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허공에의 질주〉(1988)

끝없이 안주와 정착을 갈망하다

by 신해찬

영화의 원제는 〈Running on Empty〉다. 직역하면 '연료가 다 떨어진 채 달린다'거나 '기진맥진한 상태'라는 의미인데, 국내 개봉 당시 번역된 제목은 〈허공에의 질주〉다. 원제에서 'empty'를 빈 공간이라는 '허공'으로, 'running'을 '질주'로 정말 정직(?)하게 해석한다면, 〈허공에의 질주〉라는 제목이 나온다. 번역 과정이 단순 의역인지, 재해석인지는 명확히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창의적이고 시적으로 승화된 제목이다. 영화의 본질을 탁월하게 함축했다.


영화 속 주인공 가족은 베트남 전쟁 당시 네이팜 제조 연구소 폭파 사건에 연루된 이후 FBI에 쫓기며 도피 생활을 이어간다. 아버지 아서 포프(주드 허쉬)와 어머니 애니 포프(크리스틴 라티)는 당시 반전운동에 참여한 젊은 활동가들이었으며, 전쟁에 대한 항의와 신념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세상과 고립된 채 전국을 떠도는 삶을 살게 된다. 그들에게는 천부적인 피아노 재능을 가진 장남 대니(리버 피닉스)와 차남 해리(조나스 애브리)가 있다.


가족은 마치 '발없는 새'와 같다. 끊임없이 떠돌며 잠시 정착하다 싶으면 다시 떠나야 하는 반복적인 생활로 인해, 그들은 단 한 번도 안정된 삶의 터전을 가질 수 없다. 이런 도피 생활을 이어오면서 대니는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으며 줄리아드 음악원 입학이라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그가 줄리아드에 가기 위해서는 가족과 헤어질 수밖에 없다. 늘 반복되는 떠돌이 생활 속에서 불안과 공허를 느끼며 살아온 대니는 이제 가족과 자신의 꿈 사이에서 운명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 대니의 내적 갈등과 혼란을 리버 피닉스는 섬세하고 깊은 눈빛으로 표현해낸다.

이 영화에는 한번 보면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수밖에 없는 상징적인 장면들이 있다. 하루하루 힘든 노동과 불안한 도피 생활로 지친 아버지 아서가 집에 들어와 말없이 가족들을 품에 안는 순간이다. 아서 역의 주드 허쉬는 이 장면에서 지친 눈빛과 무거운 걸음, 말없이 가족의 어깨를 감싸 안는 깊고 따뜻한 포옹으로 가족을 향한 무한한 사랑과 고단한 삶의 무게를 동시에 전달한다. 대사가 없어도 그의 표정과 행동만으로 깊은 울림을 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바로 가족이 FBI의 추적을 피해 또다시 거처를 옮겨야 하는 마지막 순간이다. 부모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대니만을 남기기로 결심한다.(대니는 그 사실을 모른다.) 아버지는 떠나려는 차에 황급히 자전거를 몰고 와 타려는 대니에게 자전거를 싣지 말라고 한다.

"우리 모두 너를 사랑한다. 그러니 세상에 좋은 일 좀 해봐라"

그들은 차로 그의 주변을 돌며 이별을 고한다. 그 너머로 서서히 멀어지는 자동차의 모습은 이 영화의 주제를 완벽하게 시각화한 명장면이다.

대니 역을 맡은 리버 피닉스는 짧은 삶을 살다 갔지만, 그의 연기는 긴 여운으로 관객들에게 남았다. 현재 활약 중인 동생 호아킨 피닉스의 훌륭한 연기를 보면서도 여전히 잊을 수 없는 리버 피닉스의 눈빛과 우수에 찬 표정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바로 이 영화 때문이다.

결국 〈허공에의 질주〉는 가족이라는 주제를 가장 깊고 순수한 형태로 표현한 영화다. 공허 속을 끝없이 질주하면서도 사랑과 희망을 놓지 않으려 했던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이 영화는 보는 이들에게 긴 여운과 깊은 감동을 전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발없는 새처럼, 끝없이 안주와 정착을 갈망하는 존재가 아닐까. 결국 그 정착의 목적지는 다시 가족이다. 살면서 가족과 떨어지는 순간들을 경험하지만, 우리 내면은 늘 가족을 향해 있지 않은가. 발없는 새들이여…. 우리네 삶의 아버지, 어머니, 동생, 형, 누나를 한번쯤 찾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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