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이 틀어져도, 결국 길이 된다(3)

다른 선택을 했지만, 결국 더 나은 결과를

by 김우영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게 된 던킨도너츠 공장 알바

그동안 베이커리, 카페, 홀서빙 알바만 해봤었던 저는 처음으로 공장 아르바이트를 해보게 되었어요.

일단 일주일만 해보자는 심정이었던 것 같아요.


공장이라고 하면 진입장벽이 높기도 하고,

일이 정말 힘들 것 같다는 이미지 때문에 두려웠을 텐데 그땐 패기가 넘쳤나 봐요.

'한번 가보지 뭐!'

'몸이 힘든 것보다 뒤처지는 지금의 상황을 하루하루 걱정하는 게 더 무섭지!'

부모님도 말리셨었는데, 뭐든 해보면 좋다고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렇게 1시간 30분 정도 거리의 공장으로 첫 일을 나갔었죠.

던킨도너츠 공장이고, 도넛의 생지를 분류하거나, 주재료를 옮기거나, 도넛에 슈가파우더를 묻히거나 스프링클을 뿌리는 아주 쉬운 업무들이었어요.


친구 없이 갔었지만 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일을 하거나, 혼자 있는 것에 대해서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 덕분에, 거기서 만난 분들과 굳이 친해지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는 오히려 편했었던 것 같아요.

분위기상 자유롭게 혼자 쉬고 밥 먹고 하는 분위기였거든요.


맨 처음 위생복도 입어보고, 안에 들어가기 전 소독도 철저히 하고 정말 신기했어요.

내가 늘 봐왔던 도넛들이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스프링클이나 초코데코는 사람이 직접 하는구나.

위생복을 입은 제 모습이 자일리톨 같아서 웃기기도 하면서 총 7시간 업무 중 2시간은 나쁘지 않았어요.

당연히 처음 출근한 것이다 보니 쉬운 일을 주셨겠죠?

시간도 정말 빨리 가고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밥 먹고 쉬는 시간이고.

나쁘지 않은데? 생각했어요. 그렇게 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업무에 투입됩니다.

정말 큰 용수철 같은 원통형 트레일에서 빙글빙글 돌며 내려오는 도넛에 최대한 빨리 슈가파우더를 묻혀 10개씩 5-6줄 정도 채워 넣는 작업이었어요. 정말 정말 단순업무죠.


제 기억에는 3시간 정도를 반복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진짜 너무 안 가는 거예요.

거기다가 똑같은 동작을 3시간을 하니 허리고 어깨고 팔이고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어요.

두 번째 타임에 느끼게 됩니다. 아 내일은 못 나오겠다.


차라리 여러 군데에 짧은 시간 동안 투입되고 옮겨지고 투입되고 옮겨지고 하면 괜찮았을 텐데,

슈가파우더 가루 때문에 얼굴은 끈적하지 코로 가루를 계속 마시지,

어깨와 허리, 팔다리는 너무 아픈데 계속 내려오는 도넛때문에 잠깐 팔을 두들기지도 못하지.

30분 유급으로 쉬는 시간을 받았을 때 바로 알바몬에 들어가서 채용공고를 봤어요.


집에서 10분 안으로 갈 수 있는 베이글 토스트 카페의 채용공고를 보게 되고, 바로 신청했죠.

당일 면접이 가능하냐는 문자에 가능하다고 연락을 드리고 남은 시간 업무를 마무리한 후 관리자 분께 말씀을 드렸어요.


'저.. 앞으로 일을 못 나올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혹시 보건증을 받을 수 있을까요?' ^_^..


공장일을 하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고 느끼는 하루였습니다.

나름 주 6일 12시간 일하던 저도 그날 밤 새벽 가슴통증과 근육통에 시달렸으니까요.

몸으로 하는 일은 정말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구나를 배웠죠.

주변 사람들한테 그때의 얘기를 해주면 다들 놀라시더라고요. 어떻게 그 힘든 일을 했냐고.


운 좋게 집 앞 베이글 토스트 카페의 정직원이 되다.

당일 면접을 본 후 다음날 일을 배우러 올 수 있냐고 하셔서 근육통을 달고 바로 일을 시작했어요.

