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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제가 병장으로 전역합니다.

때로는 침묵이 필요합니다.

by 작은불꽃

작년 새해, 첫 신병으로 철우(가명)가 전입왔습니다.

철우는 대대장실을 들어오는 눈빛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신병이 전입을 오면 눈치를 보면서 테이블에 앉을까 말까 고민합니다.

보통의 신병과는 다르게 철우는 대대장실에 들어오더니 테이블에 놓인 과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대장에게 물어보지 않고 바로 테이블 위에 있는 초코파이 2개를 먹었습니다.

정말 배가 고팠다고 해도 허락도 받지 않고 초코파이를 먹는 신병은 처음이었습니다.

철우는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입대했습니다.

대학 생활했으니 군 생활에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상 졸업하지 못하고 5학기 만에 2년제 과정을 마쳤습니다. 나중에 종합 지능검사를 통해 알았는데, 철우는 지능지수가 76으로 경계선 지능을 가졌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눈에 보이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먼저 하고 봅니다.


철우가 전입해 온 후 한 달 뒤 설날 맞이 소대 단위 풋살대회를 했습니다.

다행히 철우네 소대는 풋살을 잘하는 용사들이 많았고, 마지막 날 결승까지 올라갔습니다.

한번도 출전하지 않았던 철우는,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는 규칙과 참여하지 않으면 휴가를 받지 못한다는 위기감에 결승에 잠시 참여하였습니다.

풋살을 몇 번 한 적이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철우는 공을 잡지도 못하고, 소대원들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상대편 선수가 잡은 공을 보더니 전력 질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공을 지나서 멈추지 못하고 혼자서 넘어졌습니다.


철우는 무릎이 매우 아플 텐데 괜찮다고 합니다. 무릎에 피가 나기 시작하자 병원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양주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그리고 무릎에 작은 철심을 심는 수술을 하고, 3개월간 입원했습니다.

3개월 후 부대로 복귀했는데,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다리를 조금씩 절면서 걸었습니다. 무릎에 보호장비를 부착하고 걷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습니다.

군의관님께서 보호장비를 제거하고 재활 운동하라고 했지만, 본인은 보호장비를 착용하는게 좋다며 계속 착용했습니다.


철우는 주특기 능력이 부족하고 정신과에서 처방한 우울증약도 복용하여 경계 작전, 훈련 등에 참여가 제한되었습니다. 지휘통제실에 앉아서 CCTV 감시병 임무와 병영생활 도서관 정리, 막사 주변 청소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중대장, 소대장이 잘못을 자주 혼내다 보니 늘 기가 죽어있었는데, 혼이 나도 잘못을 뉘우치지는 않았습니다. 왜 자신이 혼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주 혼내는 중대장, 소대장을 무서워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용사들과의 소통을 위해서, 철우를 포함한 6명의 용사와 매주 모여서 북쉐어링을 시작했습니다. 북쉐어링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 보다, 매주 같은 책을 작은 분량 읽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나눔을 통해 병영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알아가고, 지혜를 나누고, 한 주간 실천 과제를 정해서 실천하고 다음 주에 소감을 나눕니다.

몇 달은 철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어려웠고, 대화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년 넘게 북쉐어링을 하면서 철우는 조금씩 성장했습니다. 매주 한마디 할 때마다 칭찬해 주었습니다. 철우는 항상 북쉐어링 시작 20분 전에 먼저 도착하여, 과자를 먹으며 기다렸습니다.

간식을 먹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었습니다. 매주 하는 북쉐어링이 기대가 된다고 했습니다.

철우는 지능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신체가 발달하면서 자위행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자위행위를 부대에서 하려고 하니 눈치가 보였습니다.

하루는 생활관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자위행위를 한 것입니다. 알고 보니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생활관에 다른 동기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은 이불을 덮어쓰고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공공장소인 생활관에서 했냐고 물었더니, “밤에 화장실에 가서 몰래 하려고 하면 불침번이 지켜봐서 부담되었습니다.”라고 합니다.

결국, 공공장소에서 자위행위 한 것에 대해 징계 조치했지만, 본인은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화를 냈습니다.

성고충상담관님의 1시간 넘는 설명으로 공공장소에서는 자위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동기들과 마찰에 생활관을 3번이나 바꾸기도 했습니다.

생활관을 바꾸어도 적응이 어려웠습니다.

아버지께서 전화하셔서 현역복무부적합 심의에 반영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군 생활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벌써 절반을 넘어 했고, 부대에서 CCTV 감시, 병영도서관 정리, 담당구역 청소 등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조금 더 근무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CCTV 근무와 동기들의 시선을 힘들어하여 사단 드림캠프에 입소했습니다.

철우는 드림캠프 생활이 너무나 만족스러웠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일을 부여하지도 않고, 푹 휴식할 수 있어서 살이 찌기 시작했습니다.

전역할 때까지 드림캠프에 있고 싶다고 했지만, 2개월 후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드림캠프에 있으면서도 줌을 통해 북쉐어링에 참여했습니다.

드림캠프에서도 대화상대가 없어 대화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군 생활 1년이 지나자 후임 용사들이 들어왔지만, 철우를 선임 용사로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대우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또 마음이 상했습니다.

체력측정, 주특기 능력이 부족하지만, 자동 진급 제도에 의해 상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하는 일은 같았습니다. 다행히 병영도서관을 정리하면서 책을 읽는 습관이 생기며 지혜가 늘어갔습니다.


그런데 드림캠프 복귀 후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면서 또 생활관에서 자위행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은 인지했지만, 욕구를 참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북쉐어링은 정말 성실하게 참여했고, 조원들과는 대화를 잘 이어갔습니다.

조원 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A 하사와 함께 교회 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군 생활 중 힘든 십일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십일조를 하기로 했냐고 물었더니, “십일조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봉급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을 관리한다고 생각하니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라고 합니다.

북쉐어링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전역 1주 전 교회에서 세례도 받았습니다.


철우는 전역이 가까워져 오면서 전역 후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상담하면서 자신은 택시 운전사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택시를 운전하면서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손님과 대화하며 운전하고 싶습니다.”라고 합니다.

실제 택시를 운전하기는 어렵겠지만, 목표가 생겼다는 것이 큰 소득입니다.


철우와 대화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공감해주어 병장으로 전역할 수 있었습니다.

전역 전 면담에서 철우는 “대대장님 제가 병장으로 전역합니다. 정말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라고 합니다.

지능이 낮은 철우를 보고 매번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그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것이 더욱 소중했습니다.

부대장을 하다 보면 침묵하는 것이 말하는 것 보다 훨씬 힘들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용사들이 똑같은 전투복을 입고 있지만, 각각 다릅니다.

하지만, 많은 간부가 똑같은 시선으로 용사들을 맞추려 합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의 기준에 미달할 때마다 화를 내야 합니다.

때로는 침묵이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도움과 칭찬의 말 한마디가 활력소가 됩니다.

신병들이 적응하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실수와 그에 대한 질책입니다.

누구나 실수합니다.

실수에 대해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고, 침묵해주는 것이 그에게 힘을 줄 때가 많습니다.

경계선 지능의 철우에게 수많은 질책보다, 그를 이해하고 천천히 기다려 주었더니 병장이 되어 전역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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