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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Jul 10. 2023

현대미술에서 ‘K’로 기능하기

《펑키-펑션 Funky-Function》 큐레토리얼 에세이

대구미술관 Y아티스트 프로젝트《펑키-펑션 Funky-Function》

2022. 11. 8. - 2023. 1. 15.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 한국의 대중문화는 K팝(Korean Pop)을 필두로 영화, 댄스, 드라마, 뷰티 등 다방면의 장르에서 세계적인 케이-신드롬(K-Syndrome)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특히 K팝은 해외에서 한국의 대중가요를 일컫는 말로, 트렌디한 서구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국적인 온갖 요소를 섞은 혼종적 장르라 명명된다. 하지만 지금의 케이팝은 단순 하나의 장르를 넘어서(비욘드 더 씬 Beyond the Scene)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월딩 Worlding) 그 안에서 다양한 문화적 작동들을 유기적으로 만들어낸다. 케이팝 뮤직에서 표면적으로 보이는 음악, 퍼포먼스, 패션 등에서부터, 넓게는 아티스트의 세계관 형성, 성공의 스토리텔링, 소셜미디어(트위터, V Live)에서의 소통을 통해 생성된 팬덤 문화, 그리고 아티스트의 인성과 진정성까지를 아우르는 복잡미묘한 문화현상이 되었다. ‘K’라는 접두어는 고유명사화 되었지만 그 현상은 다양한 서사들을 양분 삼아 콘텐츠들로 증식되며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어 떠다닌다.     


대중문화와 시각예술     

마치 공기와 같은 현상들을 현대미술이라고 피할쏘냐. 우리가 살아가는 동시대 안에서 자연스레 언제나,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K-콘텐츠들로 함께 숨 쉬고 향유한다. 필자 또한 연일 음반 차트를 기록하는 케이팝 노래나 아이돌 그룹의 맴버 이름을 물어온다 해도 선뜻 대답하지 못하지만 어디에서나 들려오는 케이팝 음악이나 세계에서 대서특필되는 한국 콘텐츠의 수상 소식, 이제는 티비보다 자주 시청하는 넷플릭스(Netflix) 등의 문화적 영향권에서 벗어나 ‘케이(K)에 대해 저는 잘 몰라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거의 미술사를 살펴보더라도 ‘팝아트’로 인해 전후 미국에서의 소비문화와 대중문화가 꽤나 진지한 논의들로 떠오르면서 순수예술과 대중예술, 즉 삶과 예술의 경계를 지워갔듯이, 동시대 미술과 대중문화는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 문화적 요소들과 함께 비선형적 관계를 맺어왔다. 시각예술 안에서 ‘미(美)’적 범주들은 각 나라와 시대의 문화적, 역사적 산물이기에 동시대미술의 다양한 면모들에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K-컬쳐의 모습을 읽어내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시대를 대표하던 장르의 형태는 급격히 변화하며 세대 구분의 간격을 좁히는 가운데 동시대의 미적범주는 ‘규정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이 되었다. 과거 미술사의 시각예술은 아방가르드적 면모를 가지고 있어 대세에 반대의견을 내고 비판하며 대중화를 기꺼이 반대했다면, 동시대미술은 최첨단을 지향하는 과학기술과 관람객, 그리고 시대와의 소통이 중요해지며 이러한 속성들은 새로운 소셜미디어와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한다. 또한 문화적, 기술적 영향 뿐 아니라 시각예술에서 다장르, 혼종적, 융합적 특징들을 찾아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이제는 현재의 MZ세대, 즉 희소성과 상징성을 갈구하는 젊은이들의 관심이 집중되며 자연스레 이를 마케팅화 하려는 산업시장에 적극 포함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 구조적 기능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레 시각예술 안에서도 K팝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의 표면적 양상들이 발견되며 이면의 작동 기제와 서사들 또한 읽어볼 수 있다.      


