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이노의 가르침에 충실한 우리에겐 어떤 미래가 기다릴까

성공하지 못하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데

11월에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떠나면 좋은 점이 있습니다. 비수기라 항공권 가격이 저렴하고, 바람만 거세지 않다면 비교적 가벼운 옷차림으로도 다닐 수 있기 때문이죠. 가면 하릴없이 걷고 또 걷다 돌아오곤 합니다.

KakaoTalk_20251127_094237218_03.jpg
KakaoTalk_20251127_094237218.jpg
해안가만 따라 걸어도 아주 괜찮다


머물던 숙소 서가에서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차트를 지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호기심에 펼쳐 들었다가, 이내 적잖이 놀라고 말았습니다. 책에 담긴 내용 자체는 틀린 말이 없었지만, 그 내용을 전제하고 있는 세계관이 무척 거칠더군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암묵적 동의, 즉 '돈이 없으면 존엄도 없다'를 그토록 적나라하게 활자화했다는 점이 충격이었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비극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갈수록 떨어지는 삶의 질, 궤멸에 가까운 저출산, 어느새 세계 1위가 익숙해진 자살률, 그리고 쉴새없이 피어오르는 혐오와 고립.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그토록 갈망해 온 성공 지상주의와 물질 만능주의가 빚어낸 결과물입니다. '성공과 부를 획득하는 과정에서의 치열함이 곧 삶의 존엄이자 정답'이라는 이 책의 메시지는, 개인의 생존 전략으로서는 유효할지 몰라도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라 하기에는 위험합니다.


세이노의 가르침에는 전쟁터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실전적이고 유효한 문장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밀려오는 씁쓸함도 가득하죠. 전 세계 주요 선진국 중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삶의 의미 1순위로 꼽은 나라, 대한민국. 어쩌면 이 책의 열풍은 우리의 물질 만능주의가 낳은, 안타까운 결과물일지도 모릅니다.




소유의 민족 : 물질에 한이 맺힐 수밖에 없었던 역사

한국 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 우리는 절대 빈곤의 시대를 건너왔습니다. 당시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는 단순한 캠페인 슬로건이 아니라, 배고픔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보자는 주문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에게 물질은 사치나 향락의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나와 내 가족을 지키는 필수재의 성격이었습니다.

zxqfOS2VSl.jpg
1265594953-96.jpg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주문이었다


이 시기에 형성된 물질에 대한 집착은 탐욕이라기보다 공포에 기인합니다. 가난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는 우리 DNA에 깊이 각인되었고, 이는 세대를 넘어 전수됩니다. 세이노가 드러내는 가난에 대한 경멸에 가까운 태도와 부에 대한 집요한 추구는, 개인의 성향을 넘어 그 시대적 결핍이 만들어낸 두려움의 연장선에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가난과 빈곤이 해결된 21세기에도 이 두려움이 사라지긴 커녕, 오히려 더 강력하게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녀 교육에 대한 강한 집착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육이야말로 신분 상승을 위한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투자니까요. 부모는 자녀의 사교육비를 대기 위해 자신의 노후를 희생하고, 자녀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여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가족의 명예와 경제적 지위를 높여야 한다는 부채의식을 안고 성장합니다. 투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교육은 가족 구성원마저 기능적으로 분류하죠. 아버지는 투자금을 마련해 오는 도구로, 자녀는 부모의 투자를 회수할 성적표로 전락하고 맙니다.


세이노의 가르침이 호소력을 갖는 지점도 바로 여기입니다. 세이노는 인간관계조차 철저하게 기능적이고 도구적으로 맺으라고 말합니다. '부모나 형제라도 가난한 마인드를 가졌다면 멀리하라'는 식의 지침은, 가족마저 효율성과 성과로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비정한 단면을 정당화해 줍니다. '효도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지점에선 물질이 윤리를 눌러버리기까지 하죠.


'너무 없이 살다보니 그랬다'가 맞는 말입니다. 그런 시절이었고요.


경쟁의 민족 : 여기에서 밀리면 죽는다

여기에 1997년 IMF 외환위기는 우리에게 결이 다른 공포를 심어주었습니다. 대량 해고와 구조조정의 칼바람 속에서, 평범한 가장들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고 수많은 가정이 해체되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노동시장에는 비정규직과 계약직이 자리 잡았고, 경쟁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때 '여기에서 밀리면 죽는다'는 생존 본능을 확실하게 익힙니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유독 '노예근성 타파'와 '주인 정신'을 강조합니다. 얼핏 보면 주체적인 삶을 독려하는 표현 같지만, 바탕에는 '당신이 가난한 것은 당신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당신이 나태하기 때문이다'는 메시지가 깔려 있습니다. 시스템 붕괴로 인해 발생한 구조적 불평등의 책임까지 개인에게 떠넘겨버리죠.

unnamed.jpg
SE-24b18d48-b673-4f7b-91d0-05262e65d76e.png
게을러서 가난한가, 가난해서 게으른가


불평등 문제가 처음 제기되었을 때는 이를 구조적 모순으로 인식하고 대응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그런 인식마저 희미해졌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고착화되었고, 고도성장이 멈추면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끊어졌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의 재력 없이는 계층 상승이 불가능한 사회. 이는 사회 시스템 전체에 대한 거대한 불신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절차적 공정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시스템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이노의 가르침은 '사회 구조를 비판하는 것은 패배자의 변명이다. 세상이 불공평한 건 당연하니 너는 그 룰을 이용해서 부자가 돼라'는 메시지를 반복합니다. 동시에 '개인이 초인적인 노력을 통해 불공평한 구조를 뚫고 올라가야 한다. 그래야 너도 나처럼 부자가 된다'는 희망회로도 자극합니다. 하지만 이는 극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양산하는 경쟁 시스템만 견고하게 만들 뿐입니다.


