해야 할 대상인가에 대한 물음이죠.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디지털 전환이 더디고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의 환경에서 '사내 AI 구축'이나 '팀 계정 사용 독촉'은 효용 측면에서 확실한 한계가 있으니까요. Shadow AI를 잘만 활용하면 앞서 지적한 세 가지 장벽을 낮출 수도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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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도입에 조바심을 내는 경영진이 적지않다

저는 직원 개인이 자발적으로 사용하는 AI 서비스를 허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첫걸음이라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구독료까지 지원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AI로 인한 영업이익의 창출은 데이터도, 시스템도 아닌, 결국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직원에게서 나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구독료 지원은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인적 자본에 대한 R&D 투자로 간주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적어도 조직의 데이터가 완벽히 준비되고, 실패를 허용하는 시행착오의 시간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대표님, 그때까진 그냥 구독료 지원을 해주세요.




[참고자료]

https://www.microsoft.com/en-us/research/wp-content/uploads/2025/10/Microsoft-AI-Diffusion-Report.pdf

https://www.mckinsey.com/capabilities/quantumblack/our-insights/the-state-of-ai

https://blogs.microsoft.com/blog/2025/04/23/the-2025-annual-work-trend-index-the-frontier-firm-is-born/

https://www.ibm.com/think/insights/ai-adoption-challen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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