K의 기능주의     

문화인류학에서의 '기능주의'는 기본적으로 실체(substance)를 부정하고 다양하게 존재하는 요소들간의 상호작용을 기능적으로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둔다. 다시 말해 어떠한 사물이나 인물, 실체나 본질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작동들과 현상의 속성들을 통해서만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고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고정적으로 짜여진 구조를 기피하고 현상의 관계와 그 안에서 발생하는 작용들, 그리고 변화와 같은 동적인 움직임들에 집중한다.
 1980년대 음반 시장이 확대되고 한국의 음악 산업이 대중화되면서 2000년대에 들어 아이돌 시스템을 구축하는 대형 기획사들이 생겨나고 2022년 현재는 '4세대 아이돌'이 세계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하며 K열풍을 지속적으로 가열시키고 있다. 이미 K팝, 나아가 K컬쳐에 대한 연구는 수많은 논문과 책들이 발간되고 전문가들이 생겨나며 이미 어느 정도는 범위가 정의되고 범주화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K는 여전히 영토확장 중이며 구조적으로 규정된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온갖 요소가 종합되어 세계로 보여지는 케이팝의 특성을 유지 중이며 이를 기저로 이제는 팝을 넘어 K-콘텐츠로서 전 세계를 작동시키고 있다. 이러한 세계 안에서 온갖 방향으로 새롭게 발생하는 현상들과 변화들을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기능주의적 관점을 취해 인식하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전시 《펑키-펑션 Funky-Function》은 동시대미술에서 K팝이라는 문화현상이 어떠한 모습들로 발언되고 기능(작동)하는지에 주목한다. 특히 본 전시는 대구미술관 ‘Y 아티스트 프로젝트’로, 지금·여기에서 K팝 문화를 향유하는 젊은 현대미술 작가들의 시각을 통해 K팝 문화가 가지고 있는 파라텍스트(Para-text)들을 읽어내 보고자 했다. 참여 작가들의 예술세계와 작품을 빌어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시사점들과 문제의식들을 함께 재고해보고 담론화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다양한 ‘파라’들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시야를 넓혀 다양한 조건들을 살펴보며 내부와 외부를 매개하고 이면의 작동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K팝의 매력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개인적인 팬심을 작업에 비추어 내기도 하고, 혹은 정치·사회적 문제의식들을 드러내는 데 활용하거나, 작가 스스로 우상(아이돌)이 되어 팬(관람객)들과 소통하며 자신만의 미감들로 현명하게 소비한다. 대중에게는 보이지 않는 연습실과 작업실에서 쌓인 수많은 시간을 통해 ‘스타’가 되는 성장 서사,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활발한 협업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작가가 고유의 브랜드화 되어지는 과정, 그리고 아티스트 개인의 인성과 노력, 성숙도와 인맥 등의 매우 한국스러운(?) 요소들까지도 K팝이라는 이름 하에 집단 감수성과 정체성을 토대로 새로운 현상들을 만들어내는 기제들로 작동한다. 이 전시는 참여작가 6인의 작업이 K라는 수식어 아래 구획되어지는 것을 최대한 경계했다. 기능주의적 관점에 반하는 인식방법으로는 하나의 전시 안에서 작품들이 유기적으로 관계 맺으면서 새롭게 생겨날 작용들의 가능성이 차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품작 하나하나가 발언하는 이야기들을 성실하게 듣고 그로인해 파장되는 기능들을 읽어내 보는 것이다. K라는 문화의 거대 웨이브(Wave)를 하나의 구조 안에서 바라보기보다 더 넓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위치짓고 무엇을 담론화해야 하는가 하는 인식론적 관점에서 생각해 볼 시점이다.           


