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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암 Sep 17. 2024

C49.9 - Myxoid Liposarcoma

Episode 13 | 이 글들이 어떻게 읽혀지기를 바라는 마음

블로그의 시작

장기 휴가중에 종양을 발견하고서 부터 심상치 않은 느낌에 틈틈히 병의 발견에 기록하기 시작했었다. 원래 일기나 기록을 잘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번엔 뭔가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 뭔가 암을 예견 했었을까?

기록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쏟아지는 수많은 육종관련 정보들과 나의 감정의 소용돌이를 어디에 분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잘한 일이다.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Google Docs에서 글을 써 나아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익명으로 블로그 포스트를 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블로그 플랫폼을 써야 하는지가 중요해젔다. 국내에는 네이버 블로그와 브런치가 있고, 해외에는 Medium이나 자체 github 구축 등이 옵션이다. 익명으로 포스트할 계획이라 페이스북이나 링크드인 같은 소셜미디어들은 답이 아니였다. 이러한 고민을 이전에도 해봤었다. IT관련 기술 블로그를 해보자고 마음먹기를 여러번 했었고, 이때마다 어느 블로그 플랫폼을 쓸지 리뷰해 보았다. 그때를 되돌아보면 플랫폼 리뷰하느라 지쳐서 컨텐츠를 만들지도 못하고 나가 떨어졌다.

이번에는 플랫폼 리뷰하는데 최소한의 시간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컨텐츠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브런치 플랫폼을 살펴보는데, 다른 플랫폼과 다르게 작가가 등록이 안 되면 블로그를 할 수가 없었다. 오기가 생겼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한두개의 습작과 작가소개가 필요했다. 구글닥스에 써놨던 기록을 습작으로 제출하고 기술서 출판한 경험을 무기로 작가신청을 했다. 몇일 있다가 작가등록이 되었다.

에피소드가 3회 이상 쌓였을때 나 스스로 루틴이 형성되었다. 이후 자연스럽게 이런 토픽은 이런 에피소드로 뽑아야겠다고 머리속에서 무조건 반사가 이루어 졌다. 일기처럼 일별로 적어볼까 하다가 토픽별로 적기로 하였다. 구글닥스에 토픽과 글거리들을 노트해 두고, 어느 정도 쌓이면 에피소드로 뽑아낸다.

에피소드를 쓸때 커버포토나 이미지들이 중요한데, 그림들을 선택하는데 시간을 제법 쓴다. 에피소드의 주제와 딱 부합하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없기에 검색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이 소요되며, 정말 못찾으면 때로는 편집하거나 직접 그리기도 한다. 이러면 한두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이 투병기가 어떻게 읽혀지기를 바라는 마음

이 투병기는 여러가지 목적이 있다. 첫번째는 이 엄청나고 기나긴 투병 기간 동안 나의 감정상태를 기록하는 나의 일기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육종 관련 정보이든 나의 롤러코스터 타는 감정이든 어디에 쏟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육종과 관련된 의학정보를 나의 시선으로 가공해서 나의 감정과 느낌을 가득 담아 써 나가고 있다.

두번째는 이 아픔을 고스란히 함께 공유하는 나의 가족을 위한 기록이다. 나도 힘들지만 나의 사랑스런 아내, 나의 아이들, 양가 부모님, 그리고 누나와 처제 가족들. 지금도 수시로 눈물 흘리고 슬퍼하는 그들에게 이 기록은 소중할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때는 완치가 되었기를 믿으면서), 아내와 함께 이 기록들을 읽으면서 한잔의 안주거리가 되길 바란다. 특히 두 아이들은 아직 10대라서 아빠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아직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들이 성인이 되어서 암을 충분히 이해했을때, 아빠가 이렇게 암을 극복했구나하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세번째로 다른 육종환우들을 위해 참고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일 수 있다. 육종은 워낙에 희귀병이라 투병 데이터들이 많이 없기에 이 글들이 그들에게 병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리라 믿는다. 육종환우가 있는 까페에 연재할까도 했지만, 아내의 권유로 까페 활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가장 큰 이유는 까페에는 투병성공 소식도 있지만 투병실패 (즉, 돌아가신 분들) 소식도 많기에 내가 그런 글들을 많이 보면 힘들어진다는 이유이다. 아내는 까페에서 모든 글을 읽어보고, 나에게 여과된 정보만 알려준다.

끝으로 나의 투병 소식을 궁금해 하는 나의 지인들을 위한 업데이트이다. 비록 익명으로 글을 쓰지만 지인들에게 이 브런치 링크를 공유하면서 나의 암치료 상황을 자세히 업데이트 할 수 있고, 일일이 근황을 공유하지 않아도 된다. 가깝고 또는 먼 지인들의 마음을 일반화 하기는 어렵지만서도, 또 내가 그들이 아니기에 그들의 속마음을 알 수 없지만서도, 그 동안 느낀바를 적어보면, 그들은 나의 암소식을 적지 않게 놀라하면서,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위로해 주려한다. 때로는, 내가 힘들어서 동굴 깊숙이 들어갔음에도, 나의 상황을 (때로는 직접 만나서) 알고 싶어했고, 그로 인해 동굴 속에서 어렵게 기어나와 ‘나는 괜찮으니 걱정마세요’라는 근사한 연기를 하곤 했다. 그런 연기를 본 지인들은 ‘역시 씩씩하고 긍정적이야. 금방 나을 거야’를 외치며, 본인들이 가진 나에 대한 걱정을 한시름 놓는다. 그들의 걱정을 덜기 위해 환자인 내가 근사한 쇼를 해야하는 아이러니한 이런 행동들이, 전혀 나쁜 의도가 없었음에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쉽게 위로가 안 되었다. 반대로, 나 역시, 큰 아픔을 겪었던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암에 걸리거나 등등) 나의 지인들에게 무지한 배려와 위로를 했었을 것임에 반성한다.

예시당초 이 글들을 통해 금전적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목적으로 작성을 시작하지 않았다. 따라서, 조회수나 구독수는 중요하지 않다. 에피소드의 개수도 중요하지 않다. 암이 완치판정 받을때까지, 대략 5년 동안 꾸준히 치료 정보와, 나의 건강상태, 그리고 나와 가족들의 감정상태를 기록할 것이고,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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