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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변머리 Feb 09. 2016

정당의 발견

다섯번째 시간

11강_정당체계에 대한 잘못된 이해: 지역주의 


정당체계와 지역주의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부터 살피자. 지역주의라는 단어의 선정성 때문에 민주화 이후 형성된 한국의 정당체계를 합리적으로 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4강에서 정당체계란, 경쟁하는 복수의 정당들 사이의 패턴화된 관계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일종의 '균형'을 전제로 하고, 유지냐 붕괴냐의 문제로 다뤄진다. 따라서 정당체계의 문제란 서로 다른 지지기반을 갖는 정당들 사이에 안정된 구도가 유지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를 말한다. 따라서 지역주의라는 말 안에는 한국 정당들의 지지 기반이 지역에 근거한다는 '지역정당체계'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지역주의다. 영남지역의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 호남지역의 민주당 후보 당선이라는 선거 결과를 두고 유권자들의 후진적 투표 행태를 질타하는 것이다. 이런 선거 결과의 지역 차이에 덧붙여(혹은 그런 선거 결과의 근원에) 경상도 사람의 기질과 전라도 사람의 인성 등이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저자는 ‘한국적 후진성’을 빌미로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정당화하는 것을 변형된 ‘예외적인 정치관’이라고 본다. 정당 간 통합이나 연합의 알리바이로 지역주의적 투표 행태를 탓하는 것이다. 87년, 88년 대선과 총선 결과를 지역주의로 해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다며 3개정당이 통합해 217석의 거대정당을 만든 민자당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우선 용어의 개념부터 명확히 하자. 지역주의란 국가 내 중심부와 주변부 간 갈등에서 표출되어 특정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에 대한 소속감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중앙정부로부터의 분리, 독립, 자치를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일찍이 중앙집권적 국가를 형성했으며 문화적 동질성이 상당한 우리의 경우 본래적 의미의 지역주의라는 말을 적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한국에서 지역주의는 중앙을 향한 권력투쟁에 동원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이며, 권력투쟁의 결과로 나타난 소외와 혜택을 두고 벌어진 여야의 균열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런 현상에 적절한 말은 선거의 경우 지역균열이나 지역구도라는 용어가 될 것이다. 


지역주의의 연원을 조선시대 이전부터 찾아가는 시도들도 있지만 지금 논의되는 지역주의는 명백히 근대적인 현상이다. 우선 60, 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지배엘리트의 충원과정에 지역격차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원인은 아닐 것이다. 산업화 과정으로 발행한 지역 격차는 호남만 소외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남과 수도권에 집중된 발전으로 호남, 충청, 강원 주민들은 농촌을 떠나 수도권으로 올 수 밖에 없었던 반면 영남 주민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더라도 영남을 벗어날 유인이 적었다. 즉 영호남 주민들 사이의 경쟁의 계기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영호남 갈등이 나타난 것은 민주화 이후다. 개헌 이후 야당의 두 지도자인 김대중과 김영삼이 대선과 총선을 두고 분열했기 때문이다. 분열된 야당이라는 정당체계의 반영으로 지역 간 투표 행태의 차이가 나타난 것으로 봐야 한다. 


사실 지역주의라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반호남주의에 있어서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엘리트 충원과 경제발전의 성과를 분배함에 있어서 호남을 배제해왔다. 이에 대한 집단적 항의로서 동질적 투표행태를 보이는 것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그러한 차별과 80년 광주의 비극을 경험한 사람들이 김대중이라는 인물에 자기를 동일시해왔다고 해서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호남 차별은 바로 정치체제의 성격(군부 권위주의)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72년 유신이 배경이 되었던 71년 대통령 선거는 김대중 후보의 야당다운 야당을 만들기 위한 공약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부정선거에 힘입어 박정희가 당선되었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 재집권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만든 사건이었다. 긴급조치를 통한 억압과 통제, 반공주의가 노골화되었으며 반대세력을 분열시키기 위해 호남에 대한 편견을 동원했다. 정권과 상층이해집단들이 공모해 만든 편견의 이념이었던 것이다. 


민주화 이후 보수언론은 야당 지도자의 분열을 부추기고 지역주의 문제를 부풀리며 군부 권위주의의 문제를 덮었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등장한 많은 개혁세력들도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정당화했다. 민중당은 3김 청산을 외치며 신한국당(새누리당이 전신)으로 들어갔고, 제3정당을 모색했던 재야 정치세력들도 3김타파와 지역주의 극복을 내세우며 한나라당(신한국당 후신)으로 체계적으로 흡수되었다. 이 당시 남았던 김원기와 노무현은 김대중 진영에 합류했다.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영남 출신 노무현 후보가 호남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자 지역주의는 더이상 문제가 아닌듯 했다. 영호남 정당이라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공모해 대통령을 탄핵했다가 역풍을 맞고 궤멸 상황까지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주의는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좋은 알리바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야당에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시민들을 갑자기 지역주의에 휩싸인 유권자로 만들어버렸다. 이어 이명박 대통령도 국정운영의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집권당에게 지역주의 해결이 더 중요하다는 핑계를 대며 소속 정당의 요구를 무시했다. 


그렇다면 현재에도 나타나는 투표 성향의 지역별 편차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선거 결과란 기본적으로 두 가지 대표성의 함수다. 하나는 계층이나 이념적 차이를 중심으로 한 기능적 대표 체제. 다른 하나는 지역적 차이와 요구가 반영된 지역적 대표 체제. 양자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전자가 표의 지역적 차이를 줄이는 효과를 낳는다면 후자는 표의 계층적 차이를 동질화 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한국의 선거에서 표의 지역적 편차가 크게 나타난다는 것은 지역주의의 결과라기보다는 기능이익에 기반을 둔 갈등이 잘 조직되지 않았다는 표현으로 봐야한다. 물론 표의 기능적 대표성이 완전히 실현된다고 해도 지역적 편차는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정당 간 경쟁의 이슈, 지역별 산업구조나 계층 구성, 선거제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중앙의 자원배분 능력이 크고, 주요 정당의 이념적 거리가 협소하고, 정치 엘리트간 결속이 학연이나 지연 같은 1차적 유대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지역간 투표 행태가 동질적일 수 없다. 


지역주의라는 개념이 한국 정치를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정치에서 지역은 중요하다. ‘사회 속에서 인간은 계급이라는 기능적 구조물 위에서 살며, 지역이라는 공간적 기초 위에서 태어나고 생활하고 죽는다.’ 지역은 이성적이고 합리적 분석 영역인 계급보다 훨씬 더 원초적이며 열정의 원천이기도 하다. 계급을 강조하며 호남인들이 가지는 소외의 감정을 폄훼하거나, 거꾸로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가 반호남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호도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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