온 더 그라운드(On the Ground)     

이러한 거대 웨이브(Wave)를 동시대미술의 젊은 작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먼저 K팝 하면 가장 먼저 ‘아이돌(Idol)’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는 우리에게 K팝이 단순 대한민국의 대중가요라는 음악적 장르의 구분이라기보다 ‘보는 음악’, 즉 시각적인 스타일 구분에 익숙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K팝 음악은 최신 트렌드의 댄스 뮤직, 틴 팝, EDM, 하우스 클럽 뮤직과 같은 음악적 장르가 주를 이루지만 2000년대 이후 발달한 한국만의 독자적인 아이돌 문화는 아티스트가 추는 춤, 의상과 메이크업, 무대예술 등 시각적 퍼포먼스에 팬덤 문화까지 포괄해 진정한 아이돌 구조가 완성되었다.      

듀킴은 작업 안에서 작가 스스로를 대상화하고 팬덤 문화로 보여지는 틱톡(TicTok)의 카피 댄스 설정을 적극 활용함과 동시에 퀴어, 종교, 대중문화와 신비주의로 결합되는 다양한 메시지들을 이야기한다. 한국의 아이돌 구조는 완벽히 이분법적 관성과 정교하게 짜여진 롤 플레이의 특징을 보여주는데, 작가는 이러한 경계를 흩트리고 소외된 하위문화를 소환하여 그것을 다시 정상의 상위문화로 올리는 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시도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질감과 불편함, 때로는 새로움과 신선함, 그리고 간절함과 신비로움을 드러낸다.

지금은 세계의 사랑을 받는 K팝이지만 그 시작은 비영어권, 비서구권 콘텐츠로서 대안적이고 반문화적인 태생으로 메인스트림보다는 마이너리티와 연관될 수 밖에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속성을 본인의 메시지 전달에 효과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며 K팝 음악이 행위자보다 진실된 내용, 메시지가 더 큰 파급력을 가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주문처럼 외워지는 반복적인 가사들과 손을 활용하여 바람을 구하는 듯한 안무들까지, 매력적인 요소들을 차용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K팝의 구조를 빌어 사회에 존재하는 장벽들을 발언하고 범지구적인 가능성을 제안한다. 출품작 <꿈을 꾸는 것처럼 As if You’re Dreaming>, <노래하는 것처럼 As if You’re singing>, <춤을 추는 것처럼 As if You’re Dancing>(2022)은 걸그룹 아이돌의 안무 중 손동작들을 모아 인도 신 비슈누(Vishunu)나 락슈미(Lak-shmi)의 도상을 연상케 하거나, 한국적 비단 방석과 장식적 수술들, 목조 육각등 등의 형상들을 통해 국적 불문의 혼종된 종교성을 보여준다. 올-인-원(All-in-One) 패키지라고 일컬어지는 K팝의 특성처럼, 듀킴의 작업은 스스로를 그루밍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공예하고 설치하며, 전방위로 꿈을 꾼다.     

최하늘은 이번 전시에서 아이돌 조각(조각돌)을 좌대(혹은 무대) 위에 만들어 세웠다. 인이어(In-ear)를 한 다섯 명의 조각돌들은 각자의 모양과 색을 하고 있지만 하나의 그룹으로써 구성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이데거가 “현존재는 자기의 존재-가능에 있어서, 자기의 가능성들 속에서 자기를 다시 발견할 가능성에 맡겨져 있다.”라고 말했듯, 작가는 ‘조각적 변종으로서의 새로운 조각(종)’과 ‘기능하고 움직이고 자라나는 조각들’로서 커튼 뒤로 가려진 조각들이 아이돌(우상)화 되는 가능성과 더불어 그 밖에서 기능하는 존재하는 장치들을 함께 제안한다.

