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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해결은 'step by step'

유연성

by 어니스트 정

17년을 함께한 차가 있었다. 아내는 2년 전부터 새 차를 사자고 했지만, 나는 버텼다. 아직 멀쩡한데 뭐. 2025년 2월 중순, 결국 아내의 손을 들어줬다. 4월 초에 새 차가 왔다.


4개월 후, 조수석 뒷바퀴 저기압 경고등이 켜졌다.


강의를 가던 길이었다. 예전 차에는 없던 기능이라 처음엔 신기했다. 그런데 곧 고민이 됐다. 정비소로 가야 하나, 그냥 갈까. 중요한 강의였다. 계기판을 무시하고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혹시 사고가 나면 어쩌지. 다행히 강의를 무사히 마쳤고, 돌아오는 길도 괜찮았다. 하지만 저기압 등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집 근처 셀프 세차장에서 공기압을 넣었다. 등이 꺼졌다. '아, 오작동이었구나.'

1주일 후, 똑같은 자리에 또 경고등이 켜졌다. 오작동이 아니었다. 문제가 있는 거였다. 전체 점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새 차니까 사설보다는 지정 정비소가 낫겠지. 그런데 우리 부부는 둘 다 차로 출퇴근한다. 한 대가 정비소에 들어가려면 누군가 조퇴나 반차를 써야 했다.


1주일에 한 번 공기압만 넣으면 등이 꺼졌다. 그래서 미뤘다. 근 두 달 동안 매주 셀프 세차장을 찾았다. 슬슬 짜증이 났다. 아내 차인데 왜 내가 매번.


어젯밤, 아내 업무를 도와주다 새벽 5시 반에 잠들었다. 눈을 뜨니 10시 30분. 서둘러 준비하고 정비소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20분. 입구에 '금일 정비 마감'이라는 팻말이 보였지만 그냥 들어갔다. 두 달을 버텼는데 오늘 안 되면 안 됐다.


사무실에는 전화벨 소리가 요란했다. 50대쯤 돼 보이는 직원분이 전화를 받느라 바빴다. 통화가 끝나고 상황을 설명하니, 센서나 타이어를 점검해야 하는데 오늘은 마감이란다. 내일 토요일에 오라고. 이 지역에서 토요일에 여는 곳이 여기뿐이라 사람들이 몰린단다.


"몇 시쯤 오면 될까요?"

"보통 아침 7시부터 줄 서요."


어제 아내 일을 도와준 게 후회됐다. 일찍 잤으면 일찍 왔을 텐데. 두 달 동안의 걱정이 내일로 또 미뤄졌다. 짜증이 치밀었다.


정비소를 나와 인근 다른 대리점에 전화를 걸었다. 추석 연휴 후 첫 근무일이어서인지 모두 마감이었다. 마지막으로 건 곳에서 펑크라면 3시간 대기 후 봐줄 수 있다고 했다.


3시간? 몸도 피곤한데.


그때 생각을 바꿨다. 자동차 보험회사에 타이어 진단을 받고, 펑크가 아니면 그때 정비소를 가면 되지 않을까. 앞도 막히고 옆도 막히니 위를 보게 됐다.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10분 만에 기사님이 도착했다. 타이어를 살펴보던 그가 말했다.

"여기 못이 박혀 있네요."

성인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못이었다.

KakaoTalk_20251010_162349791_01.jpg 타이어에 박힌 못

두 가지 생각이 스쳤다.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고치기만 하면 되겠구나. 그리고... 두 달 동안 주인을 잘못 만나서 얼마나 아팠을까.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힌 채 두 달을 버텼다고 생각하니 차에게 미안했다.

기사님이 시원하게 두 달의 걱정을 해결해 주셨다. 감사했다.


그런데 나는 왜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새 차라서 혹시 모를 다른 문제도 있을 것 같았다. 전체 점검을 받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보상도 받을 수 있을 거고. 그리고 우리 부부는 둘 다 차로 출퇴근한다. 아내 차지만 정비소에 들어가려면 내가 시간을 내야 했다. 아내는 어려워한다. 게다가 1주일에 한 번 공기압만 넣으면 괜찮았다.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럼 왜 오늘은 마음먹고 정비소에 갔을까?

매주 공기압을 넣으러 가는 게 짜증 났다. 내 차도 아닌데 아내는 신경도 안 쓰고. 그리고 오늘은 휴가였다. 이제는 더 미룰 수 없었다. 꼭 진단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깨달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생각한 해결 방법이 맞다고 믿었지만, 좀 더 신중히 여러 방법을 모색해 봤어야 했다. 저기압 경고등이 처음 켜졌을 때 아내가 동료들 이야기를 들려줬다. 보험회사에서 무상으로 타이어 진단을 해준다고. 나도 알고 있었다. 예전에 그렇게 점검받은 적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나도 다 알아, 혹시 모를 다른 고장일 수도 있으니 정비소가 낫겠지.


그때 단계별로 생각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던 게 문제였다.


문제를 만나면 한 번에 해결하려 하지 말자. 스텝 바이 스텝. 한 걸음씩.


오늘 아침 깨어나지 못했던 것도, 정비소가 마감이었던 것도, 다른 곳들도 모두 마감이었던 것도. 앞도 막히고 옆도 막히니 결국 위를 보게 됐다. 그리고 가장 간단한 해결책을 찾았다.


돌이켜보니 그동안 나는 복잡하게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문제가 생기면 큰 그림부터 그렸다. 전체를 보려 했다. 그게 현명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때로는 지금 당장 발 밑에 놓인 작은 돌부터 치워야 한다. 그게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다.

새 차의 조수석 뒷바퀴에 박혔던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못. 그 못이 알려준 게 이런 거였나 보다.

삶이 막막할 때는 한 번에 해결하려 하지 말자. 앞이 막히면 옆을, 옆도 막히면 위를 보자. 그리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그렇게 한 걸음씩 가다 보면 어느새 길은 열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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