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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a Seub Lee Dec 11. 2022

회사 몰래 아카이브를 털어보았다(5)

1970~1980년대 대구경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5. 1979년 12월 12일에는 쿠데타 이야기가 없다?


일요일인 오늘, 일이 있어 회사에 출근을 했습니다. 잠시 짬이 나서 보니 오늘 날짜가 12월 11일이네요. 그렇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씨가 일으킨 '1212 쿠데타'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 날인거죠.


1212 쿠데타가 일어난 게 1979년 12월 12일 저녁입니다. 그 때 저희 매일신문은 석간이었기 때문에 이미 마감이 끝나고 그날 신문을 발행한 뒤였습니다. 그래서 1979년 12월 12일자 신문은 그야말로 평온함 그 자체였습니다. 1면부터 보시죠.

이 날 대한민국이 어떤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지 전혀 모른다는 듯 1979년 12월 12일 매일신문 1면은 정치계의 소식부터 전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당시 신현확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여당인 공화당 단독으로 가결시켰다는 이야기를 톱 뉴스로 전하고 있습니다. 당시 최규하 국무총리가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대통령 권한대행에서 대통령으로 옮겨가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신현확 당시 공화당 의원이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됐다가 이날 국무총리로 정식 임명받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어쨌든 지금과는 다른 절차가 있으니 감안하시구요. 제일 왼쪽 기사는 박정희 대통령을 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사선 변호사 선임을 거부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네요. 이쯤이면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에 대한 공판이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강 사태가 정리되고 새로운 정국이 열릴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기입니다. 속칭 '서울의 봄'이라 불리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그 아래 광고는 지금도 건재한 대구 서구 내당동 '삼익뉴타운' 분양광고입니다. 지금 가봐도 꽤나 큰 아파트단지이며 지어진 지 40년이 넘은 곳인데, 주변이 재개발 바람을 타면서 이 곳도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현재 부동산 경기가 완전히 얼어붙은지라 쉽지는 않겠네요. 당시만 해도 나름 고급 아파트에 속했고, 이 곳의 쇼핑센터도 꽤 고급진 곳이었습니다. 당시에 흔치 않았던 '헬스클럽'이라는 곳도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날 신문 3면에는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5차공판에서 있던 검찰 측의 신문 내용이 한 면을 털어 실려있습니다. 


그 뒤 지면을 봐도 쿠데타가 일어날 거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평온한 하루였습니다. 그 하루가 그 날 저녁에 산산조각 나고 다음날인 12월 13일 이런 지면이 실리는 거죠.


국가가 뒤집어질 큰 사태 속에 아래 5단 광고가 사뭇 이질적이긴 합니다. 어쩌겠습니까, 광고 계약은 계약이니까요. 1면을 제외하고는 2면부터는 그날의 속사정을 알 만한 기사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 것이 신군부가 서울 언론을 틀어막았으니 이를 받아 쓸만한 대구경북지역 언론은 한 군데도 없을 수밖에요. 비록 서울 지사가 있었지만 그곳 또한 당연히 장악당하지 않았겠습니까? 이처럼 대구경북지역민들은 당시 서울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른 채 평온한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1980년 5월까지 이어지고, 대구경북지역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군부의 칼에 스러지는지 모른 채 하루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이를 제가 다니는 매일신문의 탓이라고 돌리기에는 변명할 거리가 많습니다. 하긴, 당시 매일신문사 사장이었던 전달출 신부가 신군부에 적극 가담해 언론통폐합 당시 영남일보를 인수하고, 전두환 정권 당시 1도1사 정책에 낙점되면서 소위 '꿀을 빨던' 시절이 있었기에 변명이 먹혀들겠느냐고 하실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SNS도 없었고, 서울에서 연락을 통제해 버리면 대구에서는 전혀 알 길이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만큼 당시가 살벌한 시대였다는 말입니다. 다만, 이를 매일신문을 포함한 대구경북지역 사람들이 얼마나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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