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기행] 복원, 그 행위마저 문화유산이 된 곳

<구시가지>, 20세기 유럽사의 정체성이자 상징

by 흑투리


인내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브런치 집필을 반복하다 보니 다시 찾아온 한 권의 마지막 장. 3권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할까 고민했는데, 문득 깨달은 사실이 있다. 브로츠와프부터 토룬에 이르기까지, 투리는 지금까지 시가지나 거리에 관한 기행글은 꼭 하나씩 올려 왔다. 그런데 바르샤바 기행글은 그렇게 많이 올렸는데도, 아직 구시가지에 관한 글은 올리지 않았다.



세상에, 무려 바르샤바나 되는 도시의 구시가지 기행글을 여태껏 안 썼다니! 바르샤바의 구시가지는 폴란드 여행에 있어서 핵심 관광지들 중 하나이다. 아무리 폴란드를 가볍게 지나가는 라이트한 관광객이라도 바르샤바의 구시가지 정도는 대강이라도 훑고 지나간다. 그만큼 폴란드를 방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바르샤바의 구시가지는 대표적인 입문 지점인 것이다.



20250414_140441.jpg 투리가 다녔던 학교 후문으로 바로 나왔을 때의 버스 정류장 쪽.



게다가 바르샤바의 구시가지는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상징성이 상당히 높은 지역이다. 폴란드 특유의 중세 양식이 바르샤바의 현대적 감각이 드러난 중심부와 대조적으로 부각되면서, 20세기의 폴란드가 겪어야 했던 슬픈 이면과 그 극복 서사까지의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오히려 이 구시가지를 뒤에서 다루는 것이 그 중요도를 부각하는 효과를 주는 것 같다. 본인의 글이 충분히 무르익을 때쯤에야 이 소중한 장소를 다룰 역량이 갖춰진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러면 투리가 교환학생 시절 가장 많이 들렀으면서 가장 대표적인 바르샤바의 볼거리, '바르샤바 구시가지'를 이번 3권의 피날레로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투리가 바르샤바의 구시가지를 제대로 들렀던 날짜는 4월 14일. 글의 시작은 거창했지만, 구시가지를 제대로 들렀던 의도는 초라했다. 다가올 시험 공부를 대비하기 위해서.



20250414_152113.jpg 이번에 투리가 버스에서 내린 지점.



이왕 외국에 왔는데, 시험 공부도 분위기 있는 곳에서 하는 낭만은 이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날만큼은 공부할 시간과 산책할 시간을 적절히 배분해 시험 준비도 끝내고 구시가지도 음미하는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애초에 시험 공부를 의미 있는 곳에서 보내자는 마인드부터가 실패한.....). 물론 시즈몬의 단체 투어를 통해서나 곁다리로 들를 때나 구시가지는 밥먹듯이 지나간 장소였다. 하지만 막상 구시가지만 집중적으로 돌아다니는 시간은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 투리 본인은 이 기회에 구시가지를 구석구석 돌아보려고 했던 것이다.



20250414_152803.jpg 적당히 걷고 나니 눈에 띈 거리 오른쪽 부근의 상점가. 여러 인형들을 팔고 있었다.



바르샤바의 구시가지는, 말하자면 중세 양식의 도시면서도 중세 양식의 도시가 아니다. 왜 그러냐고? 여기까지 투리의 글을 따라오신 독자들이라면 이미 질리도록 들었을 것이다. 바르샤바는 나치에 의해 심각한 파괴를 당했던 도시라고. 이때의 폭격으로 80% 이상의 건물이 처참히 파괴되었고, 도시에는 폐허만 남았다. 그렇지만 도시의 주민들은 이 비극에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기로 강하게 마음을 먹는다. 그들의 강력한 의지 덕분에 바르샤바의 구시가지는 과거의 원형을 복구시키는데 거의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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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 광장과 그 근처의 도시 구조가 담긴 모형도



