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떠난 이유
고등학교 시절, 교회 학생부 회장을 했던 친구가 있었다. 매주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왔고, 청년부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대학교 동기도 마찬가지였다. 주방 봉사, 찬양팀, 주일학교 교사까지 도맡아 하며 나보다 훨씬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다. 그런데 동기 역시 이제는 교회와 거리를 두고 산다.
그리고 옛 직장 상사. 부흥회며 각종 모임에 누구보다 열심히 참석하던 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와 담을 쌓고 지낸다.
얼마 전, 세 사람을 각각 만날 기회가 있었다. 굳이 직접 묻지 않았는데도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 이유가 흘러나왔다.
고등학교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교회가 너무 비논리적이야. 맹목적이고 폐쇄적이고."
대학교 동기의 말은 조금 달랐다.
"교회 사람들을 보면… 윤리적이지 못하고 자기 것만 챙기더라. 천주교처럼 포용적이지도 않고."
상사는 더 직설적이었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다녔는데, 뭔가 잘못 알고 다닌 것 같아. 개신교 체제 자체가 마음에 안 들어."
그들은 이제 누군가를 의지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믿으며, 예수님이 말씀하신 교회가 단순히 건물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상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교회를 찾는다고 했다. 어머니께 드리는 효도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들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 맞는 말도 아니었다. 한때 그들의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부러워했던 내 입장에서는, 지금 함께 예배드릴 수 없다는 사실이 그저 아쉽게 다가왔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말이다.
솔직히 나도 그들처럼 교회를 떠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교회 안에서 실망스러운 일을 겪을 때마다, 내 모습조차 그리스도인답지 않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그런 마음이 스쳤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히려 내 확신은 더 커졌다. 예수님이 나에게 부어주신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을 떠나 살 수 없겠다는 확신 말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떠올리면, 그때 나를 붙들어주신 분은 예수님이었다.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주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물론 때로는 불평도 한다. "왜 이렇게 힘들게 하시나요?" 하고 투정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신앙은 내게 너무나 소중하다.
친구들과 상사가 지적한 “본이 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사실 내 안에도 있다.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 때가 많다. 욕심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적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끄럽다. 혹시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 실망을 안겨준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더 미안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교회에 나간다. 꾸역꾸역 예배드리고 봉사도 한다. 친구와 상사가 말한 기독교의 논리가 그들에게는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믿는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언젠가 그들을 다시 품으실 거라고. 그리고 언젠가 그들과 함께 신앙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다. 교회를 떠난 그들도, 여전히 교회에 남아 있는 나도. 완벽한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요하다. 서로를 판단하기보다는 품어주는 은혜 말이다.
나는 오늘도 불완전한 신앙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