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시간
정당이 왜 중요한지와 사회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정치와 정당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만 논의중에 번진 2008년의 촛불시위와 그로 인한 공론장의 파편화와 극단화에 대한 논의는 생각할 부분이 있었습니다. 공론장의 파편화와 극단화의 사례인 인터넷 게시판 문화가 그런 것이죠. 일베나 오유, 그리고 메갈리아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흐름들은 약한 정당조직과 폐쇄적인 정당체계에 기인한다는 것까지는 이해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정치에 대한 합리주의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접근방식이 과연 정치의 또 다른 모습, 대중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조직하는 방식에 관한 성찰을 주고 있는 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민주화란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평등한 시민 참여’ 위에 정초하는 것을 말한다. 선출된 개인이 통치하는 것이라면 민주주의 이전 시대에도 있었다. 종교적 명령도, 특별한 혈통의 권위도 시민 주권보다 위에 설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다. 시민 모두가 참여해 논의하고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오늘날의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국가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거대 조직(관료제, 법인 기업)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이들이 만들어 내는 불평등의 효과를 제어하려면 시민 권력도 반드시 조직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정당이다. 강한 정당이 없다면 시민은 행정권력의 선처를 바라는 민원인이거나 무력한 소비자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재산과 교육자원이 충분한 중산층이라면 모를까 다수 서민은 타인의 온정에 기대는 사회적 약자로서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사회운동/시민운동도 유력한 정치 행위자이다. 그러나 운동으로 선거에서 승리하고 정부를 운영할 수는 없다. 2008년 촛불집회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 시민의 요구를 실현할 정당이 무능력하면 힘들게 요구하고 주장해도 달라지는 것은 많지 않다. 착각하지 말아야할 것은 항의와 압력행사가 자유롭다고 민주주의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권위주의 체제에서도 그것은 허용되지만 집권은 허용되지 않는다. 민주주의에서라면 대안 세력은 반드시 집권할 수 있어야 하고, 집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운동의 에너지는 정당과 접맥될 수 있어야 한다. 정당보다 운동을 앞세우거나 대의 민주주의는 가짜고 직접민주주의가 진정한 것이라는 등의 주장을 하는 것은 정치와 정당, 그리고 정부를 기성 질서의 영향 아래 방치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것이야 말로 구호의 급진성에 대비되는 강한 현상유지적 정치관인 것이다.
지난 시간 운동/정치의 구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지만 혹자는 우리 정치 현실이 상층편향적이지 않냐라는 질문이 있었다. 의원 개개인의 면면을 보면 당연히 그렇다. 그리고 이 경향은 앞으로 더 뚜렷해질 것이다. 그러나 정치학의 관점에서 정당이 운동보다는 훨씬 더 민중적이라 말할 수 있다. 빈민운동처럼 당사자가 스스로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도 시간이 지나면 공공정책과 제도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하면 어떤 운동 및 시민집단도 공공 정책의 변화를 통하지 않고서는 스스로의 삶을 보호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책 전문가나 입법 전문가들처럼 교육받은 중산층들의 역할이 커진다.
시민운동의 강점은 단일 이슈에 집중할 때 나타난다. 그런데 그런 이슈는 대개 인권이나 환경, 여성과 같이 매우 가치 중심적이다. 따라서 중산층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공익적 시민운동의 재정 역시 처음에는 자발적 후원에 의존하지만 그 기반을 지속하는 것이 만만치 않게 되면서 변호사나 전문가를 중심으로 하는 소송과 정부 프로그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특이한 것은 참여연대 처럼 단일 이슈를 다루는 것이 아닌 종합적인 시민운동이 발달했다는 점이다. 전문가 역할이 중심이 되기보다는 회원과 활동가 중심이라는 점도 특별하고 의제형성 및 압력행사 만이 아니라 입법안을 만들고 정당 및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를 저자는 정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발생한 사실상의 정당 내지 준정당으로 정의한다. 후보를 낼 수 없고 상대적으로 지역조직이 약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중앙조직은 독립된 건물과 유급 상근자가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다른 시민운동과 경쟁하는 것이 아닌 정당과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정당과 현대민주주의와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정당은 매우 근대적인 현상이면서 정치철학의 고전에서 완전히 누락되어 있는 주제다. 현대 민주주의는 복수의 정당이 번갈아 집권하는 체제로 정의할 수 있다. 근대 이전 정치변화는 기존 통치 집단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동반했다. 더 폭력적인 것은 정권의 변화가 아닌 정체의 변화에서 나타났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와 같은 자유로운 시민이 있는 정치체제에서도 민주정과 과두정, 참주정으로의 교체가 엄청난 희생을 요구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무력을 독점한 군을 병영 안으로 묶어두고 문민통치의 우위를 제도화한 것, 그 기초 위에 정당 간 평화적으로 정권교체가 가능해진 것은 인류사의 큰 진전이다.
이는 정치적 평화 만이 아니라 사회적 평화를 가져왔다. 정당 간 경쟁은 사회를 내전으로 이끌지 않는다. 계층 • 지역 • 인종 • 종교 • 문화 등 제 아무리 강력한 사회 갈등일지라도 민주적 경쟁 안으로 묶어 둘 수 있는 것이 정당정치의 효과다. 여기서 저자는 다시한번 정당정치를 약화시키는 여러 경향들을 언급한다. 전문가주의나 비정치적 행정주의를 현대판 귀족정의 논리라 하고, 국민후보론이나 시민정치론을 현대만 군주정의 논리라고 하는 것이다. 좋은 민주주의,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말할 수록 군주정 내지 귀족정의 요소를 불러들인다고 말한다. 이는 14강부터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정당이 약하면 가난한 다수 시민을 대변할 수 없다. 설사 민중적 의제를 들고 나오는 개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현 시킬 힘은 없다고 보는 것이 무방하다. 그것은 두가지 방향에서 작동하며 한가지 이유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는 정당조직의 차원에서 대안세력을 형성하고 선거를 통해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향후 집권할 수 있는 힘을 기르지 못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당조직이 사회(지역사회 및 일터)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그들을 의미있는 세력으로 조직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직이 약하면 개인은 대중을 떠나 모호한 여론과 이미지에 호소하게 되고 시민은 대중조직의 일원이 아닌 청중에 불과하게 된다. “강한 정당의 부재는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위축시키고 선거를 중간계급 위주의 것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