그렇게 따지면 다른 도시는 바르샤바만큼 파괴되지 않았는가? 사실 폴란드 안에서 파괴된 도시는 바르샤바 말고도 여러 군데가 있다. 그렇지만 바르샤바는 파괴뿐만 아니라 독일의 심각한 학살까지 동반되었다는 점에서 그 정도가 다르다. 바르샤바를 둘러싼 시민 저항과 나치의 공격은 그 어느 곳들보다도 격렬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치는 단순한 학살을 넘어 폴란드인의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해 도시의 문화 유산들까지도 처절하게 터뜨렸던 것이다.



심지어 공격당한 도시들도 일부 구역 혹은 그 도시의 핵심 틀 정도는 남아 있었지만, 아까 말했듯 바르샤바 구시가지는 80% 넘게 파괴당했다. 그런 곳에서 다시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오늘날 그 기적을 실제로 이루어 낸 재건 사업은 전 세계 최초로 역사적 도시 중심부 전체를 되살리려 한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그 복원 행위마저도 폴란드인의 굳건한 의지가 담겨 있었기 때문에, 유네스코는 1980년 구시가지를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시킨다.



20250414_153254.jpg 바르샤바 구시가지의 골목 거리.



그러면 바르샤바 구시가지에는 어떤 것들이 복원되었을까? 아까 사진에서 보았던 시장 광장도 있고, 성당들도 있다. 구시가지 한쪽에 서 있는 바르샤바 왕궁도 마찬가지로 복원되었다. 동선은 크라쿠프와 같은 곳들에 비하면 작겠지만, 그 어마어마한 밀도의 유산들이 역사적 정확성에 기반해 고증을 살린 채 살아난 것이다.



그 외에도 바르샤바 구시가지에는 바르바칸(Barbican)이라는 성벽이 남아 있으며, 다른 한쪽에는 그 유명한 인어상(Syrenka Warszawska)이 있다. 아래에 사진들을 보여주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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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지금 보시는 성벽이 바르바칸 성벽이다. 이 성벽은 1540년 기존의 오래된 성문 자리에 건설된 건축물인데, 3층 구조의 반원형 보루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총병도 배치되어 있다. 아래에 해자도 있고 해서 나름 그럴듯한 방어시설의 모습을 갖추었지만, 아쉽게도 포병 기술의 발달로 방어 기능이 그다지 뛰어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18세기 들어 바비칸은 일부가 철거되어 물자의 이동을 원활하게 했다.



그러다가 나치의 침공으로 바비칸은 큰 피해를 입지만, 비용을 고려한 결과 바비칸을 재건하는 게 그 자리에 주택을 짓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해 바비칸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다만 외부 성문 두 군데와 탑 하나는 아직 복원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쩐지,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미완성된 느낌이 강했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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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바르샤바의 인어상. 칼과 방패를 든 상반신 모습의 이 인어는 바르샤바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 여기 간단한 전설이 있다. 지금의 바르샤바 근처에는 비스와 강이 흐르고 있는데, 옛날 옛적 이 강에서 '바르스'란 이름의 어부가 '사바'란 이름을 가진 인어를 낚았다고 한다. 그 둘이 결혼하고 낳은 자손들이 만든 도시가 지금의 바르샤바라고 한다.



어부와 인어의 이름을 보면 참으로 그럴듯하지 않은가? 투리가 알기에 인어들은 아름다운 존재들인데, 그 전설에 따르면 지금의 폴란드 여자들은 그 아름다운 인어들의 후손인 것이다. (그렇다고 투리가 보기에 모든 폴란드 여자들에게 그 유전자가 발현된 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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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4_174730.jpg 구시가지로 넘어가는 비스와 강 쪽의 다리.



