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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다는 거짓말

폭식의 이유

by 진재

선택한 적 없는 이 삶 속에서, 나는 나의 몸과 함께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조금 더 현명하게 다뤄가야 할 것이다.


그 시작은, 내 몸과의 진짜 대화일지도 모른다.

나는 외롭지 않다.

'나는 외롭지 않다'는 믿음은 믿음을 넘어 일종의 당위와 같았다.

나는 외롭지 않아야 했다. 그래야만 성숙한 어른이라고 믿었으므로.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외로워요' 라는 말은 얼마나 스스로가 나약하고 유치한 존재인지를 인정하는 백기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아이들이 독립해서, 배우자가 자기랑 놀아주지 않아서, 애인이 없어서, 외국에 이민을 가서, 외롭다고 하는 사람들은 내 눈에는 심심하다고 칭얼대는 어린아이 같이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독단적이고 편협한 생각이 얼마나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인지, 나라는 인간이 이렇게나 이율배반적이라는 사실을 요즘 나의 몸을 읽으며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오늘은 차분히 앉아 내가 지난겨울과 봄에 걸쳐 하루동안 위장에 밀어 넣었던 음식들을 주욱 나열해 보았다.


아침 먹고 간식, 점심 먹고 디저트, 오후 3시의 간식, 저녁 먹고 디저트.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뭐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헛헛함에 오며 가며 얇은 스틱 모양의 과자들까지, 오독오독 씹을 때마다 죄책감은 상승했다.


구토하는 폭식증까지는 아니어도 분명히 문제가 있는 폭식을 일삼고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몸에 대한 폭력에 가깝다.


음식은 감정이라고 한다.

내가 먹은 영양성분은 하찮고 당분은 높은 과자들은 내 감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외로움은 다양한 감정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쓸쓸하고 공허한 느낌,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과 사소한 일에 느끼는 분노 같은 것들도 외로움이 가장한 감정일 수 있다.


이러한 감정들은 마음으로 머물지 않고 몸에 신호를 보낸다. 즉각적으로 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킨다. 이때 당분은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시켜주며 외로운 마음을 바로 이완시켜 준다.


여러 번 반복해서 과자를 통해 부교감신경이 안정되는 경험을 한 나의 뇌, 나의 몸은 지속해서 어떤 텅 빈 감정을 느낄 때마다 과자 봉지를 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 마음이 얼마나 텅 비어있는지, 정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외롭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나는 외롭지 않다는 거짓말을 이어가기 위해 운동을 하고, 취미 활동을 하고, 공부를 하고, 책을 읽었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행동으로 허허로움이 상쇄되기에는 그 골짜기가 너무나 깊었다.


외롭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미성숙한 사람 취급하는 것은 허세에 불과했다. 내가 스스로 외로운 사람이었음을 인정하고 나니 이제야 사람은 모두 외로운 존재이고, 외로움은 들숨과 날숨사이를 유영하는 그림자처럼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권여선의 소설 <레몬>에 나오는 한 문장에 나의 눈이 오래 머물렀다.


'언니는 몸의 물질성에 대한 자의식이 느슨하고 희박했다.'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휩싸인 줄도 모른 채 몸의 물질성에 대한 자의식을 상실하고 살았던 것이다.




내면의 소리를 무시한 대가는 몸이 먼저 치른다.




내가 이 외로움을 어떻게 현명하게 다스리며 살아가면 좋을지, 선택한 적 없는 이 삶 속에서, 나는 나의 몸과 함께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조금 더 현명하게 다뤄가야 할 것이다.


그 시작은, 내 몸과의 진짜 대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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