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주의 관점으로 바라본 진격의 거인

'자유'라는 단어를 중심에 둔 의미상실, 가치붕괴, 세계의 무목적성

by 노을

허무주의는 우리에게 허탈감, 공허함을 유발한다. 동시에 "정해진 의미가 없으니 스스로 의미를 만들 수 있다"는 자유의 철학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러한 철학에서의 허무주의 관점으로 본다면 진격의 거인은 철학의 장치를 사용한 허무주의 세계를 아주 잘 드러낸 작품 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 소년, 에렌 예거가 있다.


세계의 무의미함과 절망 - 허무주의의 시작


작품에서 우리는 왜 벽 안에 갇혀 살아야 하나? 몇 안 남은 인류의 자유라는 꿈을 위해 목숨을 바쳐 거인과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하지만 벽 밖에는 더 넓은 세계와 인류가 있고, 그 세계는 더 복잡한 증오와 폭력으로 움직인다. 이렇게 벽 밖의 진실은 아무 '구원'도 주지 않고 오히려 큰 절망만을 드러내며 진리 자체가 의미나 목적이 아니라 '또 다른 공허'로 이어진다.

이렇게 세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인간에게 시련을 주는 것이 아닌, 그저 혼돈과 폭력의 결과일 뿐이라는 깨달음이 허무주의의 시작이 된다.


가치의 붕괴 - 옳고 그름이 무너지는 세계


작품은 단순한 선악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곧 무너진다.

진격의 거인은 처음엔 인류 VS 거인이라는 명확한 선악구조처럼 보이지만, '거인'이라는 절대악은 사실 단지 또 하나의 희생이었고, 뒤로 갈수록 선악 관계는 완전히 붕괴된다. 우린 이쯤에서 에렌의 선택은 영웅인가, 악역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고 마레와 파라디 양측 모두 학살과 증오의 반복으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것을 느낀다. 작품은 '절대적으로 옳은 선택'이라는 개념 자체를 무너뜨린다.


"자유"라는 가치의 무의미함


작품에서 인물들은 끊임없이 "자유"를 꿈꾸지만, 그 자유는 매번 허상에 가깝다. 벽 밖의 자유를 꿈꾸던 그들은 벽 밖의 세계가 더 거대한 지옥임을 깨닫고, 세계 전체가 또 다른 억압과 증오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즉, 자유는 본질적 의미가 있는 절대 가치가 아니라, 상황과 권력 구조가 만든 상대적인 개념에 불과함을 보여주며 이는 허무주의의 핵심인 가치는 절대적이지 않고 인간이 만든 것이다를 그대로 반영한다.


에렌 예거 - 자유를 꿈꾼 소년이 실존주의에서 허무주의에 무너지는 과정


초기의 에렌은 굉장히 실존주의적이었다. 자유를 믿었으며 "불합리한 세상은 나를 억압하지만, 난 선택해서 나아갈 수 있다"라는 저항의 힘으로 자유를 '벽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는 단순한 형태로 이해했다.

스스로 결정하는 인간을 꿈꾼 에렌은 벽 밖의 세상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진실을 알게 된 순간, 에렌은 자유가 실재하지 않는 곳으로 떨어진다. 거인은 단순한 '악'이 아니었고, 벽 밖의 세계는 더 크고 잔혹한 구조였으며 자신의 고통 또한 누군가의 피해에서 비롯되었음을 안 순간 선악의 기준은 무너졌고, 자신의 행동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으며, 심지어 '미래의 기억'은 그에게 자유 의지를 허락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선택된 길을 걷는다"


여기서 에렌은 완전히 실존적 자유가 붕괴된다.

자유를 위해 살았는데 자유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신의 행동이 모두 예정되어 있었다는 사실로 인해 절망한다. 이는 허무주의 철학가 니체의 '가치 붕괴 이후의 허무주의'와 일치한다.


"모든 것을 없앤 뒤에야 새로운 세계가 생긴다"


에렌은 자신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든 그르든 스스로 세계의 미래를 선택하려는 방식으로 '가치 창조'를 시도한다. 최후에서 에렌은 '허무주의를 관통한 자' 즉,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 된다.

*초인은 기존의 한계와 허무주의를 넘어, 스스로 새로운 가치와 삶의 목적을 창조하는 존재.

이것이 에렌의 마지막 철학 형태이다.

이 모든 것을 요약하자면 에렌은 허무주의와 실존적 선택의 양극단에 동시에 서 있는 인물이다.


자유는 왜 이 작품의 중심 가치가 되었는가


자유는 사실 '억압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관점'이다.

작품에서 자유가 중요한 이유는 그 자유가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자유는 본질적으로 상대적이다라는 점에서 자유의 역설을 나타낸다. 자유는 전쟁의 원인이며, 국가의 이념이며, 개인의 욕망이다.


파라디의 자유는 마레의 공포가 되고, 마레의 자유는 에르디아의 절망이 되며, 에렌의 자유는 세계의 파멸이 된다. 즉, 자유는 누군가에게는 꿈이고, 누군가에게는 폭력이다.

자유는 무너지고, 왜곡되고, 다시 만들어지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가치이기 때문에 이 작품의 중심이 된다.


작품은 자유를 절대적인 '선'이나 '도덕'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를 폭력의 정당화로, 끝없는 전쟁의 불씨로, 그리고 파국의 이유로 제시한다. 이렇게 작품은 자유의 양면성을, 절대적 자유는 존재하지 않음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절대적인 자유가 없다면, 인간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작중에선 이렇게 답한다. 절대적 자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자유를 정의할 줄 알아야 한다. 자유는 선택하는 주체가 만드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작품은 완전히 비관적 허무주의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무너진 세계 속에서도 스스로 의미를 만들려는 선택을 한다. 아르민은 '평화를 위한 대화'라는 새 가치를, 미카사는 파괴의 순환 속에서도 개인적 사랑과 선택의 의미를, 히스토리아는 자기 인생을 스스로 결정한다. 이들은 모두 구가치의 붕괴 이후 새로운 가치를 스스로 창조한다. 이는 그들의 세계가 무의미하다는 허무주의적 절망에서 세계가 무의미하기 때문에 인간은 의미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실존주의적 반격이다.


허무주의적 결말과 실존주의적 결말


이 작품은 큰 틀은 허무주의의 세상에 작중 일부 인물들로 하여금 실존주의적 반격을 가한다. 따라서 진격의 거인은 허무주의에서 시작해 실존주의로 이어지는 철학적 여정 그 자체인 작품이다.

작품은 감상한 관객들로 하여금 결말을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하게끔 한다.


허무주의적 관점에서 본 결말.

자유도, 평화도 본질적 의미가 없고 폭력은 계속되며 거대한 힘 앞에 개인의 선택은 공허하게 무너진다.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본 결말.

세계가 본질적으로 무의미하기 때문에 개인의 선택이 더욱 중요해지고 미카가, 아르민 같은 인물은 '부조리 속에서도 의미를 창조하는 인간'으로 남는다.


진격의 거인은 자유에 관한 거대한 철학적 질문이다.


이 작품은 자유가 무엇인지 단정하지 않는다.

자유를 그리되, 자유를 의심하고, 자유를 찬양하되, 자유가 낳은 폭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관객에게 묻는다.


"이 세계에서, 너는 무엇을 자유라고 부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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