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욘을 바라보며 지냈던 시간
필리핀 비콜의 아침은 연보랏빛으로 열렸다.
활화산인 마욘 화산이 멀지 않게 보이는 곳이었다.
십 년 전, 코이카 한국어 단원으로 필리핀의 비콜 지역에 머물렀다.
한 번은 화산재로 온 집안이 잿투성이가 된 적이 있고,
화산 폭발 경보로 마닐라로 피신을 한 적도 있다.
한 달 간의 합숙소 훈련을 마치고 각자의 임지로 돌아가는 날,
레가스피 작은 공항에 내리자마자 후덥지근한 공기와 습기가 달라붙었다.
조촐한 시가지를 벗어나 내가 머물 곳까지는 40여 분 지프니를 타고 가야 했다.
한국과 비슷한 시골 풍경이 한가롭게 이엄이엄 이어졌다.
심하게 덜컹거리는 낯선 풍경 속에서 내 나라의 낯익음을 보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좀 다르다면, 길가 제멋대로 자란 야자수와 까무잡잡한 사람들의 웃통 벗은 모습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코코넛 속 과육처럼 하얀 이를 보이며 밝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두 해 동안 전문대 관광학과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아침마다 지프니를 타고 출근하던 야자수 그늘의 아담한 캠퍼스.
한국에서의 뛰던 시간이 천천히 걷는 시간이 되었다.
모든 것이 뜨겁고 느리지만 살아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마욘 화산이 선명하게 원뿔 모양을 보였다.
수년 전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지금도 살아 있는 그 화산.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 아래 마을에서 학생들은 늘 밝았다.
밝은 날은 마욘이 미소 짓는다고 했고,
흐린 날은 마욘이 부끄러워한다고 했다.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를 위험을 모른 체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현실을 긍정적인 시선과 친근감으로 대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은,
옆에 있는 사람의 말조차 들리지 않았다.
처음 보는 무시무시한 폭우였다.
그럴 때는 분필을 내려놓고, 학생들 사이에서 비를 바라보았다.
비에 아랑곳하지 않는 학생들의 활기찬 대화, 천둥이 치면 손을 마주 잡고 큰소리로 웃었다.
그런 학생들의 해낙낙한 모습이 좋았다.
그들의 긍정적인 삶의 모습이 평안했다.
그해, 11월 마지막 날.
그곳을 떠날 때 친한 친구를 떠나듯이 참 아쉬웠다.
순하고 초롱초롱한 눈동자, 따뜻한 손길이 내 등을 다독거렸다.
"맘, 다시 올 거지요. 우리 보러 오세요. 기다릴게요."
어색한 웃음과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첫 수업이 떠올랐다.
한국어 문장을 한국 노래 부르듯 따라 하던 학생들.
김밥을 나눠주면 더 달라고 아우성치던 모습.
오기 전날, 정성껏 써 준 편지들...
'감사합니다!'
그 한마디가 오래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도 정말 감사했다.
내가 십여 년 전의 11월 마지막날을
삶의 따뜻한 장면으로 간직하듯이,
그들도 나와 함께 했던 한국어를 따뜻하게 기억하길 바란다.
그때의 순순한 열정과 그들의 웃음이,
지금도 내 마음의 여름 햇살로 빛난다.
가르친다는 것은 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