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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파로 그린 그림, 뉴럴 아트 시대

by 정영기


차가운 뉴욕의 겨울바람 속에서도 현대미술관(MoMA) 앞에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입장을 위해 무려 3시간이나 대기하는 긴 줄이 늘어선 것인데요.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고흐나 피카소의 명화가 아닙니다. 바로 자신의 머릿속 상상을 눈앞의 스크린에 띄워주는, 사상 초유의 체험형 전시 '뉴럴 아트(Neural Art)'를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미술관이 뇌과학 실험실로 변모한 이 현장은 지금 뉴욕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입니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관람객의 뇌파(EEG)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이미지로 바꿔주는 기술에 있습니다. 과거에도 뇌파를 활용한 미디어 아트는 있었지만, 단순히 기분 상태에 따라 색깔이 변하거나 추상적인 패턴을 보여주는 수준에 그쳤었죠. 하지만 이번 전시는 차원이 다릅니다. 생성형 AI와 결합한 최신 기술은 참가자가 머릿속으로 '눈 내리는 숲'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 그 이미지를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스크린 위에 구현해 냅니다.


이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몹시 큽니다. 그동안 예술은 '천재적인 작가'가 만들고 관객은 '감상'하는 수직적인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이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버렸습니다. 관람객이 곧 창작자가 되는 '참여형 예술(Participatory Art)'의 정점을 보여준 셈이죠. 이제 미술관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보관하고 감상하는 공간을 넘어, 관람객의 무의식이 실시간으로 예술이 되어 튀어나오는 역동적인 '생성'의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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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술은 단순히 예술계의 유희로 끝나지 않을 전망입니다. 내면의 심리를 시각화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아트 세러피(미술 치료)' 분야의 스타트업들이 이 기술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트라우마나 감정을 이미지로 꺼내어 치유하는 방식은 정신 건강 의학의 새로운 도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은 이 전시가 보여준 기술적 가능성을 확인하고 관련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새로운 숙제를 남깁니다. 바로 '저작권' 문제입니다. 내 뇌파 데이터를 바탕으로 AI가 그려낸 그림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상상을 제공한 나일까요, 알고리즘을 짠 개발자일까요, 아니면 AI 그 자체일까요? "내 무의식의 소유권"을 둘러싼 철학적이고 법적인 논쟁은 2026년 예술계와 법조계의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당신이라면 긴 줄을 서서라도 자신의 무의식을 마주하고 싶으신가요? 어쩌면 우리는 아주 가까운 미래에, 친구의 집에 놀러 가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며 "이거 작가가 누구야?"라고 묻는 대신 "이거 무슨 꿈꿨을 때 나온 그림이야?"라고 묻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술이 예술을 만나 우리의 가장 은밀한 상상까지 캔버스로 옮겨오는 세상, 이미 문턱을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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