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어제 협의회에서 있었던 일이 자꾸만 떠올랐다.
내가 준비한 문항을 발표하고 있을 때, 관련 담당 부장이 말했다.
"두 문제는 변별력이 없어 보여요. 변경 부탁드려요."
순간 어이가 없었다. 그 부장은 몇 년 전 나의 계원이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내 나름의 논리를 펼치며 문항의 타당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 부장은 작년 상황을 들먹이며 다시 요청했다. 작년에 제대로 된 스크리닝이 이루어지지 않아 신입사원들 때문에 올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회사가 추구하는 인재를 뽑기 위해서는 변별력 있는 문항이 필요하다는 것.
논리적으로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이유였다. 그래서 결국 수용했다. 하지만 "내 계원이었던 부장한테 까여 기분이 좋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얼마나 대단한 인재를 뽑으려고 저렇게 유난을 떠는지 꼴사나워 보였다.
그런데 협의회를 마치고 퇴근길 차 안에서,
"내가 좀 더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했나?"
"더 강하게 밀어붙여 싹수없는 부장 코를 더 납작하게 해야 했던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나 자신을 자책하기 시작했다.
왜 그 순간에 더 단호하게 나서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쉽게 물러났을까?
하지만 또 다른 생각이 끼어들었다.
"그 부서의 상황이 그러하니 그 부장의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다가 다시 "직설적으로 말한 그 부장이 싹수없어 보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굳이 그런 식으로 말해야 했을까? 좀 더 완곡하게 표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들이 마치 회전목마처럼 돌고 돌았다. 자책 → 분노 → 합리화 → 짜증 → 다시 자책. 퇴근길 30분 동안 나는 같은 상황을 몇 번이나 되씹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저녁을 먹다가도, TV를 보다가도 문득문득 그 생각이 떠올랐다. "더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했는데."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짜증이 났다. 왜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이미 끝난 일인데 말이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대단한 인재를 뽑으려고 저렇게 유난을 떠는지"라는 비아냥거리는 생각이 뒤따라왔다. 그 생각이 또 다른 짜증을 불러일으켰고, 점점 무기력해졌다. 정신적으로 피곤해져서 평소보다 훨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아침 어제 일을 다시 생각해 봤다. 회의실에서 몇 분간 벌어진 작은 불편함이 왜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니며 에너지를 소모하게 했던 걸까?
오늘 아침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책에서 ‘생각이 감정을 만들고, 감정이 행동을 만들며, 그 행동이 다시 생각을 만들어낸다.’라는 구절을 읽으며 어제의 고민 실타래가 풀리는 것 같았다.
"더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했다"라는 생각이 들면 → 자책감과 분노가 일어나고 → 그 감정 때문에 같은 장면을 더 부정적으로 반복 재생하게 되고 → "싹수없는 부장"이라는 더 강한 판단이 들었다.
반대로 "부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면 →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 그 마음 때문에 좀 더 관대하게 상황을 바라보게 되고 → "그래,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이 두 패턴이 번갈아 일어나면서 내 마음을 출렁이게 했다. "더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했다"라는 후회와 "그래도 이해해야 한다"라는 이성 사이를 오가며, 마치 바다에서 파도를 타고 있는 것처럼 한순간은 위로 올라갔다가 다음 순간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런 내적 소용돌이가 내 행동까지 바꿔놓았다. 평소 같으면 집에 와서 책을 읽거나 운동을 했을 텐데, 어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정신적 에너지가 반복되는 상상의 대화와 자책에 소모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생각, 감정, 행동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만들어내는 순환고리. 이 순환고리는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고리를 어디서 끊을 수 있을까?
"더 강하게 나섰어야 했다"라는 자책 대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라고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다. 또는 감정을 조절해서 자책감과 분노를 가라앉히는 것이다.
부장의 직설적인 말투가 여전히 불편하긴 했지만, "더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했다"라는 자책을 "그 순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정이었다"라는 인정으로 바뀌었다.
작은 일에서 시작된 생각이 감정을 만들고, 그 감정이 상상의 대화나 자책을 만들며, 그 행동이 다시 더 강한 부정적 생각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감정을 느끼는 존재이고, 또한 행동하는 존재다. 이 세 가지가 서로 얽혀 만들어내는 우리 내면의 역동성을 이해한다면, 조금 더 현명하게 내 마음과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소용돌이 속에 있는지는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