하루 두 번, 3분 44초 동안만 공개되는 그의 작품 <3분 44초>(2022)는 기존의 조각 작품 감상 방법이 아닌 낯선 방식의 관람방식을 취하면서 의문을 던진다. K팝 아이돌들의 콘서트 무대를 보더라도 이제는 시각적 경험이 더 이상 좌석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사방에서 잡아주는 카메라 앵글들과 영상편집의 기술들 덕분에 이제는 평면의 모니터를 통해서도 교차편집술을 통해 공간성, 시간성까지 확장된 무대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현대미술에서 조각 또한 그렇다. 3차원의 조각 작품을 앞, 뒤, 옆에서 둘러보려면 관람객은 발걸음을 옮기고 고개를 돌려 시야를 조정하며 관람한다. 정면에서만 보이는 이미지는 조각과 아이돌 무대에서는 그저 한 장의 캡쳐 사진에 불과하다. 최하늘은 이러한 교차점을 활용하여 무대 위의 아이돌을 조각화했다. 특히 보이그룹의 구조적인 안무에 주목하여 군상 아닌 군상을 제작했는데, 작품 제목 <3분 44초>가 말하듯,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차용한 퍼포먼스 개념을 가져온다.

또한 작가는 조각돌들이 커튼 속에 가려져 있는 시간에는 밖에 배치된 큐알 코드(QR Code) 조각들을 통해 감상의 차원을 무한히 확대했다. 큐알 코드를 찍는 행위를 통해 관람객은 핸드폰 안에서 작가가 선정한 4개의 영상들을 만날 수 있는데, 큐알코드로 발현된 기호의 접속성들은 분절되지만 각자의 타임을 가지고 러닝하며 K팝에 대한 에피스테메를 확장 시키고 있다.    

  

창조주 Y      

K팝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은 ‘세계관’이다. 이 세계관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캐릭터 설정과 관계구조, 스토리텔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류성실과 김민희는 캐릭터들을 (재)창조하여 자신들의 예술세계를 구축, 확장하고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김민희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대중에 의해 규정지어진 여성의 얼굴 이미지를 작가만의 미감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캔버스 속 캐릭터의 존재와 욕망을 부여하여 대중에게 소비되는 ‘여성(상)’의 이미지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작가의 회화작업에서 주로 보여지는 사이버 펑크적 표현방식과 과거의 상징적인 문화들을 표방하는 이미지들(일본 아니메, 영화, 대중문화 등)은 서로 결합되어 믹스된 시간축을 구축한다. 이렇게 새로 만들어진 시간성과 세계관 안에서 작가에 의해 부활한 캐릭터들은 대중문화 안에서의 여성 이미지, 가까이에는 작가 스스로의 페르소나를 찾아가는 과정과도 맞물려 있다.
 사이버 펑크는 먼 미래가 아닌 현시점에서 가까운 미래를 다룬다. 1980년대의 차갑고 기계화된 암울한 세상을 반영하며 기계로 점차 대체되어가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등으로 대변되는 사회비판적 메시지에서 1990년대 들어 비판성은 옅어지고 대중문화로서 낭만적이고 낙천적인 SF 작품들로 자라났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 독보적인 컨셉으로 한국의 대중문화를 파워풀하게 선두했던 두 디바의 이미지를 가져왔다. 신작 <디.스.코 D.I.S.C.O>(2022) 와 <크리스탈 아이즈 Crystal Eyes>(2022)는 과거의 상징적인(Iconic) 여성 디바들에게 사이버 펑크적 세계관을 투영시켜 새로운 여성상으로 선보였다. 과거 대중매체들의 이미지와 서사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돌고 도는 시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팝 문화적 특성과 유사하게 김민희의 회화는 과거의 대중문화를 소환하여 매력적이고 낭만적인 근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현대미술 작가로서 부캐를 통해 미적, 사회적 공감을 이끌어 내며 특유의 작업 세계로 인해 컬트적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류성실은 1인 미디어 시대, 유튜브 영상 콘텐츠, 뮤직비디오 등 온라인상의 현장을 주된 필드로 한다. 코로나 시대로 가속화된 OTT(over-the-top media service,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발전으로 인해 다양한 플랫폼들은 시청자, 혹은 소비자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장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쏟아져 나오는 온라인 플랫폼들과 그 사이에서 살아남을 경쟁력을 차지하기 위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가치이다. 이는 기존에 블록버스터, 혹은 공중파 방송으로 국한되던 대중적인 콘텐츠를 넘어서 다양한 소비 욕구들을 수용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됨과 동시에 당당히 자신의 취향과 목소리를 드러내 편견을 깨는 뉴-크리에이터들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시각예술계의 뉴-크리에이터로서의 류성실은 이러한 구조를 가져와 한국의 사회적 이슈들, 가족사, 소비주의 등의 문제점들을 속 시원히 드러낸다.
 출품작 <대왕트래블-직진>(2021)은 작가가 만든 시나리오 안에서 왠지 모르게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 ‘이대왕’이 대왕트래블(여행사) 에서 항공사 ‘대왕 에어’로의 사업 확장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뮤직비디오이다. 본 작품 안에는 오메가사피엔, 머드 더 스튜던트, 릴체리, 골드부다 등의 유명 힙합 아티스트들이 제작에 참여하고 뮤직비디오에 출연한다. MZ세대에도 불어온 미술 열풍은 때로는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만 같은, 괜히 아는 체 해야 할 것 같은 멋쩍음과 유행에 뒤쳐지면 안된다는 강박이 들기도 한다. 이는 현대미술이 근본적으로 서양에서 왔다는 서양중심 사고와 도시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으나 류성실의 작업이 공유하는 메시지들은 ‘-체’가 없다. 솔직하고 기발한 콘텐츠 뒤에는 시각예술가가 폭로하는 사회 다면의 메커니즘이 존재하며 자연스레 공감의 커뮤니티를 흡수한다.     


