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이 틀어져도, 결국 길이 된다(2)

다른 선택을 했지만, 결국 더 나은 결과를

by 김우영




'푸드스타일링'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뜨다

대학교 3학년,

한창 식품과학에 재미를 붙였던 2학년을 지나고

결국 피할 수 없던 본과 전공수업을 듣게 됩니다.

부전공이 아니라 복수전공이었던 탓에 본과 전공도 소홀히 할 수 없었거든요.


1년 동안 요리를 거의 하지 않았다시피 하던 저는

3학년이 되자마자 복어조리, 창업실습, 와인의 기초, 궁중조리실습 같은 심화수업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기초조리를 넘어선 모든 실습들이 재밌었지만,

그중 하나였던 푸드스타일링 수업은 새로운 세계였어요.


녹지 않는 아이스크림을 만든다?


아예 개념이 다른 분야였죠.

분명 내가 계속 다뤄왔던 식재료들, 음식들이었는데 먹지도 못하고 완전히 익히지도 않는다니

그런데도 형태가 유지되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새로웠어요.


그 당시 수업은 분명 몇 년 전 푸드스타일링,

그러니까 완전히 유행이 지난 스타일링이었지만 그때 제 앞으로의 방향성을 정하게 되었어요.

1년 전까지만 해도 오랜 꿈이었던 요리사를 포기하고 식품회사로 취업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이 수업을 듣고 나서 선배들과 동기들이 물어봤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거하고 싶은 거 맞지? 라구요.

7213.JPEG
7157.JPEG
7198.JPEG
7208.JPEG

어떤가요? 정말 다르죠?

밥 위에 식용유를 발라 먹음직스럽게 만들고, 예쁜 그릇과 소품을 이용해서 촬영을 하던 수업내용은

하고 싶었던 것이 명확했지만 생각했던 길이 아니었나 항상 고민하고 방황했던 저에게 해답을 주었어요.


글로 적어보니 그동안의 시간들이 정말 짧게 느껴지지만

저에게는 무려 5년 이상의 긴 시간이었어요.

하고 싶은 공부는 대학교에 가서 해도 된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믿고 학창 시절을 보냈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러 대학교에 왔지만 내가 생각한 길과 정말 달라 혼란스러웠고,

학교는 졸업해야 하니 휴학을 고민했지만 마땅히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없었던 시간들.


그럼에도 내가 수업을 들을 때, 새로운 식재료를 만질 때, 잡지에 나오는 음식사진을 봤을 때,

맛집을 찾아가 새로운 플레이팅을 눈으로 마주할 때, 창업실습을 하며 뿌듯함을 느낄 때

길을 몰랐을 뿐 행복해하고 있는 제 상황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길은 모르지만 내가 어떨 때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지 상상해 보세요.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으신가요?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서울상경을 준비하다

처음 푸드스타일링이라는 방향성을 잡았을 때 무작정 계획한 것은 2,000만 원을 모으는 것이었어요.

대충 계산을 해봐도 자취방, 푸드아카데미 수강료, 생활비 등 상경을 위해서는 그 정도는 해야겠더라고요.

1년은 몸을 갈아 넣을 자신이 있었어요.

몇 년 동안 고민하던 길에 대한 해답을 찾아서였던 것 같아요.


졸업을 하기 2개월 전 집과 1시간 떨어진 수육국밥가게에 직원으로 취직하게 됩니다.

조리전공까지 해놓고 갑자기 수육국밥이라니? 주방도 아니고 홀서빙을?

돈도 벌고 경력도 쌓을 수 있는 일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지방에서 푸드스타일링을 하시는 분은 없더라고요.


이 일을 찾기까지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었어요.

돈은 벌어야 하는데, 일주일을 일자리 어플에 들락날락해도 제가 계획하던 액수를 벌기 위한 맞춤 일자리가 나타나지 않는 거예요. 인생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잘 알지만 대학을 갓 졸업했었던 그때는 정말 조급했어요.