한편 다른 전설에 기반해 저 인어가 어디에서 왔나 설명하면, 발트해에서 헤엄쳐 내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발트해에서 내려온 인어는 두 명인데, 나머지 한 명은 코펜하겐으로 내려가서 그곳의 '리틀 머메이드'가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바르샤바로 내려온 인어는 어부들을 돕거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등 도시를 수호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인어가 칼과 방패를 든 것은 도시를 지키고자 하는 투쟁과 각오를 드러내는 표현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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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에는 또 성 요한 대성당(St. John’s Cathedral)이 꽤나 알려진 성당이다. 이 성당은 바르샤바에 위치한 3개의 대성당 중 하나로, 유일한 아치 대성당이다. 이 성당은 1944년 바르샤바 봉기 때 저항 세력에 독일 군대로부터 투쟁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는데, 이로 인해 거대한 폭발에 휩쓸려 건물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 지금은 재건 후 광범위한 구역에 걸쳐 내부가 수리되었다.



참고로 이 성당 내부에는 폴란드의 과거 공작들과 제2공화국 시절의 대통령 가브리엘 나루토비치 등 많은 유명인들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투리가 사는 서울에 역대 왕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 있다? 확실히 교과서에서 억지로라도 본 기억이 남았을 것이다. 과연 폴란드에서는 유명할 만한 성당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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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구시가지에는 성당이 생각보다 많이 분포했다. 폴란드에 성당과 Żabka 편의점이 한국에 있는 치킨집 수보다 많다는 건 알았지만, 유독 바르샤바의 구시가지를 갈 때는 성당을 자주 마주쳤다. 이는 성당의 개수 자체가 많은 게 아니라, 그 한정된 시가지 안에 면적 대비 성당 밀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세간에 따르면 폴란드 사람들은 성격이 유순하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런 분위기가 형성된 데에 이 성당들도 한몫했던 것 아닐까? 물론 이탈리아나 스페인 사람들의 성격을 보면(?) 성당 자체가 성격을 결정짓는다고 단순화할 수는 없지만.



cafes.jpg 출처: 구글 지도의 리뷰어 사진. 투리의 사진첩에 해당 카페 사진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타인의 것을 빌립니다



뭐, 이렇게 여러 장소들을 들르기는 했지만, 마냥 관광에만 몰두할 수는 없는 법. 보시다시피 투리는 시험 공부를 위해(?) 분위기 전환 겸 구시가지에 온 것이 아닌가? 맨날 학교에서만 자습하면 지루한지라, 이날만큼은 카페에서 공부하기 위해 구태여 여기까지 버스를 타고 온 것이다. 말하자면 바람 쐬러 온 것이나 다름없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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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주문하는 과정에서 골 때리는 일이 생기고 말았는데, 세상에 커피값을 계산하는데 실수로 다른 손님의 커피값을 계산해버린 것 아니겠는가! 순간 당황한 직원들이 카드를 대지 말라고 말렸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린 상황! 영수증이 뽑히자, 대신 결제를 당한 손님이 이 어이없는 상황에 무안한 얼굴로 웃음을 보였다.


"아이고, 이를 어째! 미안해요, 친구. 일단 당신이 주문한 카페라떼는 제가 계산할게요."


빠르면서도 유쾌한 말투의 여자는, 억양으로 보아 스페인 분처럼 보였다. 일단 투리의 커피는 결제해 주셨지만, 여전히 본인이 손해보는 상황. 카페 직원들이 미안한 마음에 쿠폰 도장을 10장 찍어주기는 했지만, 본인이 다시 올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다행히도 그 스페인? 분이 유로 화폐가 있다고 하셔서, 유로라도 부족한 금액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정말 당황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경험도 재미있는 추억처럼 느껴진다.



20250415_162440.jpg 바르샤바 구시가지 시장 광장의 모습.