What Matters?      

K팝은 이제 음악으로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 대중에게 다양성 정치의 목소리로 활용되고 있다. 아티스트들은 인종차별과 기후문제와 같은 정치·사회적 이슈들을 적극적으로 발언하며 사회적 책임을 묻고 연대의식을 고취시키는 아이콘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반대로 엔터테이먼트 산업 구조 안에서도 다양한 문제들이 존재하는데 K가 가지고 있는, 혹은 발언하는 ‘문제’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고민해보아야 할까?     

강원제 작가는 ‘회화’를 중심으로 하되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의 과정, 혹은 순환을 시각적으로 발현시킨다. 작가의 작업들은 연속성을 가지고 생성과 소멸을 번복하며 이어지는데, 시리즈로 불리는 <러닝 페인팅>, <부차적 결과>, <선택된, 선택되지 않은 그림>, 그리고 <카오스모스>까지 모두 작가의 의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고 지속되는 작업들이다. 결국 그의 작업에서 완성은 없으며 작품이 되었다가도 해체되어 사라지고 부산물(By-product)로서 재존재하는 식의 과정을 유영한다. 이는 엔터테이먼트 시장 안에서 선택받고 선택받지 못하는 누군가, 그리고 2등이라 불리우던 누군가가 주인공이 되어 또 하나의 작품으로 조명받는 구조를 시사하기도 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과 과정을 가장 힘있고 실체있는 존재로 여기며 작업하는 작가의 작업방식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힘겨운 시간들을 만들어가는 그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400개의 피스로 한 벽면을 가득 채운 <검은 별>(2021)은 검은 하늘에 수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 발짝 다가가 살펴보면 이 작업의 주인공, 스타, 즉 별은 검은 ‘어둠’이다. 작가는 셀 수없이 많은 1mm짜리 모나미 펜과 시간, 노력을 소모하며 어둠을 채워나갔다. 상대적으로 밝게 빛나 보이는 하얀 별들의 실상은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는 빈 종이인 것이다. 다시 말해 작가는 빛나는 별을 그린 것이 아니라 어둠의 시간을 그렸다. 계획적이고 통제적인 훈련으로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며 콘텐츠를 생성해 내는 아이돌 시스템 안에서 존재하는 고질적인 병폐는 아티스트의 자율성을 축소시키고 창의성을 발전시킬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원제의 작업은 이러한 문제점들과는 정 반대로, 어둠을 채우는 데 가장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도구인 펜을 활용하여 결과보다는 과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밝게 돋보이는 별의 존재를 목표로 삼았다기보다, 수없이 그어진 검은 선들이 길고 긴 과정과 노력으로 함축되어 보여지고 나니 나머지 여백에 자연스레 별로 만들어져 빛나는지도 모르겠다.

