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8일 >>>
약 20년 전의 일이다. 미국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승무원 한 명이 내 자리로 와서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는
“오늘 비행은 OO 시간 정도로 예상되고요……”
하며 친절히 안내해 주고, 불편한 점은 언제든지 알려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승무원들 중에 제일 높은 수석승무원이었다. 내가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아무래도 무슨 착오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상대방이 무안해할까 봐 나는 깍듯이 “아, 예, 예……” 하고는 대충 그 상황을 마무리했다. 그 뒤 한국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전과는 달리 내 이름까지 확인하며 다가왔으므로, 더 이상 착오일 수는 없었다. 한국 도착하고 아내가 알아본즉슨, 내 마일리지가 --- 즉, 그간 나의 총 누적 비행거리가 --- 일정 수치를 돌파함으로써 받게 된 일종의 인사치레인 것이었다.
돌아보면 지난 40년, 정말 쉴 새 없이 왔다갔다했다. 요즘은 어디가 체류지고 어디가 방문국인지, 가끔 출입국 때 질문을 받으면 나 자신도 헷갈린다. 누군가
“창 밖의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창 틈에 끼인 여자”
라고 했다더니, 하하, 내가 일평생 꼭 그 신세다. 미국 있으면 한국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이제 돌아가셨지만) 양가 부모님 걱정. 한국 가 있으면 미국 있는 아들딸/손자손녀 걱정. 어느 쪽에 있어도 편치 않은 이 심사(心思)는 실로 “창 틈에 끼인 고통”과 같다. 이제 내달 말이면 다시 한국행. 우리 없이 딸과 사위가 얼마나 고생할지, 외할머니 없이 아이들이 밥은 제대로 먹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다 하늘의 도우심. 또 이 부지런한 왕복이 아직은 우리 부부가 젊고 건강함을 뜻하는 것일 것. 비록 “창 틈”에는 끼었어도, 늘 감사해 마지않는 삶이다.
맨 처음엔 유학하러, 기러기 시절엔 처자식 만나러, 그 뒤엔 자식들 뒷바라지하러, 또 지금은 손녀손자 봐 주러…… 찾아온 연유는 때마다 달랐어도 결국 미국에서 배운 것은 딱 하나. 바로
“최대한 가만 내버려 두라.”
하는 것이다. 우선 시카고 경제학의 가르침이 그랬다. 역대 노벨 경제학상 최다 수상자에 빛나는 “시카고 학파”. 그들 이론의 핵심은 “시장은 효율적”이라는 것. 즉, 개인과 기업은 주어진 자원과 정보 내에서 각기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므로, 모든 것을 시장의 자유로운 가격 기능에 맡김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지칠 줄 모르는 미국경제의 성장이 이 이론의 파워를 뒷받침해 준다. 나는 박사학위 논문과 이후 경제신문 칼럼 집필도, 그리고 실제 투자도, 전부 이 철학의 바탕 위에서 했고, 일일이 흡족한 반응/결과를 보아 오늘에 이르렀다. 이 “방치”의 철학은 또한 우리 딸과 아들을 통해서도 그 놀라운 저력이 증명됐다. 일체의 도움도 간섭도 없이 100% 팽개쳐 둔 바로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악전고투, 각자 타고난 재능대로 최상의 길을 찾게끔 해 주었던 것이다.
내가 "시장의 효율성"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잘 보여 주는 사례가 여기 있다. 2009년 1월, 여객기 한 대가 뉴욕의 허드슨강에 불시착한 일이 있었다. 그때 우린 시카고에 있었는데, 아내가 갑자기
“여보, 허드슨강에 비행기가 떨어졌대요!”
해서 나도 알았다. 9.11 테러의 공포가 채 가시지 않은 데다 빈 라덴도 안 잡히고 있었던 불안한 시절. 말 떨어지기 무섭게 내가 찾아 들어간 곳은 CNN TV도 뉴욕타임즈도 아닌 미국 주식시장. 내가 이론을 배우고 실전을 치르며 훈련돼 있었던 바로 그 방식이었다. 챠트를 보니 3대 지수가 --- Dow Jones, S&P 500, NASDAQ --- 공히 급락했다가, 날카로운 V를 그리며 상승 중이었다. 내가 말했다.
“응, 여보, 걱정하지 마라. 별 꺼 아이다.”
