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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부부, 동상이몽의 동지

by 김지민

2025년 4월 10일 >>>


어느 미국영화의 대사 한 구절이다.

“Are you living with the same woman that I saw last time?”

친구가 잦은 이혼으로 부인이 자꾸 바뀌니까, “내가 지난 번 봤던 그 여성과 지금 사느냐”고 묻는 것. 그런대로 아주 세련된 안부인사다. “혹시 그새 또 이혼하고 재혼했니?” 묻는 것보단 훨씬 말하기도 좋고 듣기도 좋다. 사실 미국 같은 나라에선 실제로 어디서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인사말이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이혼은 가문의 수치라며 쉬쉬했는데, 지금은 슬프게도 그 단어가 너무 친숙하다. 어쩌면 요즘은 한국도 위와 같은 인사를 더러 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여기 또 다른 영화대사가 있다. 이건 많이 씁쓸하다.

“I’m not afraid of hell. I’ve had enough of it already with my ex.”

“나는 지옥이 두렵지 않다. 이혼한 전남편에게서 이미 충분히 겪어 봤으니까.” 그 이유가 무능이든 무관심이든 억압이든 폭력이든 술이든 도박이든 불륜이든, 가정불화는 다 “남편 잘못”. 이 세상 수많은 여성들의 한탄(恨歎) 속에 수도 없이 등장했을 법한 문장이다. 나는 더 늦기 전에 때맞춰 개과천선했지만, 아무튼 여자는


1. 제때제때 돈 잘 벌어다 주고

2. 부단히 당신이 제일 예쁘다 하고

3. 늘 당신이 최고다, 당신 말이 다 맞다 하고

4. 매사에 그녀 하자는 대로 하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다. 나는 1번이 다소 시원찮았음에도 불구, 나머지 2, 3, 4로 최대한 만회한 덕에 겨우 목숨 부지하여 살고 있다.


지난 10년, 나는 이혼부부들 재결합을 위해 꽤 많이 애썼다. 아니, 멀쩡한 사람들이 자식들도 있는데 왜 헤어지나? 너무 안타깝고 기가 막혀 여기저기 나서 봤는데, 전부 실패했다. 재결합은커녕 대면조차 한 건 성사를 못 시켰다. 부부갈등은 우리집처럼 남편만 수그리면 즉시 해결! 그래서 쉽게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남편들 목이 다 철주(鐵柱)처럼 꼿꼿한 것이었다. “아내 사랑하기를 예수께서 교회를 위해 생명 내주심 같이 하라”고 배운 크리스쳔들도 매한가지. 생명은커녕 그 알량한 자존심 한 자락도 못 죽이는 것이었다. 같은 꿈을 꾸고 사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 어차피 부부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의 동지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전혀 딴 생각들을 하며, 나름 은밀한 꿈을 꾸고 사는 동료다. 그러니 남자가 여자에게 목숨을 못 내주면, 그녀의 고귀한 꿈이라도 인정하고 격려해 줘야 하는 것. 옆에 누운 여인의 꿈에, 밤새 나랑 똑같은 꿈이 꾸어지기를 원하니, 하하, 졸지에 이놈 저놈 꿈처럼 퍽퍽 차이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 여자들이 다 참고 산다. 남편이 코앞에 방을 얻어 놓고 5년이나 딴살림을 했는데도, 눈 딱 감고 참아 준 일도 있었다. 핸드폰이 서툴렀던 남편이 “화상통화” 버튼을 잘못 누르는 바람에, 대낮치고는 너무 적나라한 의상(衣裳)이 아내에게 들킨 것이었다. 뼈를 깎는 아픔, 나누며 어루만져 주며 삭이며 함께 울고 웃는 가운데 힘든 시기가 지나갔다. 진정 사랑과 용서는 위대한 것, 그들 부부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제일 돈독하다. 그런데 이보다 열 배는 더 힘들었을 어느 부인의 사연이 뼈아프다. 남들 같으면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인생의 “황금기”를 시작할 60대 중반. 일평생 참고 억누르고 바라고 기다리며 살았던 그녀에게 찾아온 건 남편과의 영원한 이별. 이래저래 직싸게 애만 먹이다가 끝으로 병을 얻어 떠난 것이었다. 선배 언니가 빈소를 찾았다. 그녀를 보자마자 달려가 부둥켜안으며 토하는 미망인의 절규,


“언니, 나 재혼할 거야!”


등 뒤에서 남편의 영정이 민망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평생 들어 본 중에 가장 슬픈 대사였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가 아닌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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