2011년 국내 가요 탑 차트를 차지했던 K팝 음악들과 달력의 한국적 풍경 사진을 결합한 작품 <국민 매니페스토>(2021-2014)는 최윤의 작업세계에서 남북 이데올로기의 흔적과 한국의 문화적 취향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한 북한 여성이 소리치는 웅변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면 나는요 오빠가 좋다거나, 니가 있어야만 여기가 파라다이스라거나 하는 케이팝 음악의 가사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웃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작가는 분단국가로서 남한과 북한의 분절된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때로는 우회적인 소통의 기능으로 대형 스피커에서 나오는 K팝 음악이 활용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동시에 이는 길거리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국의 문화적 도구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는 2016년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농성 중 경찰과 대치한 상황에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나는 세계’를 열창했다는 뉴스를 회고해보게 하는데, 음악이라는 하나의 소통 도구가 K를 만나 파급력과 영향력을 가지며 전략적이고 정치적으로 기능하는 지점을 드러낸다.
 2022년 신작 <홈-쇼핑>(2022)에서는 한국적 광고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과거 만물트럭 장수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듯한 어조와 한국적 홈쇼핑 아이템들이 뒤섞여 우리에게 독특한 문화적 취향을 판매(selling)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인에게 가장 효과적인 광고 전략은 ‘웰빙'과 ‘최첨단 기술’이다. 각종 건강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최첨단의 기술을 결합한 기적의 샤워기와 곰팡이 제거제로 대표되는 생활용품들이 가진 혼성적 효과들이 파급력있게 외친다. 또한 작가는 작품 제목 <홈-쇼핑>에 홈, 고향, 혹은 고국을 사고파는 의미를 내포하는데,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총체적으로 결합하고 경제와 시장논리, 혹은 최첨단의 기술들을 모두 품은 한류의 강력한 콘텐츠들이 세계 시장에서 고가행진하는 현상을 바라보았다. 한국만의 향토적 체취가 소비되어지는 세계 시장논리를 물을 뿜어냄과 동시에 곰팡이가 자라날 환경을 제공하는 샤워기와 이를 제거하기 위한 곰팡이 제거제를 함께 판매하는 작품의 아이러니에 빗대어 소리친다.     


나가며     

현대미술에서 아티스트의 성장 과정과 상업적으로 소비되어지는 생태적 특징들이 K팝 문화의 메커니즘과 결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서부터 시작된 본 기획은 다양한 방식으로 K팝 문화의 문법들을 차용하여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며 동시대에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과 함께 다시금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이 두 문화 사이에 자본과 상업성을 중심으로 구분되었던 경계가 흐려지면서 서로가 흡수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리좀적으로 확장하며 퍼져나가는 기능주의적 현상으로 보고, K팝 문화가 한국의 현대미술 안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증식하고 또 다른 모습으로 탈피되는지를 본 전시를 통해 살펴보고 싶었다.

기능주의의 기본적 문제는 "어떻게 사회는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가?"이다. 전시에 참여한 6명의 작가들은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사회의 욕구들을 작업으로 드러내고 대중에게 그 욕구의 충족을 불러일으키며 현대미술가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하위문화에서 세계적 주류가 된 K팝 문화에 대한 이해를 꾀하고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각자가 어떠한 방식으로 새로운 신드롬을 만들어 가는지를 관찰하며, 계속해서 변화하는 대중(Popular)과 동시대미술 사이에 존재하는 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하는 유연한 관계들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이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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