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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되어준 노래

하고 싶었던 것, 이제 할 수 없는 것.

by 글지은

쉼 없이 걸어간 시간이었다.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고, 아이들이 곁에 오고 마냥 행복할 줄 알았던 시간들이 오갔다. 옥탑방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작은 아파트로 이사도 하고 짧지 않은 시간 티격태격 싸우면서 살았다.

아픈 게 나아지고 괜찮다고 여겨지고 큰아이가 학교에 입학할 시기에 다시 받은 유방암 판정은 최악이었다. 수술로도 완치는 어려웠기에 항암 치료와 방사선은 무조건 해야 했다. 아이들의 학습도 도맡아 하고 있었고 지칠 대로 지쳐있던 상태.

왜였을까. 첫 번째 수술 이후 들었던 위로의 노래가 다시 듣고 싶었다. 면역력은 바닥을 치고 항암 치료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팠다. 진행 속도가 빠른 암세포만큼 마음도 이미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그래도 살 수 있었던 힘은 아이들이었다. 병원에 다녀오는 날이면 어린아이들이 해맑은 얼굴로 날 보며 방긋방긋 웃고 있었으니까. 그 모습을 보고 힘이 나지 않을 엄마는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옷가게에 걸린 예쁜 옷보다 날 위해 주는 어떤 선물보다 힘이 되는 위로였다.

학교 다닐 때도, 성인이 되어서도 딱히 노래를 가려서 좋아한 적은 없었다. 노래방에 가면 얌전히 시작하던 노래도 뒤로 갈수록 방방 뛰는 노래로 변했다. 생목으로 소리를 빽빽 지르며 부르는 노래가 얼마나 가슴을 뻥 뚫리게 하던지. 노래방을 좋아하는 건 변하지 않더라. 친구들은 한 번쯤 가봤다던 가수 콘서트에 가보는 것도 돈 한 푼이 아쉬워서 가지 못했던 때였다. 나도 콘서트에 가서 노래도 따라 부르고 응원봉도 흔들어보고 싶었다. 나름대로 로망 같은 거였다. 나도 해보고 싶었는데….

몸이 아픈 것보다 조금 어렵더라도 버킷리스트를 해보고 싶었다. 아이 발달센터 비용에 내 병원비까지 생각하면 돈 만 원도 아쉬웠던 때였는데 처음 노래로 위로받던 그 순간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결혼 이후 처음 부려보는 자신을 위한 욕심인 셈이다. 슈퍼에서 물건을 사고 나면 남는 동전을 한두 개씩 모아 왔던 저금통을 탈탈 흔드니 콘서트 티켓 살 돈으로는 충분했다. 그 저금통도 사실은 생활비가 모자라면 쓰려고 놔뒀던 비상금 같은 것.


모조리 털어서 통장에 넣고 표를 샀다. 가수 정승환 콘서트 표가 우편으로 날아왔는데 그게 나한테는 얼마나 기뻤는지 아무도 모를 테지. 심지어 남편도 모르겠지.

2019년 안녕 겨울 콘서트에 좋은 자리도 아니었고, 어렵게 잡은 티켓 한 장의 기쁨은 항암 치료로 속이 울렁거리는 것도 잊어버리게 할 만큼 컸다. 여기저기 종양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콘서트를 오는 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콘서트 당일, 친구랑 만나서 맛있는 돈가스도 먹고, 첫 번째로 간 장소는 명동 성당이었다. ‘명동 성당 앞에서 찍는 사진은 이게 마지막이려나.’ 혼자 생각만 했다.

콘서트 시간에 들어간 공연장은 넓고 화려했다. 수십 개의 조명이 달려있고, 가수의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포스터 앞에서 열심히 사진 찍기 바빴다. 물론 나도 한 장 찰칵! 왜 그렇게도 어색하던지.

공연이 시작되고 커다란 홀을 가득 채우는 음악과 가수의 목소리, 함께 앉은 사람들이 가수를 응원하는 힘찬 목소리까지 모든 게 나한테는 신기한 광경이었다. 핸드폰 플레이 리스트에 있던 노래를 직접 눈으로 보고 듣는다는 게 그렇게 좋은 것인지 처음 알았으니까. 예전에 들었던 위로의 노래보다 더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당시에는 미발매 곡이던 <별>이란 곡을 들으면서 결국 참았던 눈물도 터졌다. 가사가 엄청 아팠는데 곁에 있어 준다는 가사가 끝내는 살라는 말로 들렸다.

우연히 들었던 노래 한 곡이 결국 울게 했다. 큰아이가 장애 진단을 받았을 때 이후로 제대로 울어본 적이 없었는데 노래 듣고 울게 될 줄이야. 몸이 아파지고 나서야 첫 번째 버킷리스트를 완성했다. 그 뒤로도 두 번 더 가볼 수 있었고 2022년 겨울 콘서트가 마지막으로 무기한 종결되었다. 노래방도, 콘서트도 그게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때 그 순간.


당신이 힘들었던 시절, 힘이 되어준 노래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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