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밀가루, 카페인 끊기 10일 차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소울푸드 스토리가 있다. 한때 나는 떡볶이에 진심이었다. 떡볶이는 그저 물에 떡과 어묵을 넣고 고추장을 풀어 끓인 음식이 아니었다. 나를 지나오게 한 시간이고,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 깊이 자리 잡은 무언가다.
내 인생에 영원히 통일할 수 없는 떡볶이 삼국지 시대가 있었다.
옛 동네 만화방에서 팔던 마약 떡볶이,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의 식지 않는 쫄면 떡볶이, 길 건너 건물 지하에 있던 조악한 즉석 떡볶이가 그것이다.
동네 만화방은 인테리어 가게의 한켠을 잘라내어 개조를 한 곳이었다. 좁은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약간 어둡고 지저분한 10대들의 은밀한 공간이 나왔다. 이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파는 떡볶이는 마약을 탔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중독성이 강했다. 색은 흔한 빨간색이 아니고 말간 갈색 빛이 돌았는데 아주 매력 만점의 맛이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비슷한 맛을 내는 떡볶이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정말 독특했다.
백화점 지하의 푸드코트에 있던 쫄면 떡볶이는 '먹음의 열망'을 가지고 품을 들여야 먹을 수 있었다. 방과후 학교에서 출발해 집을 지나치고도 꽤 걸어서 백화점까지 가야 했다. 절대반지를 파괴하러 먼 길을 떠나는 호빗족처럼, 수고스럽더라도 나에게는 투자의 가치가 있는 황홀한 맛이었다.
마지막으로 천하를 통일하지 못한 떡볶이 중 하나는 어느 건물 지하에 있던 즉석 떡볶이 집이다. 이곳은 당시 유명한 여배우도 즐겨 찾는다는 소문이 난 곳이었다. 실제로 그 여배우를 목격한 적은 없지만 그때는 그런 소문이 돌았다.
나는 푹 빠져있던 이 즉석떡볶이를 부모님께도 맛 보이고 싶었다. 하루는 조르고 졸라 떡볶이 집에 부모님을 앉히는 데에 성공했다. 이 집의 즉석떡볶이는 색깔부터 압도적이었다. 딱 보기만 해도 티가 나는 성형미인처럼 인공미가 가득했다.
시뻘건 색을 뽐내며 바글바글 끓어대는 떡볶이를 한 입 먹은 엄마의 입에서 본심이 튀어나왔다.
조악하다.
이렇게 나만의 떡볶이 삼국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중년의 나이가 되면서 딱히 먹고 싶은 음식도 없어졌다. 굳이 밝였던 음식을 꼽으라면, 급격한 체중 증가와 소화불량의 원인인 빵, 과자 정도일까.
설탕, 밀가루, 카페인을 끊고 이삼일차에 숙취 같은 두통과 몸의 한기, 피로감을 심하게 느꼈다. 나는 무언가에 사로잡힌 느낌이 들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꿈속의 내가 떡볶이를 먹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다. 즐거움도 잠시, 이 음식들은 급격한 두통을 유발했다. 나는 꿈에서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를 하다가 눈을 떴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지끈지끈, 깨질듯한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설탕, 밀가루, 카페인 끊기 일주일 차쯤 되었을 때 꿈에 또 떡볶이가 나왔다. 다행히 두통은 이미 가신 뒤였다.
사실 설탕, 밀가루를 끊으려면 떡볶이와는 생이별이다. 그래서였는지 그 많고 많은 음식 중에 하필이면 떡볶이가 두 번이나 꿈에 나온 것 같다. 퍼뜩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 역시 떡볶이는 나의 소울푸드가 맞구나.
페르세포네가 석류 6알을 먹은 죄로 일정 기간 지하에서 보내야만 했던 것처럼 내가 먹은 단 군것질들이 나를 '한계 속에' 가둬버렸다.
불과 일주일 상간에 떡볶이 꿈을 두 번이나 꾼 것은 계절이 돌아오면 다시 땅 위로 올라오는 페르세포네의 숙명을 상징하는 것일까.
적당한 완급 조절 없이 단 것을 탐닉하지 않았다면 떡볶이를 꿈꾸지 않았을 것 같다. 라캉이 말했듯,
나는 소망한다, 나에게 금지된 것을
나는 언제까지 이 지하에 머물러야 하는 걸까. 페르세포네가 지상에 나오는 계절이 오면 나도 떡볶이를 다시 먹을 수 있게 될까. 아니, 어쩌면 지금 여기가 나의 지상일지도 모른다.
나는 떡볶이와 작별 연습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