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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주제에

04/16 화 일기

by 백선


01_ 오브제에 대하여


이태원에 다녀왔다. 단 몇 시간뿐이었는데 시달리고 온 것처럼 힘들다.

첫 번째로 <마블프루트>라는 과일 대리석 오브제 상점에 다녀왔다. 예쁘고 갖고 싶었다.

두 번째로는 <불필요상점>이라는 소품샵을 가려고 했으나 어쩐 일인지 문을 열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해방촌이나 후암동에 가자고 다짐했다.

거기서 만보를 걷는 것보다 이태원에서 공사소리, 사람소리, 차소리의 어수선함이 배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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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카페에 쉬러 들어갔는데 거기도 대로변이라 버스 소리가 웅웅 울렸다. 어휴

공간은 꽤 멋졌다. 누군가의 집에 초대된 느낌이라 반가웠다.

작업하기 위해 노트북을 들고 온 사람들이 많아 괜스레 찔렸다.


아쉬운 마음에 크렘므오브제라는 곳에 다녀왔다.

귀여운 오브제가 많았다. 가게 앞 작은 정원도 너무 예뻤다.

스토브를 화병처럼 활용하다니 기발해.

오빠는 키가 큰 탓에 별안간 작은 벽에 머리를 찧고 크게 혹이 났다. 웃겼다.

난 작은 인간이라 살면서 벽에 머리를 박아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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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된통 힘들어서 그랬는지 집에 돌아오는 길이 너무 좋았다.

이 집에서 밖을 바라볼 때는 조금은 답답했는데 이상하지? 마음이 바람 같다.


면접일자가 정해졌다. 목요일 오전.

내일은 친구를 불러 마당에서 기른 상추로 고기파티를 하기로 했다.

공백에서 오는 여유를 감사히 여기고 지나가는 봄을 살짝 축하하는 의미다.

남은 시간에는 면접 준비를 좀 해보려 한다.

오빠는 내가 이제 백수 탈출이냐며 아쉬워한다. 씁 합격한 게 아니야.


마무리로 백수에 대한 자조적인 어투와 위로에 대한 생각을 쓰다가 결국 다 지웠다.

그냥 여기서 누군가도 당신과 같은 평범한 고민을 하고 괴로워하다가

어느 날은 또 별일 없이 잘 지낸다는 일기를 쓰고 싶었던 건데

뭘 자꾸 설득하려고 하고 교훈을 주려고 한 걸까?

부담감을 내려놓자.


02_ 꽃의 필요에 대하여


잡지의 사진파트에 들어갈

꽃의 다양성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 왔다.

요가를 하면서 문득 마음의 정리가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꽃은 필요를 증명해야 할 필요가 없다.

보자마자 아름답고 생생하고 행복하다. 기분 좋은 '웃음'과 같다.

왜 꽃으로 촬영 주제를 잡았는지

이 다양성이 어떻게 아름다운지 면밀한 조사와 첨언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결론이다.

나는 꽃을 사랑하고 거기에는 다양한 감정이 있지만 명확한 사실은 없다.

소재를 두되 그 사이의 연결성을 너무 억지스럽게 잡지 말자.

연결이 되지 않으면 되지 않는 데로 시각적인 만족감에서 그쳐도 좋다.

만약 조직하고 스토리텔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

일단은 내가 만들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만든 후에 재조직하는 게 좋겠다.

치밀하게 조직된 상황에서는 경직될 것 같아 조금 두렵다.


면접에서 합격하지 못하면 잡지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나에게 아티스트라는 자존감을 부여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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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제는 사용성보다는 아름다움에 중점을 둔다. 그게 이 물건의 필요성이다.


백수주제에 제법 잘 먹고 잘 사는 나날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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