쉬즈베이글이라는 가게였는데 토스트와 음료를 만들었어요.

장사가 잘 되는 가게였어서 손이 빨랐어야 했는데 다행히 조리과를 나와서 재료를 다루는 일은 익숙했어요. 그래도 포스를 보는 일, 재고 조회, 기름통을 가는 일 등등 배워야 할 일이 참 많았네요.

레시피를 외우고 일이 익숙해 지기까지는 한 달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늘 그렇듯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힘들다고,

긴 시간 일해야 했지만 드디어 내 조건에 딱 맞는 일을 구했다는 안도감 때문에 오랜만에 편안함을 느꼈어요.

서비스 업이야 파리바게트나 국밥집에서 했었던 익숙한 일이고, 음료를 만드는 것도 다 해봤었던 일이기 때문에 재밌게 일했던 것 같아요.


월급도 꼬박꼬박 들어오고, 집에서 다니니 돈 모으기도 수월하고, 그래도 주에 2-3일 정도는 꾸준히 쉴 수 있고. 이때까지는 당장 취직을 신경 쓰지 않았던 때여서 제일 신나게 보냈던 때였어요.

일단 목표금액까지 모으고 1년 정도를 준비한 다음 푸드스타일링 클래스를 신청하려고 했으니까요.


저보다 2살 어린 동생과 같이 일했는데, 오래 붙어있다 보니까 운동선수였던 그 친구의 인생얘기도 듣고, 사람이 없을 때는 같이 넷플릭스도 보면서 깔깔대던 그때가 좀 그립네요. 개그코드가 잘 맞았거든요.

어리지만 일을 열심히 하던 친구였어요. 운동선수였었지만 큰일을 겪으면서 사회에 나오게 되었는데, 저와 정반대의 성격,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이 친구한테는 당당한 태도, 너무 딱딱하지 않게 인생을 대하는 융통성을 배웠어요.


처음 3개월은 정말 거슬릴 게 없었어요.

진상손님들이 와서 이것 좀 해주세요. 저것 좀 해주세요. 배달 요청사항이 까다로워도 그냥 다 들어주고.

그런데 같이 일하는 언니와 동생은 되게 스트레스받아하더라고요.

저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었죠. 왜 저렇게까지 화를 낼까? 이게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받을 요구인가?

딱히 진상손님 같지 않은데 사소한 것 하나에도 진상이라고 스트레스받아하고.


그렇게 반년정도가 지나니까 제가 그러고 있더라고요.

물론 당연히 이렇게까지 한다고? 생각이 드는 손님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겠다 하는 분들도 많네요. 너무나 당연하게 진상을 부리는 손님들 때문에 그 화가 쌓여서 사소한 것 하나에도 터져버리는 거죠. 그때 어린 마음에 상처도 많이 받았었네요.


그렇지만 어린 마음에 오기를 부린 것도 많았고요.

진상손님도 있었겠지만 화가 나는 날은 다른 손님한테도 화를 냈을 테니까요.

제 날 선 말투를 그냥 눈감아주고 가셨던 분들한테는 참 감사해요.

일하느라 고됬나 보다 어리니까 그냥 넘어가자 생각하고 이해하고 넘어가주셨을 테니까요.

사회생활을 하고 나이를 조금 더 먹은 지금의 제가, 지금 막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이겠죠?


그렇게 1년 2개월 정도를 끝으로 퇴사를 했어요. 계약만료 사유로 실업급여 신청이 가능하게 되면서 제가 생각한 목표 금액의 1.5배를 더 모을 수 있게 되었고요.


그때는 뭐가 그렇게 안 풀린다고 생각했는지 걱정도 참 많이 했었는데,

지금생각해 보면 돈도 잘 모였고, 마침 딱 좋은 조건에서 일을 할 수 있었고, 그때의 선택이 미래의 저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푸드스타일링 클래스의 새로운 공지가 뜨길 기다리며 맘 편하게 제가 하고 싶은 공부, 원데이 클래스를 마음껏 들었어요.


다음 글에는 그렇게 꿈꿔왔던 푸드스타일링을 시작하면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써볼게요.

꿈을 시작하기 전 열정이 넘쳤던 그때가 생각나네요.

이번주도 마음편한 한 주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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