아내가 켠 TV에는 아직 상세한 보도가 없었는데, 차차 밝혀진 바, 역시 그것은 별 것 아니었다. 재난은커녕, 오히려 설리(Sully) 기장 등 155명 탑승자 전원을 축하해 줘야 할, 희대의 “해피엔딩" 항공사고였다.
9.11과 같은 테러인지, 아니면 단순 사고인지, 결국 다 알게 된다. 하지만 어떤 속보도 나오기 전에, 누가 어떤 공식발표도 하기 전에, 가장 정확히 사태를 파악, 가장 예리하게 그 심각성을 분별해 내는 것이 “시장”이다. 다시 말해, 주가/주가지수로 나타나는 숫자(數字), 그것이 제일 빠르고 정직하다. 나는 오직 그것만 보고 아내를 안심시켰고, 그날도 역시 틀림이 없었다. 이처럼 “숫자”에 대한 나의 신뢰가 두터운 만큼, 늘 나를 걱정시키는 수치가 하나 있다. 바로 코스닥(KOSDAQ) 지수다. 미국의 나스닥(NASDAQ) 지수를 본받아 1996년 하반기부터 산정을 시작한, 소위 기술주/우량중소기업/벤쳐기업 주식들로 구성된 지수다. 지난 주말 이 코스닥 지수는 729.69를 기록, 29년 동안 27% 하락했다. 그 똑같은 기간에 나스닥 지수는 16배 상승했다. 역시 동기간에 양국의 1인당 GDP는 한국이 3만 불, 미국이 8만 불을 상회하며 공히 약 2.5배 상승했다. 먹고 사는 것은 두 나라가 비슷하게 나아졌는데, 그 “기상(氣像, spirit)”은 미국이 하늘을 찌르는 반면 한국은 땅바닥을 긴다는 얘기다.
미국인 사위를 맞아서 보니까,
“자신의 책임 하에 매사를 스스로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라.”
하는 사상(思想)은 이론 이전에 그들 실제 삶 속에 이미 녹아 있다. 가령 우리 사위 누나(Julia)의 어린 딸들이 농장 창고 경사진 지붕에서 노는 걸 보고 우리 부부는 기겁을 했는데, 쥴리아는
“기껏해야 뼈밖에 더 부러지겠어요?”
하며 쳐다보기조차 안 하는 것이었다. 우리 사위(Silas)도 비슷하다. 한 번은 식탁 위에서 샤부샤부를 해 먹는데, 애들 때문에 아무래도 불판이 꺼림칙하여 치우려고 하자 사일러스 왈,
“뜨겁다, 위험하다는 게 어떤 건지 직접 겪어 봐야 돼요. 그냥 그대로 두세요.”
애들이 웅덩이에서 첨벙거려 아무리 신과 옷이 젖어도, 음식을 혼자 떠먹다 아무리 옷에 마루에 다 흘려도, 밖에서 뛰노는데 아무리 기온이 낮고 칼바람이 불어도, 웬만하면 그냥 다 내버려 둔다. 어쩌면 미국은 이 세상에서 “방치”의 소중함을 가장 충실히 터득한 나라인지도 모른다.
호기심 가득, 마음껏 뛰놀고, 뼈도 부러져 보고, 불에 데어도 보고, 추위에 꽁꽁 얼어도 보고, 한없는 상상의 나래를 펴며, 온갖 엉뚱한 생각을 하며, 모르면 물어보고, 궁금하면 두드려 보고, 한계에도 부딪혀 보고, 실패도 해 보고, 실수를 통해 배우고, 불가능해도 도전해 보고…… 이렇게 크도록 부모가 던져 놨고 또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만든 나라 미국, 그런 피가 또 대물림될 미국은 참 희망 가득하다. 한국은 거꾸로 간다. 아내 말로는 서울 강남 학원가에 초등학생 고시반/의대반까지 생겼단다. 그것도 광고 나가자마자 순식간에 다 차 버렸단다. 참으로 기막히고 슬픈 얘기다. 무지몽매(無知蒙昧)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아무런 꿈도 희망도 상상력도 없이, 부모가 깔아 놓은 안전한 철길 위를 꼭두각시처럼 따박따박 걷는 아이들…… 지난 29년, 나스닥 16배 상승과 코스닥 27% 하락이 너무 잘 설명되지 않는가? 그리고 향후 30년, 100년이 훤히 내다보이지 않는가?
이혼율, 출산율 등 많은 불편한 수치들 중에서도, 코스닥 지수를 특별히 유념하여 보라. 제정신이 좀 들어가는지, 여전히 정신이 나갔는지, 숫자 하나로 알 수 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