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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결핍 수업 16화

N포세대의 슬픈 자화상

기회의 결핍

by 어니스트 정

“딸, 꿈이 뭐야?”

“나, 미국 이민 가서 돈 많은 백수 되는 거.”

“뭐라고….”


딸의 꿈은 수시로 바뀌었다. 의사, 어린이집 교사, 수의사 등등…. 하지만 이번 대답은 달랐다. 초등학교 6학년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춘기의 일시적인 방황이려니 하며 그 이유를 물었다.


딸은 한국은 전쟁이 날 것 같아 이민을 가고 싶고, 돈 많은 백수는 그냥 편하게 살고 싶다고 답했다. 초등학생다운 답변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았다.


얼마 전 <한국이 싫어서>라는 영화를 봤다. 극 중 주인공이(계나: 고아성 주연) 던진 “한국에는 희망이 없어!”라는 말이 철렁했다. 처음에는 충격적이었다.


‘왜 한국에 희망이 없을까? 얼마든지 노력하면 아직도 한국은 희망의 땅인데….'’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청년들을 둘러싼 현실이 그들을 얼마나 절망스럽게 만들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의 청년들은 ‘N포세대’로 불린다. 2011년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로 시작된 이 말은, 시간이 흐르며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을 대변하게 되었다.


취업,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그리고 이제는 꿈과 희망마저 포기 목록에 올라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2023년 청년실태조사’에 따르면, 20대 청년 중 68.7%가 ‘현재 자신의 꿈을 포기했거나 포기를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영화 속 주인공 ‘계나’는 말한다. “꿈이 없는 게 아니에요. 꿈을 꿀 여유가 없는 거죠.” 회사에서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부품 취급을 받고,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더 큰 꿈을 꾸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 청년들의 현실을 본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저렇게 쉽게 포기하는 걸까? 우리 세대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버텼는데. 이것이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변화가 만들어낸 절망의 풍경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현재의 생존이 급박한 현실에서 꿈은 사치가 되어버렸지만,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꿈조차 꾸지 못하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버린 건 아닐까?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을 위해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작은 실천이다. 청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자녀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기,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꿈에도 “한번 도전해 봐”라고 말해주기.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N포세대의 자화상은 분명 슬프다. 하지만 그 슬픔을 공감하고, 이해하고, 함께 극복하려 노력할 때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그릴 수 있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그 꿈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관계.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희망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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