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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작가는 이야기 치료사

브런치 2회차

by 진재


1980년대 후반, 가족치료사이자 사회복지사였던 마이클 화이트(Michael White, 1948~2008)와 데이비드 엡스턴(David Epston, 1944~)은 '이야기치료'라는 것을 창시했다.


화이트는 호주 출신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주로 몸을 쓰는 일에 종사했다. 사회복지 학위를 받은 후 본격적으로 가족치료사 활동을 시작했다. 엡스턴은 캐나다에서 태어나 20세가 되기 전 뉴질랜드로 이주하여 사회학, 인류학 등을 공부하다가 나중에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둘은 1981년 호주에서 열린 가족치료학회에서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렇게 '이야기 치료'가 탄생하게 된다.


이야기 치료는 개인의 이야기를 재구성함으로써 정체성과 삶을 회복하도록 돕는 심리상담의 한 방식이다.


1990년대 이후 서구사회에서 널리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에는 2000년 이후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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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문제가 생기면 사람 자체를 문제 삼는 방식에 익숙하다.


“또 바람을 피웠다니,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인간이야.”


“아이가 또 거짓말을 해요. 왜 저럴까요? 사기꾼 되는 거 아닐까 걱정이에요.”


이런 식의 말은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있는 '사람=문제'로 보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야기 치료는 '사람'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지금껏 지배적이었던 '문제' 중심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대안적인 삶의 이야기를 다시 쓰도록 도와주는 치료법이다. 내담자는 이야기 치료를 진행하며 그동안 잊고 있던 자기 삶의 지식과 기술을 새롭게 찾아내게 된다.



나는 우연히 이런 치료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매일 수백 건의 이야기가 올라오는 ‘브런치’가 바로 떠올랐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이곳에 박제되어 멈추는 것이 아니다. 기필코 다시 돌아와 내 삶에 영향을 미친다. 작게는 하루의 자기 성찰이 되기도 하고, 크게는 출간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이야기는 삶이 되고 삶은 곧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평온한 하루를 바라지만 그것은 늘 예기치 않게 흔들릴 수 있다. 아무리 조심해도 옆에서 갑자기 끼어든 차 한 대에 모든 계획이 틀어질 수 있다. 인생도 그렇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선택이 내 하루를, 내 인생을 흔들어 놓을 때가 있다.




나는 문제를 경험하는 사람이지
문제 자체는 아니다.




내가 겪고 있는 지금 현실에서의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이해하고, 이 문제가 나에게 끼친 영향을 알아본다. 그리고 이 문제가 얼마나 내 삶의 질을 하락시켰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이야기 치료 과정 중에 일어난다.


이야기 치료에서는 개인이 삶의 저자가 되는 것을 강조한다. 내가 저자가 된다는 것은 내 삶을 운영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 치료는 자신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대안이야기'를 계속 써 나갈 수 있도록 장려한다. 이야기 치료는 '나의 정체성'은 고정적이고 본질적인 것이 아닌 내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치료의 후반부에는 가족이나, 친구,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 등의 앞에서 '정의예식(definitional ceremony)'이라는 의식을 치른다. 이것은 자신이 선호하는 삶의 이야기, 자신이 앞으로 살고자 하는 삶의 모습을 선언하는 의식이다.


요즘 나는 브런치에 나의 식습관 개선과 건강 개선에 관련된 이야기를 적고 있다. 아직 치료의 후반부에 가기에는 멀었지만 하루의 끝에 글을 쓰고 브런치에 올리는 것은 일종의 정의예식이기도 하다. 글의 말미에는 늘, 앞으로 어떻게 내 몸을 돌볼지 써내려 나가기 때문이다.


나 하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양한 상처와 경험을 지닌 작가들이 브런치에서 셀프 '이야기 치료'를 실천하고 있다. 브런치 작가는 단순한 글쟁이를 넘어서 자신과 타인의 삶을 어루만지는 사람이다.


내가 글을 쓰면서 자가치료를 하는 동안 누군가는 나의 글을 읽으며 자신을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적어도 브런치 작가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삶의 주체를 자기로 인식하고 있거나 인식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일 것이다.


브런치의 많은 작가들은 보다 더 나은 자기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기 위해 대안적인 이야기를 구축하고 있다. 이곳에서 작가들은 각자의 삶을 다시 써내려가는 '이야기 치료'의 공동 저자들이다. 거기에 나도 슬쩍 한 숟가락 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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