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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가려면 당신의 발부터 믿어라

by 정영기

“시장에 가려면 당신의 발부터 믿어라.” 이 우크라이나 속담은 오래된 농경 사회에서 태어났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19세기 시골 장터는 생존을 결정짓는 무대였고 그곳에 가기까지의 여정은 매번 고난의 연속이었다. 진흙길, 짐승, 도적, 예고 없는 비까지 모든 것이 사람을 시험했다. 그래서 장터에 도착한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발부터 돌아봤다. 결국 끝까지 믿을 수 있었던 건 스스로의 두 다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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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는 교통수단에 대한 조언 같지만, 이 속담의 뿌리는 훨씬 깊다. 사람들은 이 말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배웠다. 남의 도움은 언제든 흔들린다. 오늘 같이 가겠다던 이웃이 내일은 말을 숨기고, 든든해 보이던 친척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만취한 채 뻗어 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누구라도 신뢰의 기초를 다시 계산하게 된다.

이 속담이 말하는 핵심은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다. 남의 약속에 삶을 걸지 말라는 뜻이다. 의지할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사정과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이를 자기 책임의 철학으로 받아들였다. 동시에 세상이라는 무대가 얼마나 예측 불가한지 알고 있었기에 이 말에 더 큰 무게를 실었다.


그래서 이 속담은 블랙유머로도 자주 변주됐다. “남 믿다가 길에서 얼어 죽어도 그건 네 책임이지. 발에 물집 난 거 못 봤어?” 겉으론 우스갯소리지만, 속엔 삶의 현실이 그대로 박혀 있다. 도움을 기대하며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점검하라는 메시지다.

2025년을 사는 우리에게도 이 속담은 여전히 유효하다.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은 시대가 바뀌어도 불확실함으로 가득하다. 남의 말이나 시스템이 언제나 제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위험하다. 결국 마음을 붙잡아주는 건 스스로의 추진력과 책임감이다. 시장에 가든, 목표를 향해 걷든, 끝까지 책임져줄 건 내 두 다리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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