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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고립감과 공동체의 미래

외로움이 해로운 건 알겠는데, 해결할 수 있을까요?

by 낙타

오늘날 민주주의 위기와 정치적 양극화의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언급됩니다. 부의 양극화, 소셜미디어를 필두로 한 기술의 빠른 발전 등.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 UCL 명예교수가 쓴 『고립의 시대 The Lonely Century, 2021』에서는 외로움을 주요한 원인으로 꼽습니다.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너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으로 들린다면, 고립감이라고 표현해도 무리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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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오랜 시간 고립되어 외로움을 느낀 생쥐에게 다른 생쥐를 만나게 하면, 반가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공격적으로 대하는 현상, 외로움과 궁핍에 내몰린 나머지 감옥에 들어가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 일본 노인의 사례, 세계화로 일자리를 잃고 사회에서 "버려졌다는" 느낌에 힘들어하다가 히틀러나 트럼프 같은 정치인을 지지하게 된 사람들의 인터뷰 등을 제시하면서, 외로움이 단순히 개인이 쓸쓸함을 느낀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사회 문제를 유발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외로움의 원인을 바로 사회 공동체의 붕괴에서 찾습니다.


물론 공동체가 왜 해체되었나를 생각해 보면, 다시 부의 양극화, 소셜미디어, 기술의 빠른 발달, 전 세계적인 경쟁의 심화가 나오고, 이 모든 요인이 서로 얽혀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문제 제기뿐만 아니라 여러 구체적인 해법들도 얘기하는데,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생각은 책 마지막 페이지의 문장에 녹아 있습니다.


외로운 세기의 해독제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서로를 위해 있어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흩어져가는 세계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이것은 최소한의 요구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현대 사회에서 그 어렵다는 "증세"보다도 더 어려운 요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듭니다. 돈과 시간은 물론이고, 관심이나 집중력 같은 정신적 에너지도 제한된 자원이므로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고 압박하는 세상입니다. 정치적 신념이 다른 사람들 혹은 그 밖의 다양한 이유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과 돈을 내는 것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과연 무엇을 택할까요?


공동체의 가치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런데...

고립감은 개인의 정신적인 건강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면역력 같은 신체적인 능력까지도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사람에게 유대감을 채워주는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런 공동체는 비배제성 공공재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일단 만들어지면 모두에게 좋지만, 만들기 위해서는 비용이 듭니다. 게다가 만들어진 후에도 입장의 문턱을 없애면서 모든 참여자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일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좋게 말해도 무임승차, 나쁘게 말하면 어뷰징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결국 흐지부지되기 십상이죠.


자본주의적 해법

사람들에게 필요하지만 그것이 공공재로서 제공되지 않는다(혹은 못한다)? 효율적인 시장은 그런 빈틈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비배제성 공공재의 "비배제성", 즉 아무나 접근 가능하며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특성은 공공재일 때는 발목을 잡는 제약이지만, 시장에서는 허탈할 정도로 간단하게 제거 가능합니다. 공동체의 장점만을 뽑아서 유료로 판매하는 것이죠.


그 결과는 바로 값비싼 폐쇄적 커뮤니티입니다. 고가의 회원비를 요구하는 사교 모임, 비싼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그 안에서는 참여자들끼리 소속감을 공유하는 음악 페스티벌 등이 사례로 등장합니다. 공동체 문제에 대한 자본주의적 해법의 명암을 보여주죠. (다른 얘기인데, 한국의 콜라텍이 저렴한 입장료로 사람들이 교류할 장소를 제공하는 긍정적인 사례로 언급되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이런 주제에서 공유 오피스 이야기도 빠질 수 없는데, 저자는 오히려 이런 모델은 공동체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공동체는 서로에게 일정 이상의 의무를 부여하고 책임을 함께 나눠야 하는데, 공유 오피스는 그냥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할 뿐, 서로 간의 교류나 유대감을 증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공동체의 미래

『고립의 시대』는 이상적인 형태의 공동체 재건을 꿈꾸지만,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감정을 갖고 있는 이상 공동체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존재하며, 결핍으로 인한 부작용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나 자본주의 같은 특성에 맞는 형태로 이런 수요를 채우게 될 것 같은데, 그게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합니다.


참고 자료

노리나 허츠, 『고립의 시대』, 홍정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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