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1 화 일기
나는 20대에 유럽 여행에 2천만 원 정도를 썼다.
여행을 한창 다닐 때는 주변사람들에게 계속 유럽유럽 하면서 추천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럽병 걸린 듯
그때는 지금의 날 것 같은 후기형 여행 유튜버들 보다는 해외가 얼마나 화려한지 재밌는지 가야 하는지 보여주는 콘텐츠밖에 없었다. 마치 홈쇼핑처럼. 그래서 나는 그 환상을 좇아서 열심히 알바를 했다.
"꼭 가야 해 꼭 사야 해! 저기 가면 행복할 거야"
당연히 지금도 여행은 추천한다. 내가 생각보다 얼마나 작은 세계에 살고 있는지 내 주변의 문화들이 꼭 정답은 아니구나 하는 '환기'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구경하는 재미와 행복은 기본이다.
나는 어릴 적 TV 속 풍경을 부러워하는 엄마를 꺼내 유럽과 지중해를 누볐다. 우리는 좋은 여행메이트이자 잘 맞는 친구였다.
작년에는 칠순이 넘은 외할머니와 가족들을 데리고 스위스를 일주일 간 다녀오기도 했다. 할머니가 더 나이 들기 전에.
모두 내가 기획하지 않았더라면 가지 못했을 것이다. 다녀온 후에는 어른들을 모시고 다녀오는 게 얼마나 힘든지 깨닫고, 내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며 함께 여행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제는 '나'에 초점화 해서 살고 싶다.
3040 때 할 효도를 몰아하느라 미숙한 나에게는 부담이 되었던 거 같다. 가족이라고 해도 누군가랑 하루 종일 붙어서 여행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여행이 좋지만, 너무 지쳤다. 어느 정도 다녀오니 전처럼 갈증 나지 않는다. 가면 좋고 안 가도 아쉬울 뿐. 꼭 가야 한다는 의지는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젊을 때 여행을 많이 해보니 욕구가 줄어들어 다행히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20대 내내 <인생은 1인칭 후회 없도록>이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미래에 내가 후회할 것 같다면 지금 해버리자"라는 마인드로 살았다.
그땐 그런 마인드로 살아가는 내가 멋져 보였는데 지금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환경에 감사한다.
나란 사람이 대단하거나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럴 수 있는 환경으로 어른들이 만들어 준거다.
지금은 그저 그간 해온 노력들이 그들의 호의와 보호에 대한 선물로 충분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