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EAC 작가지원프로젝트 노비스르프 개인전 서문
2022 EAC 작가지원프로젝트 노비스르 개인전《역설의 바니타스: Johanna》
2022. 12. 5. - 12. 24.
노비스르프 작가는 이번 행복북구문화재단 "EAC 작가 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된 4명의 작가 중 마지막 주자로 12월, 어울아트센터 갤러리 명봉에서 개인전을 연다. <역설의 바니타스: Johanna>를 제목으로 하는 본 개인전은 작가가 이전에 가졌었던 개인전들의 주제와 이어진다. 필자는 노비스르프작가의 작품을 대구문화예술회관의 2022년 올해의 청년작가 전에서 처음 마주했었고 본 글을 위해 오픈 준비중인 전시장에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올해의 청년작가전에서 마주한 작가의 전시는 반 고흐 작업들의 형상을 한 화려한 페인팅과 영상작업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시의 제목도 반고흐의 동생 '테오(Theo)'였다. 게다가 이번 개인전은 '조안나'라는 캐릭터를 가져왔다기에 자연스레 제일 먼저 '왜 반 고흐지?'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작가는 불을 사용한 '불 그림(Fire Painting)'작업을 한다고 했다. 불과 고흐, 그리고 영상 속 작가 본인은 어떠한 연동작용으로 엮이는 걸까.
질문의 결과를 먼저 말하자면, 그 굼긍증은 어울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작가를 만나 나눈 이야기들을 통해 혼자 상상했던 것과는 상당히 거리감 있는, 예상 밖의 방향으로 해소되었다. 장식적이고 매력적인 작품의 첫인상과는 사뭇 다르게 작가 개인의 가족과 과거의 시간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한국사회에서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킬 기억으로 말이다.
노비스르프는 '불 그림'을 시작한지는 20년이 넘었다고 말한다. 캔버스 위의 안료와 물성들이 '불'이라는 매개를 만나 화학적 작용을 통해 새롭게 변이하여 탄생되는 회화 작업이다. 일반적인 회화가 물감이 묻은 붓을 캔버스에 가져다 대면서 드러나는 색과 형상이 어우러져 완성된다면, 작가의 회화는 굉장히 섬세하고 노동집약적인 붓질을 했음에도 드러나지 않는 형상을 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잿빛이 도는 흰색으로 부활시킨다. 불이 묻은 토치로 붓질하면서 과거의 기억과 행적들을 하얗게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에서 불의 연소과정과 물리적 변이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개념적으로 중요한 기제이기도 하고 작가 스스로도 이를 통해 말하고 싶은 메세지가 뚜렷해 보인다. 작가 개인적인 서사를 보여주기에도 너무나 효과적이고 적합한 기법이 분명하다. 하지만 필자는 작가가 불을 활용하게 된 계기와 불로 부활시키기 이전의 숨겨진, 하지만 근본적인 토대가 되는 작동원리에 대해 더 살펴보고 싶었다.
15세기 유화물감이 회화의 재료로 발달되기 시작하면서 미술사적으로도 큰 혁신을 가져온 것 처럼 작가가 회화 제작에 처음 불이라는 미디움(medium)을 발견하게 된 것 또한 작가의 가족사, 할머니로 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불 그림' 작업을 지속하는 계기가 되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가족구조의 변화와 그에 따른 거주지, 그리고 거주자의 문제로 인해 불을 사용하게 되었던 할머니와의 해프닝을 말하는 작가에게 나도 모르게 '저도 그랬었어요'라고 반응해버렸다. 그의 이야기를 무력하게 일반화시켜버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 개인의 과거나 아픔이 한국인을 관통하는 사회성, 가족주의, 나아가 연대의 고리로 확장되기도 한다는 반증이었으리라.
불을 통해 형상을 드러내기 이전에 수많은 선들을 그어내는 섬세한 붓질의 시간은 작가의 작품에 바탕이며 필수적이다. 산소가 있어야 불이 존재 하듯, 작가 내면의 이야기들과 노동집약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바탕의 준비단계들이 차곡히 쌓여 '불 그림'의 존재이유가 뚜렷해진다. 작가는 불을 만나 드러난 형상들 위에 다시 붓질을 하여 부분을 덮고 또 다시 토치를 집어들기를 반복적하며 작업한다. 과거의 흔적을 붓으로 그린 후 불로 환생시키고, 그 위에 부분의 기억을 새로이 덮어 또다른 모습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시간과 공을 들인 섬세한 붓질과 차가운 토치에서 비의도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불 사이를 오가는 작가의 작업과정은 개인의 치유이자, 대가를 치루는 의식이자, 삶과 죽음을 떠나 모든 것을 용서하는 포용으로 발전한다. 어딘가에서 읽은 '과거를 교정하고 싶었다'던 작가의 설명이 기억에 남는다. 과거의 사건들은 결코 교정될 수 없지만 현재가 곧 과거가 될 것이고 변화하는 자아에 따라 기억도 달라진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작가가 서양 미술사 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히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를 형식적으로 차용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아도 고흐는 우선 대중적으로 모두가 아는 화가이고, 드라마틱한 개인의 서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생애가 고흐의 작품이 20세기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작가의 개인적 서사들이 모두 탈각되고 작품을 형상으로만 마주했을때에도 그 힘은 유효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인생과 작품을 가져온 노비스르프의 작업은 형식적 차용이라기 보다 개인적이고 감정적으로 '고흐'라는 캐릭터에 대한 동경을 표상하며 공감과 위로를 구하는 시도로 보여지기도 한다.
불에 달구어진 빛나는 쇳물처럼 어떠한 형상으로도 변화할 수 있는 작가의 작업은 다시 살아나는 회화, 나아가 용서와 치유를 내포한다. 연소시킴으로써 탄생되는 아이러니를 통해 꺼지지 않은 마지막 작은 불씨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생명력을 가진 불로 번져나간다. 불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필수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기에 빛나는 불꽃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연소의 이유와 과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각자의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개인의 아픔은 모두의 아픔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노비스르프의 작업은 마르지 않는 만인공통의 연료와 충만한 산소공급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수용이 주요한 작동기제로 기능하게 된다. 그의 작업이 개인의 감정과 정서를 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의 정동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인화점(Flash point)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혜원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