투리가 공부하는 카페 거리는 아까 보였던 넓은 광장 쪽에 분포하지만, 구시가지에는 광장이 더 있다. 위의 광장은 구시가지의 시장 광장(Rynek Starego Miasta)인데, 이곳은 구시가지의 진정한 중심부이자 18세기 말까지는 바르샤바 전체의 중심이었던 곳이다. 당시에는 길드와 상인의 대표들이 이곳에 모여서 시청에서 회합을 가졌다고 한다. 또한 이 광장에서는 정기적인 시장과 박람회, 그리고 때때로 공개 처형도 이루어졌던 것으로 기록된다.



시장 광장답게 지금도 이곳에는 많은 상인들이 모여서 장사를 하고 있다. 브로츠와프와 포즈난을 갔을 때도 위와 유사한 정사각형 시장 광장을 봤었는데, 폴란드인은 이렇게 아기자기한 건물들에 둘러싸인 광장의 중심에서 장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아마 중세 도시 특유의 설계 규칙상 중앙에서 장사하도록 법에서 지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20250415_162602.jpg 한 상점가 근처의 진열대



지금까지 구시가지의 일부를 둘러보았는데 어떤가? 이 글을 투리의 첫 글로 마주하는 독자 분들께는 바르샤바의 구시가지가 꽤나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겠다. 사실 폴란드 도시 리뷰만 6번째인 투리로서는 바르샤바의 구시가지를 보면 가장 정석적이고 무난해 보인다. 심지어 투리의 벨라루스인 친구 막스는 바르샤바의 풍경이 재미없어 보인다고까지 말한다.



아마 바르샤바의 구시가지가 (다른 폴란드의 도시들과 비교해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느낌을 주는 이유는 각 건물들이 상대적으로 절제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르샤바 건물들의 색감은 크게 튀는 편은 아니며, 조금은 얌전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성당이나 카페처럼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들르는 공간도 꽤 있는 편이다. 이러한 요인 덕에 바르샤바의 구시가지는 관광지이면서도 현지인의 흔적이 구석구석 보이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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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리가 방문한 바르샤바 시가지의 또다른 교회.



그럼에도 사람들이 바르샤바의 구시가지를 찾는 것은 그만큼의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이 시가지는 단순히 깔끔하고 괜찮은 관광지 이상의 역사적 상징성을 갖는 곳이다. 생각해 봐라. 완전히 파괴된 도시를 폐허 이전의 상태로, 그것도 고증에 맞게 하나하나 재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더군다나 그때는 영상이 발달되던 시기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실제로 폴란드인들은 도시를 재건할 때 18세기에 베르나르도 벨로토(Bernardo Bellotto)가 그린 베두타(veduta, 도시 풍경화)들과 건축학도들의 도면과 스케치에 의존했다고 한다. 그 정도의 정보만으로도 기어코 깔끔하게 재건된 구시가지의 모습을 보면, 도시를 다시 부흥시키고자 했던 폴란드인들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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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투리는 바르샤바의 구시가지를 이렇게 여긴다. '강대국으로부터 주권과 자유를 지키고자 했던 민중의 투쟁이 담긴 가장 대표적인 유럽 지역'으로 말이다. 그들은 전체주의로부터 싸워서 한 번 패배했지만, 불굴의 의지로 바르샤바를 다시 한 번 일으켰다. 그 불굴의 의지를 두고 유네스코는 '문화유산'이라는 최고의 헌사를 내린 것이다.



그렇게 한때 가장 자주 돌아다녔으면서 지금은 가장 자주 생각하는 곳, '바르샤바 구시가지'에 대한 투리의 코멘트가 드디어 끝을 맺었다. 지금도 구글 지도를 보면, 그 구시가지의 건물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이런 귀한 중부 유럽의 도시에서 투리가 교환학생을 지낸 것이 참으로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평생 관광지로밖에 들르지 못할 이 구시가지를, 투리는 몇 달에 걸쳐서 일상처럼 보내왔다. 그런 의미에서 바르샤바의 구시가지는 특히나 본인의 기억에 절대로 잊지 못할 장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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