'이대로 졸업할 때까지 일을 못 구하면 어떡하지?'

'이렇게 시간만 흘러가서 다른 동기들이랑 뒤쳐지면 어떡하지?'

별의별 가정을 다 들어가면서요.


그렇게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는 정말 혼란스럽더라고요.


학교에 다닐 때는 정해진 계획표, 혹은 정해진 시간에 전공수업을 듣고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다녔으면 됐는데 졸업을 하게 되면서 이제 혼자의 힘으로 일자리를 구하고 사회에 나가야 한다는 그 부담감이, 누군가 끌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괜히 뒤처지는 것 같고 조급해지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제 선택은 일단 경력을 포기하는 거였어요. 푸드스타일리스트는 공백이 있어도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 직종이었기 때문에 맘 놓고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같아요. 다행이었죠.


홀서빙 일은 정말 단순했어요.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10시에 퇴근, 주 6일이라는 긴 시간을 버텨야 했지만요.

또래 직원은 없었고 사장님, 주방실장님, 다 나이가 있으신 분들 사이에서 일했어요.


처음 몇 개월은 좋았어요.

저를 잘 챙겨주시던 홀당 이모,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던 동갑 친구 덕분이었죠.

그런데 사회생활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제 의견을 내고 목소리를 내니 마찰이 생겼어요.

더불어 손님들을 상대하는 서비스직이 이렇게 힘든 건지도요.


그때는 몰랐던 거죠.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남들은 회사에서 알게 되는 사회생활에서의 직급차이를 저는 여기서 알게 됩니다.

점점 트러블이 생길 때쯤 다른 일을 찾아보다가,

새로 오픈하는 초밥전문 가게의 직원공고를 보게 되었어요.


그렇게 면접을 보고, 다니던 수육국밥집에 말씀을 드리고 그만두게 되고,

서울에 본점이 위치한 초밥집의 분점 오픈을 기다리면서 또 2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어요.

초밥전문가게로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홀 담당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어느 정도 일을 익히면

주방에서 초밥을 만드는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이유였어요.


딱 맞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국밥집 홀서빙보다는 어느 분 야든 조리 관련 기술을 배워놓으면 분명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계획 오픈이 미뤄지고,

점장님의 말이 계속 바뀌는 거예요.

가게가 어느 정도 유지되면 같은 지역의 다른 분점을 낼 때 점장으로 보내겠다,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었을 때 데리고 다니면서 공부를 시켜주겠다, 하시더니

공사가 시작돼도 연락이 없고,

기다리다 못한 제가 연락을 드렸을 때 그때서야 답을 주시고,


또 일이 잘 안 풀리는 느낌에 스스로 일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척척척 되지 않죠?

나름대로 계획을 다루는 법을 알고 나니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예전만큼 스트레스받지는 않지만,

처음 상황을 겪었을 때는 정말 당황했었던 기억이 나요.


나이가 어리기도 했고 판단력도 없고 그럼에도 지금의 제가 느끼는 것은 일단 찾아 나서야 된다는 거예요.

판단력을 키우기 전에는 방황을 많이 할 수밖에 없고, 판단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경험을 쌓아야 되는 것 같아요. 데이터가 쌓여서 조금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래서 조급하지만 집에서 가만히 기회가 오길 기다리지 않고 뭐라도 해보는 거죠.


당장은 뒤처져 보일 수 있지만 그 1년 1년이 쌓여서 나만의 무기가 된다고 믿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저조차도 늘 순간순간 고민하고 불안해하지만,

결국 늘 답은 하나네요.

나를 믿고 뭐라도 해보는 것.


가끔 과제 준비나 실습을 하고 걱정은 취업뿐이었을 대학시절이 그리워지네요. 그때 당시에는 정말 하기 싫고 귀찮아했지만요. 다음에는 조급한 마음에 떠밀려 간 던킨도넛 공장에서의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오늘도 마음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