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지 않는 꽃은 없다

봄날이 오지 않을 것 같을 때

by 오현주

분홍 벚꽃은 수줍게 고개를 내밀어 봄소식을 일찍 알립니다. 매해 봄, 창경궁은 노랗고 발그레한 물결로 꽃대궐을 이룹니다. 꽃들이 봄의 귀환을 온몸으로 화답하는 와중에도 계속 겨울잠을 자는 나무가 있습니다. 대추나무는 봄이 다 지나서야 깨어납니다. 그렇지만 늦여름까지 1년에 3번 꽃을 피워 다른 나무보다 훨씬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어쩌면 대추나무는 남들보다 긴 겨울잠을 자면서 더 충실히 가을 준비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도 자기 재능을 일찍 꽃 피우는 신동이 있는가 하면 시작은 늦었지만 더 많은 열매를 키워내는 대가들도 있죠. 배우 윤여정 씨는 70대에 세계 영화상을 휩쓸었고 소설가 박완서 씨도 마흔 살에 등단해 한국 문학에 유산을 남겼습니다.


4년 전 일입니다. 25살 청년이 미처 꽃을 피우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이 청년의 마지막 행적이었던 잠수교 난간에 노란 쪽지들이 붙어있었습니다. 잠수교에서 사라진 아들을 찾는 엄마의 애절한 편지였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 엄마랑 같이 집에 가자"

"하염없이 부르고 싶은 이름, 아들아 사랑한다"



아들은 '열심히 살아보려 했는데 잘 안 됐다'는 말과 4천여 만원의 빚을 남기고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한 번의 실패로도 낙오되는, 노력만으로는 좁혀지지 않는 사회 구조가 젊음의 희망마저 꺾어버린 것 같아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학자금 대출받아 공부했는데 취업이 안 돼 신용불량자가 되는 청년 실신(실업+신용불량자) 시대입니다.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20대가 늘고 있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자랑이 되고 싶었으나 짐이 되는 현실에 죄송스럽고 부모는 좋은 환경과 기회를 물려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뿐일 테죠.

2012년 교보문고 광화문 글판에 걸린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구


나태주 시인의 이 유명한 풀꽃 시는 발표한 지 10년이 지난 뒤 교보문고 글판에 걸리면서 알려졌습니다. 나 시인은 좋아서 쓴 시가 환갑을 넘어 사랑받았으니 인생의 반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그가 또 15자의 짤막한 글로 우리에게 위로를 건넵니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풀꽃, 나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