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색이 되고 싶었나

한근태 작가님의 마음을 공부하다를 읽고

by Giagraphy




답답한 곳을 뛰쳐나와 자유롭게 살고 싶었고 그때그때 들어온 제안에 성실하게 응한 것뿐이다.



한근태 작가님의 '마음을 공부하라'를 읽으면서 공감이 갔던 문구다.

내가 살아온 삶을 대변하는 문장이다.


한국에서 보낸 초, 중, 고교시절에는 한국이 답답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중국의 대학을 다니면서 아, 그게 답답한 거였구나 하고 느꼈다.

중국에서 불룩 튀어나온 배를 아무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다니는 아저씨들을 본 적이 있는가?

물론 지금은 유행의 일종이 되었지만,

예전엔 한국에서 눈총을 받았던 양말과 샌들이라는 특이한 조합을 중국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신고 다닌다.

총천연색의 컬러를 아무렇게나 배합하는 패션센스도 아무 의식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본인을 표현하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나라가 중국이다.


나는 1년에 한 번 방학 때마다 한국을 왔다.

한창 꾸미기 좋아하던 20대 초반이었고,

나는 중국에서처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화장하고,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다녔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탔는데 모두가 회색, 검은색의 옷을 입고 있었고,

나 혼자 눈에 튀는 빨간색 옷을 입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다 한 번씩 나를 쳐다보고 지나갔다.

그 순간 지하철 안이 미술 팔레트 위에 짠 물감처럼 보였다.

모두가 회색 물감이고, 나만 빨간 물감 같았다.

왜? 내가 빨간색인 게 뭐 어때서?

당당하게 얘기했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물감을 섞기엔 충분히.


개강으로 다시 중국에 돌아온 첫날,

좋아하던 화려한 색의 옷이 아닌, 무채색의 코트를 집어드는 그 순간 스스로에게 놀랐다.

어? 나 왜 회색이 되어버렸지?

나는 남들과 같은 회색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빨간색이 되었다가 회색이 되었다가를 계속 반복했다.

남들과 비슷한 선택을 하는 게 일반적인 한국에 올 때마다.

그래서 늘 외국으로 뛰쳐나갔고, 그때그때 내가 원하는 색깔로 10년을 살았다.


주위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한국에서,

압도적으로 회색의 비중이 높은 이곳에서

늘 빨간색으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이제 한국의 직장인이 된 나는,

여전히 빨간색과 회색을 오가는 중이다.

다만 달라진 점은,

내 색깔이 변하는 순간을 예전보다 좀 더 빠르게 알아차린다는 것.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해보지 않은 것을 하자고 할 때,

예상치 못한 제안이 들어왔을때,

망설이지 않고 물통을 비워 새로운 물을 채운다.


누군가는 별 생각 없이 물통을 비운다고 하겠지만,

나는 단 한번도 가볍게 비운 적은 없다.

늘 물감의 선명함을 유지하고자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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