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돌봄의 시간
요즘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인다. 평일에 못 끝낸 일들로 이번 주말에도 책상에서 보냈다. 그렇게 쉼 없이 달려온 월요일 오후, 몸이 말하고 있었다. ‘오늘은 좀 쉬자!’
조금 일찍 퇴근했다. 할 일은 있었지만, 오늘은 나 좀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동네 중국집 문을 열고 들어가 “짬뽕 하나 주세요”라고 말했다. 난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나를 돌봐야겠다는 신호가 올 때 여길 찾는다. 여기는 브레이크 타임도 없고 아무 시간 때나 편하게 올 수 있는 24시 중국집이다. 상가가 밀집해 있는 곳이 아닌 외곽에 있는 곳이라 사람들도 붐비지 않는다. 시간과 사람을 구애받지 않고 음식 맛도 별 4개를 줄 수 있는 곳이라 ‘나 돌봄’이 필요할 때 여길 종종 찾는다.
빨간 진한 국물의 입맛 돋는 짬뽕이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 순간, ‘그래 잘 왔어. 주말에 고생했어! 오늘은 너를 위한 보상이야’라며 맛있게 먹어준다. 짬뽕 한 그릇에 행복이랄까? 면을 젓가락으로 돌돌 말아 후루룩 소리 내며 먹어도 눈치 볼 사람 없어 편하다.
오늘 중국집에는 평소에 보지 못했던 아이스크림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여름이라 그런가? 혹시나 해서 사장님께 “저거 공짜예요?”라고 물어보니 “네, 공짜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짬뽕을 기다리는 동안 아이스크림 레버를 아래로 당기니 컵에 아이스크림이 담긴다. 식당의 주류 메뉴가 아닌 것 치고는 아이스크림 모양이 주류 아이스크림 가게처럼 예쁘게 담긴다. 큰 기대 없이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다. 이게 뭐야? 예상외로 맛있다. 예상치 못한 맛에 기분이 업그레이드된다.
짬뽕을 다 먹고 나서 또 한 번 아이스크림 기계 앞에 섰다. 그리고 영수증 리뷰를 했다. 조금 귀찮긴 하지만 사진 한 장 찍고 몇 번 선택만 하면 튼실한 새우 2마리를 공짜로 먹을 수 있다. 이 집에 오면 꼭 하는 일이다. 디저트인 크림 새우와 두 번째 아이스크림까지 천천히 맛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했다. 만 원으로 짬뽕 한 그릇, 블루베리 아이스크림 2번, 크림 새우를 먹으며 30분 남짓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자꾸 잊고 산다.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면 결국 고장이 난다는 사실을 알면서 눈앞에 보이는 일에 사활을 걸고 기계처럼 일한다. 그런데 그럴 땐 또 그렇게 일해야 한다는 것도 바꿀 수 없는 기정사실이다. 다행히 감사한 것은 쉬어야 할 때 ‘신호’를 알아차리고 ‘충전’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일어서니 시계가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창밖을 보니 비가 제법 내리고 있다. 짬뽕의 열기로 달아올랐던 몸에 시원한 비가 반갑다.
거창한 휴가나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어도 된다. 중국집 한 곁 퉁에서 혼자 먹는 짬뽕 한 그릇은 나에게 충분한 휴식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온전히 나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당신은 충분히 열심히 살았다. 이제 잠시 쉬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