노력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가난해진 게 개인의 실력만은 아니라는거죠.


모두가 성실했기에 맞이할 예견된 소멸

에리히 프롬은 현대 산업사회가 인간을 소유의 감옥에 가두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소유 양식의 삶에서 인간의 가치는 '그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그가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에 의해 결정되죠. 지금 딱 우리 사회에 맞는 비판입니다. 개인의 정체성은 출신 학교와 아파트 평수, 연봉, 자산, 자녀의 성적표로 환원되며, 사회성은 인맥이라는 자산으로 치환되니까요.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시도는 구성원 전체를 만성적인 불안과 상대적 박탈감으로 몰아넣습니다. 들불처럼 번진 SNS는 '나는 내가 가진 것으로 존재한다'는 어젠다를 더욱 공고히 합니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이러한 욕망에 대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해서 상대를 압도하라'는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소유의 감옥을 더 높고 두텁게 쌓아 올립니다.


비교와 경쟁에 지친 사람들은 호전성을 드러냅니다. 자신이 가진 힘(구매력)을 확인하고 싶어 하기에, 자본주의적 위계질서에서 약자로 판단되는 서비스직 종사자나 빈곤층에 대한 갑질을 자행하죠. 불안과 박탈감을 해소하고자 이대남/이대녀, 노키즈존, 맘충, 틀딱, 전세거지와 같은 혐오 표현을 쏟아냅니다. 반대로 자신보다 위에 있는 대상에게는 맹목적인 부러움과 시기심을 동시에 표출합니다. 모두가 피해자면서 물고 물리는 판이 벌어집니다.

a9537c84c9418c0d4192f213868ed777.png
a67ec9f4ffd883821a89c840b2a4a679.png
혐오와 차별, 그리고 평등. KOSSDA newsletter97. 2024/10


돈을 벌지 못하거나 생산성이 떨어지는 존재는 이 소유의 감옥에서 설 자리가 없습니다. 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를 기록하는 자살률, 그중에서도 노인 빈곤율과 맞물려 급증한 노년층 자살은 '쓸모없어졌다'는 공포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청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에게 '나약하다', '노력이 부족하다', '성공하지 못하면 죽는 게 낫다'며 던지는 질타가 왜 쿨하고 시원한 해법이 되는 걸까요.


소유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결국 성실한 소멸로 이어집니다. 청년들이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는 감정이 메말라서가 아닙니다. 이를 수행할 물질적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스스로 검열하기 때문입니다. '미친 듯이 일해서 부자가 되어야만 사람 구실 한다'는 기준 아래서 가족은 그저 짐일 뿐입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존재의 기쁨보다 비용과 경쟁이라는 소유의 고통이 압도적으로 크기에, 청년들은 생애의 선택지에서 출산을 지워버립니다. 최근 출산율 수치가 일시 반등했다는 통계가 있지만, 근본적인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추세적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가 맞이할, 예견된 소멸 입니다.




세이노의 가르침에 충실한 우리에겐 어떤 미래가 기다릴까

'겨우 책 한 권에 무슨 의미 부여를 그렇게 하느냐'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고작 책 한 권이니까요. 세이노라는 개인이 보여주는 치열함과 독기는 분명 존중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그의 조언대로 실천한다면 개인의 삶은 경제적으로 훨씬 윤택해지겠죠. 하지만 우리 모두가 세이노의 가르침에 충실해진다면, 우리 사회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합니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시대상의 지배를 받습니다. 이미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소유의 논리와 공포, 불안이 지금보다 더 짙어진다면 과연 우리는 버텨낼 수 있을까요. 이제는 '어떻게 부자가 될 것인가'를 넘어, '어떤 사회에서 살 것인가', 그리고 '무엇이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가'를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소유를 늘려가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작은 목소리나마 내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KakaoTalk_20251127_094237218_05.jpg
KakaoTalk_20251127_094237218_02.jpg
김희선제주몸국(9000원), 카페 동립(6000원)


아, 제주도는 몸국과 티라미수 조합이 좋습니다.





(참고자료)

세이노 '세이노의 가르침'

에리히프롬 'To Have or to Be? The Nature of the Psyche'

https://www.oecd.org/en/publications/society-at-a-glance-2024_918d8db3-en.html

https://www.koreatimes.co.kr/southkorea/society/20211202/koreans-pick-material-well-being-as-top-source-of-meaning-in-life-survey

‘Hell Joseon’ - Tales from a South Korean Youth Trapped Between Past and Present

Chang Kyung-sup and The Logic of Compressed Modernity: A Review Article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금 여기 우리에게 일머리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