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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행동 사이에는 바다가 있다

by 정영기

이 속담은 유럽 여러 지역, 특히 지중해 문화권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인간 이해에서 출발한다.


말은 언제든지 가볍게 떠올릴 수 있지만, 행동은 실제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차원을 요구한다. 흔히 사람들은 미래를 넉넉하게 상상하고 기분 좋게 약속하지만, 막상 실행 단계에 이르면 바람의 방향과 파도의 높이가 바뀌듯 상황이 달라진다. 그래서 ‘말과 행동 사이에는 바다가 있다’는 문장은 그 간극의 깊이를 한 번쯤 바라보게 한다.


이 속담이 흥미로운 이유는 인간의 모순을 비난하기보다는, 그 모순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말은 욕망의 속도대로 달리지만 행동은 현실의 무게를 견디며 나아간다. 누구나 좋은 계획을 세우는 데는 능숙하다. 하지만 그 계획을 작은 한 걸음으로 바꿔 내는 일은 쉽지 않다. 바다는 바로 이 차이, 즉 욕망과 현실 사이의 깊은 틈을 상징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속담이 인간의 나약함을 비웃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건너야 한다”는 암시를 건넨다. 바다를 무시하면 좌초하지만, 바다가 있음을 인정하면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필요한 시간, 에너지, 의심, 두려움 같은 것들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항해의 준비와도 닮았다. 바라는 것을 향해 나아가려면 말의 가벼움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이 가져오는 느리지만 단단한 리듬을 인정해야 한다.


현대적 맥락에서 이 속담은 전에 없이 설득력을 얻는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누구나 쉽게 결심을 말하고, 다짐을 공유하며, 그럴듯한 목표를 적어둔다. 하지만 이 모든 말들은 대개 ‘출항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항해는 알람을 끄지 않고 일어나는 아침, 미루고 싶은 마음을 눌러 한 페이지라도 쓰는 시간, 작지만 반복되는 행동 속에서 이루어진다. 바다는 여전히 우리 앞에 있지만, 그것을 넘는 배는 늘 ‘작은 행동’에서 만들어진다.


결국 이 속담은 행동을 강요하는 문장이 아니라, 말과 행동 사이의 틈을 관찰하라는 초대에 가깝다. 그 바다가 너무 넓다고 느끼는 날에도, 우리는 작은 배를 띄우는 방식으로 일상을 건넌다. 말은 방향을 알려주지만, 행동은 우리를 실제로 다른 해안으로 옮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말과 행동 사이의 바다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 두려운 공간이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만든 항해의 기록처럼 느껴지게 된다.


위 내용을 불교적으로, 특히 신해행증의 관점에서 해석해보자.


“말과 행동 사이에는 바다가 있다”라는 속담은 불교적으로 보면 “이해와 실천 사이에는 깊은 파도가 흐른다”는 의미로 읽힌다. 우리는 어떤 진리를 이해했다고 느끼지만, 그 진리를 삶에서 그대로 살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이 간격, 즉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의 틈이 바로 수행이 시작되는 자리다. 말로 표현하기 쉬운 이해는 종종 완성된 지혜처럼 착각되지만, 이 단계의 깨달음은 여전히 머릿속에서만 타오르는 작은 불씨에 가깝다.


이해에서 행동으로 넘어가려는 순간, 비로소 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오래된 습관, 감정의 파도, 본능적 반응, 삶의 압력 등이 이해를 밀어내며 우리를 시험한다. 이때 “알면서도 못 하는” 이유는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아직 새로운 길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자연스러운 저항 때문이다. 이 간극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그 자체가 수행의 실제 현장이다.


불교는 이 간극을 실패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행동 사이에서 흔들리고, 돌아서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수행 그 자체로 본다. 작은 행동 하나를 반복하고, 오늘 단 한 번이라도 다르게 반응해보려는 의지, 이해를 삶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노력이 바다를 건너는 노 젓기가 된다. 그래서 이 속담은 말한다. 말과 행동 사이의 바다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 바다에서 사람이 변화한다. 이 공간을 자책이 아닌 관찰과 연습의 자리로 바라볼 때, 새로운 행복의 길은 조금씩 삶 속에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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