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 결혼 알고리즘과 내시균형
균형 상태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툭 건드리기만 해도 쉽게 무너지는 상태이고, 다른 하나는 충격을 받아 잠시 흔들리더라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상태입니다. 후자의 경우를 우리는 안정적(Stable)이라고 합니다.
매칭, 즉 짝을 짓는 문제에서 안정성 개념은 매우 중요합니다. "안정적인 결혼 문제(Stable marriage problem)"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문제가 있는데(꼭 결혼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령, 구직자와 구인자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각 참여자는 자기만의 파트너 선호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종 매칭이 끝난 후에, 나는 나의 짝보다 A라는 사람을 더 선호하고, 동시에 A도 그의 짝보다 나를 선호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 경우 나와 A 두 사람은 현재의 매칭 상태를 벗어나려는 유인이 생기게 됩니다. 작은 계기로도 전체 균형을 깨뜨릴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게일-섀플리 알고리즘(Gale-Shapley algorithm)은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매칭 조합을 찾습니다. 이 알고리즘으로 매칭된 세계에서는, 설사 내가 A, B, C, ...를 더 좋아하더라도, 그들 중 그의 짝보다 나를 선호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잠재적인 "불륜 커플"이 없도록 보장함으로써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때 전체 매칭이 안정적이라는 말이 모든 참여자가 현재의 짝에 만족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사실도 강조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혼자만의 일탈로는 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치지 못할 뿐이죠.
현재 상태에서 누구도 행동 전략을 바꿀 이유가 없는 상태를 내시균형이라고 합니다. 어느 한 사람이 기존의 전략을 바꿀 경우 그 사람만 손해를 보기 때문에 균형 상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이 개념이 얼마나 강력하냐면, 법처럼 강제력을 가진 개입조차도 사회를 새로운 내시균형으로 유도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경제학자 카우식 바수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런데 만약 현실게임에 균형이 단 하나라면, 즉 구체적으로 균형에 이르는 전개 안에서 단 하나의 결과만이 생긴다면 법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전통적인 법경제학 모델에서 벌어지는 일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중략) 유일한 내시균형은 (B, B, L)이고, 법이 뭐라 하든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카우식 바수, 『믿음의 공화국』, 103p
그렇다면 법이 왜 필요할까요? 일반적으로 사회에는 여러 개의 내시균형이 존재합니다. 법은 복수의 균형 중에서 우리가 이롭다고 판단하는 새로운 균형점으로 사회가 이동하도록 초점(focal point)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바수 교수가 강조하는 또 한 가지는 법의 주체들—검찰과 경찰(집행), 판사(사법), 국회의원(입법)—도 나름의 이해관계를 가진 하나의 "플레이어"라는 점입니다. 즉, 법의 주체들이라고 해서 규칙을 지고지순하게 따르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법이 언제나 공정하게 집행 및 판결되는 것을 보장할 수도 없음을 시사합니다. 안정된 매칭에서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듯이 내시균형이 꼭 사회 전체에 바람직한 상태는 아닐 수 있는 것이죠.
어쨌든 우리 사회의 현상을 이 모든 플레이어들이 참여하는 현실 게임의 특정한 내시균형 상태로 바라본다면,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사회를 단번에 바꾸기 어려운 이유도 전략의 안정성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이 구조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테고요.
'안정적'이라는 것은 단순한 정적 상태가 아니라, 충격에 대한 복원력과 변화에 대한 저항이라는 양면성을 내포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자연계의 안정성이 물리 법칙의 결과라면, 인간 사회의 안정성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이 사회 규칙을 만나 정교하게 구조화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카우식 바수, 『믿음의 공화국』, 박연진 옮김,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